변희수 하사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그가 육군에서 강제 전역되었던 2020년 1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사안이 "한국에서 성 소수자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가늠하는 하나의 시험대"라고 했다. 우리 사회는 이 시험대에서 실패했다.
변희수 하사는 국가에 헌신하는 군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꾸준히 노력해 부사관이 되었다. 전차조종사 기량 평가에서 A등급 성적을 받았고, 공군 창모총장상도 받는 등 군인으로 자질과 성실성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원하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개인이 가진 삶의 문제가 해결되는 아니었다. 오랫동안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있었던 그는 '젠더 디스포리아'로 인한 우울증 증세를 겪었다. 타고난 성별이 자신이 느끼는 성 정체성과 맞지 않아서 느끼는 고통으로 폐쇄병동에 입원할 정도로 힘겨워했다.
다수의 군 동료와 상관들은 일련의 과정을 알고 있었다. 상관은 성별재지정 수술을 위한 해외여행도 승인했다. 수술 이후에도 그의 대대장, 주임하사, 여단장 등은 그를 전역시키기보다는 계속 복무하여 군의 인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여단은 그가 계속 복무하도록 상급 부대인 군단에 권유했고, 군단에서도 육군본부에 이와 같은 의견을 제출했다.
육군에서 강제로 전역당한 날인 2020년 1월 2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저를 믿고 응원해주셨던 소속 부대장님, 군단장님, 소속 부대원, 그리고 안팎으로 도와주신 모든 전우에게 그간 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말했다. "주임 하사와 통화를 했는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라며 울먹였다.
군은 무엇을 잘못했을까
나는 그가 군으로부터 강제전역 당했다는 소식보다, 그가 말해준 '군대 내 사람들'이 더 놀라웠다. 성전환 이후 군인으로 복무하고 싶다던 그의 뜻은 결코 이기적인 것도, 일방적인 결정도 아니었다. 그는 부대에서 충분히 가치를 인정받고 존중받았던 것이다. 그가 거듭 감사를 전한 '군대 내 사람들'은 그를 전역시키는 현역 부적격 심의를 진행하지 않고 육군본부에 그에 대한 긍정적 의견을 개진해주었다.
그 부대에는 남다르게 높은 인권 의식을 가진 '중뿔난 사람들'이 모여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나는 그들이 변희수 하사를 성실하고 유능한 부사관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변 하사가 성 정체성으로 고통스러웠음을 알고 그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마음을 모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변희수 하사를 강제전역 시킨 잘못을 저지른 것만이 아니었다. 군은 이처럼 변화하는 '군대 내 사람들'의 진정성을 묵살했다.
변희수 하사는 우리 군이 트랜스젠더의 군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미처 되지 않았음은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군이 인권친화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과정이니, 자신이 훌륭하게 임무와 사명을 수행하는 성소수자 군인의 선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군인으로 함께 할 수 있다면, 시간이나 여건에서 어려움을 감수할 의사가 있어 보였다.
사람을 잃고도 아무것도 안 하는 군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계속 묵살한 것 역시 비판받아 마땅한 태도이다. 변 하사는 전역심사를 이틀 앞둔 2020년 1월 20일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고 부당한 전역심사 중지를 요청하는 긴급구제 신청도 함께 제기했다. 이에 국가인권위는 다음날 긴급구제 결정을 내리고 육군본부에 전역 심사위원회 개최를 3개월 연기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육군은 전역 심사를 강행했다.
또한, 같은 해 12월 14일, 국가인권위는 육군의 강제 전역 조치가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며 육군참모총장에 전역 처분을 취소할 것을 권고했다. 국방부 장관에게는 이 같은 피해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육군은 "인권위 판단 및 권고의 취지는 존중하나, 해당 인원에 대한 전역 처분은 관련 법규에 의거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적법한 행정처분"이라는 입장을 냈다.
변 하사의 사망 이후, 국방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성전환자 군 복무에 대한 제도개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논의한 바 없다고 했다. 군대 내에 이미 성소수자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이름과 실명을 걸고 이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이 나왔고, 그와 전우애를 쌓으며 공감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자는 사람들도 나왔다. 변 하사 사망 후 육군이 낸 '민간인 사망 소식에 따로 군의 입장을 낼 것은 없다'는 입장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언론은 무엇을 잘못했을까?
하지만 군의 콘크리트 장벽만을 비판할 일은 아니다. 우리 언론은 변희수 하사의 기자회견 이후 지금까지 이 사안에 대해서 '수박 겉핥기'였고,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언론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주의 깊게 관찰하여 남들보다 빠르게 그 문제를 인식해야 하는 존재이다. 인권 문제에 대한 언론인의 촉은 그 누구보다 예민해야 한다. 언론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인권침해, 차별 문제를 공론화하여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고, 제도 개선을 견인해야 하는 책무가 있는 존재이다. 한겨레, 국민일보, 추적단불꽃의 N번방 관련 보도가 여러 언론상을 중복해서 받는 이유는, 그들이 바로 이런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과 이후 변 하사가 걸어온 길은 언론이 매우 주요하게 다뤘어야 할 만큼 의미 있는 사안이었다. 오죽하면 해외 언론매체인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변 하사 사안을 '시험대'라는 표현했을까. 그러나 우리 언론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우리 언론은 금세 끓어오르다 식어 버리는 양은냄비처럼 커밍아웃, 강제전역, 죽음을 전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그마저도 변희수 하사의 발언, 군인권센터의 입장, 육군의 결정, 국가인권위의 권고 내용을 '중계'만 했다. 각각의 입장의 합리성과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지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기계적 균형'이지만,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그냥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동료 여군들이 불편할 것이라는 주장, 상대적으로 선발 경쟁률이 낮은 남군 부사관으로 입대하여 선발 경쟁률이 높은 여군이 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주장, 여군으로 재입대하라는 주장들에 대해서 언론 나름의 심도있는 지적과 반론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선동하고 혐오를 부추기는 주장들이 정당한 의견인 것처럼 처리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혐오표현이 가득한 댓글을 기사화하면서 이런 의견도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도 문제이다. 언론은 기계적 균형을 지킬 것이 아니라 어떤 발언은 차별적이고 혐오표현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월 9일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결과에서 변희수 하사 전역 조치 사건을 알고 있던 참여자 573명 중 94.8%(543명)가 사건 관련 혐오표현을 접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87.6%(500명)가 그로 인한 사회적 반응 때문에 힘들었다고 응답했다. 변희수 하사 언론 보도가 아무리 많았어도, 시민의 인권 의식을 높이는 데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저 '혐오표현 댓글을 다는 판'만 많아진 셈이었다.
우리 사회는 변희수를 이대로 보낼 수 없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변희수 하사가 참석한 두 번의 기자회견 영상을 거듭 보면서 얼마나 여러 번 울었는지 모른다. 변희수 하사의 죽음이라는 황망한 소식 이후 많은 이들이 슬픔과 분노, 미안함에 빠졌다. 그러나 또 많은 이들은 죽음은 애도하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훈계하고 있다. 언론의 변 하사 관련 보도는 부쩍 줄어들었다.
군은 그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고, 엄연히 존재하는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즉각 나서야 한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한국엔 차별금지법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했으며, 프랑스 AFP통신도 한국에선 보수 교회와 일부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로 인해 지난 14년 동안 차별금지법 통과가 십여 차례 무산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만약 평등법이 존재했다면, 군은 지금과 같은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뫼비우스의 띠처럼 군과 국회의 실천을 견인할 열쇠는 미디어에 있다. 언론 자체가 평등법(차별금지법)에 대해 무관심하고, 법안의 필요성과 핵심 쟁점에 대한 논의 등을 제대로 다뤄주지 않으면, 국민의 관심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들은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변명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2월에 발표한 국가인권위의 차별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국내 트렌스젠더는 미디어를 통해 혐오표현을 접했다고 대답했다. 트위터·페이스북·유튜브·온라인커뮤니티 등 인터넷에서 혐오표현을 접했다는 답변은 97.1%(573명)에 달했다. 방송·신문사·인터넷뉴스 등 언론을 통해 혐오를 접한 경우도 87.3%(515명), 드라마·영화·예능프로그램 등 영상매체에서 혐오를 접한 경우도 76.1%(449명)에 였다.
국민의 인권의식을 높여야 하는 미디어가 도리어 일상적으로 그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셈이다. '언론개혁'은 정치 이슈가 아닌 인권, 민생에서 더욱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끼는 요즘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홈페이지에도 동시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