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이다. 목을 많이 쓰는 직업이다 보니 물을 자주 마신다. 물을 마시지 않고서는 6교시까지 이어지는 수업과 엄청난 양의 대화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코로나19 여파로 학교 공용 정수기 사용이 막혔다. 그간 텀블러를 들고 다니며 부지런히 떠다 마셨는데 이제는 덮개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학생들도 각자 집에서 물병을 챙겨 등교한다. 당연히 급식실에서도 식수 제공은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목이 마르면 쉬는 시간에 잠깐 마스크를 내려 물을 홀짝 마신다. 안쓰러운 풍경이다. 작은 입으로 한 모금, 한 모금을 아낀다. 그럼 물을 잔뜩 들고 다니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 학교는 2/3 등교가 이루어지고 있다. 1, 2학년이 매일 학교에 나오기 때문에 4학년은 격주로 나온다. 그 말인즉, 매주 온라인 수업을 하기 위해 교과서를 십 수권씩 집과 학교를 오가며 옮겨야 한다는 의미다. 11살에게는 허리가 굽을 정도로 많은 양이다. 그 무게에 물까지 보태지니 얼마나 버겁겠나. 점차 여름이 가까워지면 땀은 비처럼 흐르고, 갈증은 땀의 양에 비례하여 심해질 것이다. 몹시 우려스럽다.
물이 아쉬운 건 교사도 마찬가지. 지난해에는 학년 단위로 회비를 걷어 2L짜리 생수를 대량으로 들여왔다. 500mL 20개 들이를 사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EBS 다큐멘터리 '인류세'를 인상 깊게 본 선생님 한 분이 강력 추천하여 2L 6개 들이로 최종 결정되었다. 1분도 걸리지 않은 협의였지만, 우리는 나중에 가서야 이 선택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회의실 구석에 고대 피라미드처럼 물통이 쌓였다. '이만하면, 1년은 거뜬하겠군' 하고 안심했다. 그러나 물 소비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교사 1인당 하루 평균 1L가량 물을 마셨다. 거의 6개들이 한 팩이 일주일 만에 동났다. 특별히 물을 챙겨 마시는 구성원이 없음에도 그랬다.
쓰레기도 굉장했다. 투명 페트병은 발로 밟아 공기를 빼고 뚜껑을 닫아도 부피가 꽤 되었다.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관찰하고, 손으로 뒤처리를 하기 전에는 사태의 심각성을 잘 깨닫지 못하는 법이다. 나는 내가 물을 마시는 행위가 쓰레기 발생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매일 목격하면서 양심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500mL 페트병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렇게 1년이 지났고 새 학년이 시작된 요즘, 나는 결국 이동형 정수기를 구입하고 말았다. 정수기라고는 하지만 대단한 전자제품은 아니고, 주전자처럼 생겨서 필터 교환식으로 사용하는 무전력 정수기다. 다 쓴 필터는 모아두었다가 반납하면 업체에서 처리를 거쳐 재활용한다고 들었다.
학년에서 생수를 사자는 말이 나오기 전에 미리 냉큼 정수기를 구비한 이유는 "제 몫은 빼주세요"라고 말하기 위해서이다. 가격은 조금 나가지만(그렇다고 사치품은 절대로 아니다) 적어도 1년에 생수 수십 통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텀블러와 정수기 그리고 수돗물만 있으면 충분하다. 나는 이 단출한 구성이 마음에 들어 본가와 처가, 아내까지 총 4대를 구입했다.
그렇지만 나는 직장 내 다른 분들에게 내 취향을 강요할 의향이 없다. 편리함과 금전 절약 면에서는 생수가 정수기보다 유리하다.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생수 이용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내 몫만큼의 생수를 빼달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메시지 전달 방식에 불과하다. 그러나 간접적인 전달 방식은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우리 반을 방문한 선생님 한 분이 정수기를 신기해 하길래 취지를 말씀드렸다. 혹시 유별난 사람으로 바라볼까 하여 약간 긴장하였으나, 오히려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타지에서 동향 사람을 만난 기분이라고 할까. 본인도 쓰레기 만들기 싫어서 물을 들고 다닌다면서,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기쁘다고 하였다. 우리는 연대감으로 똘똘 뭉친 게릴라들처럼 웃었다.
학생들도 담임의 이상한 물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수돗물을 넣었는데 어떻게 마실 수 있는 물이 되는지 아주 놀라워한다. 나는 연금술사라도 된 양 세면대에서 수돗물을 거듭 퍼다 날랐다. 졸졸졸, 물줄기는 빈약했지만, 아이들의 커다래진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수업 재료로 써먹는다.
우리가 학교에서 공용정수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다. 학계의 추정에 따르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박쥐의 몸에 존재하다가 몇몇 매개 동물을 거쳐 인간에게 옮아왔다. 최근 십수 년간 사스, 메르스 등의 동물 유래 바이러스에 인간이 쉽게 노출된 까닭 중 하나는 무분별한 개발과 자원 착취로 인한 야생동물 서식지 침범도 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생수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중국과 미국을 돌아,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미세 플라스틱에 이른다. 종국에는 무한 소비 혹은 무한 성장이라는 목표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물음까지 나아갔다. 종이 한 장에서 구름과 숲, 벌목꾼을 이야기한 틱낫한의 책 속 장면 같았다.
수업에 흠뻑 빠진 어떤 아이는 나랑 똑같은 정수기를 사겠다고 말했다. 어쩐지 정수기 영업사원이 되어 버린 것 같아 당혹스러웠지만, 아이의 마음에 공감하며 약속했다. 이 정수기도 금방 싫증 나서 버리면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그러니까 한 번 구매한 물건은 잘 관리해서 오래 쓰자고. 대견한 마음에 상으로 물 한 잔을 주고 싶었지만, 물을 공유해서는 안 된다는 방역 원칙에 따라 꾹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