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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시산', 허균이 엮은 시선집. 1706년에 간행된 목판본
 "국조시산", 허균이 엮은 시선집. 1706년에 간행된 목판본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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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목사 시절에 두 가지 문집을 간행하였다.

『국조시산(國朝詩刪)』10권과 누이 허난설헌의 시 210편을 묶은 『난설헌집』이다. 『국조시산』은 조선조 건국초기부터 당대까지 문인들의 대표적인 작품을 선발하고 논평을 실었다. 

「국조시선(國朝詩選)」이라 하지 않고 굳이 '시산(詩刪)'이라 이름 붙인 것은 "선집(選集)과 같이 많은 작품가운데서 좋은 작품을 선발하여 모은 것이 아니고 여러 종류의 선집 가운데서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을 깎아버리고 좋은 작품만을 남겼다는 것이다." (주석 15) 역시 허균다운 시도였다.

공주 목사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마흔 살이던 1608년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였다. 문과에 급제할 때 과거동기이던 이이첨이 대북 세력의 영수로 광해군을 옹립하고 예조판서에 대제학을 겸하는 새정부의 실력자가 되었다. 

허균과는 당파도 다르거니와 무례하고 이기적이며 잔혹한 성품이어서 오래 전부터 거리를 두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가 권부의 실력자로 자리잡으면서 8월에 공주 목사에서 파직되었다. 삼척 부사에서 파직될 때와 유사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여전히 쓸모가 남아 있었다. 이듬해(1609년) 명나라의 책봉사 유용이 조선에 오게되자 이상의의 종사관으로 차출되었다. 글 잘하는 상국의 책봉사를 맞을려면 허균의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공으로 형조참의 벼슬이 주어졌다.
  
난설헌의 사후에 중국과 일본에서 시집이 나올 만큼 뛰어난 시인이었다. 난설헌집 목판본 1책.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난설헌의 사후에 중국과 일본에서 시집이 나올 만큼 뛰어난 시인이었다. 난설헌집 목판본 1책.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 허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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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이 1610년 명나라에 성절사로 가라는 첩지를 내렸다.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수행하지 못하자 형조참의에서 면직되고, 11월에 다시 전시시관에 임명되었다. 과거장의 감독관에 해당된다. 이것이 사달이 되고 말았다. 사위와 조카를 부정으로 뽑았다는 이유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허균의 오랜 벗에 권필(權韠, 1569~1612)이 있다. 평생 야인으로 지내면서 올곧게 살고자 하는 선비였다. 허균이 『국조시산』을 펴낼 때 자기 손으로 집안 인사들의 시문을 취택할 수 없어서 그에게 부탁하여 부록으로 「허문세고(許門世稿)」를 엮어주었다. 광해군이 등극하자 이를 비판하는 풍자시를 지었다가 귀양을 갔다. 귀양지에서 허균의 탄핵소식을 듣고 권필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이에 따르면 시관들이 자제들을 합격시키는 등 비리가 따랐는데 유독 허균만 벌을 받았던 것 같다. 권필이 쓴 시에 그 내용의 일단이 담긴다. 

 가령 과거에서 사사 정을 두었다 치면.
 아들, 사위, 아우들이 끼여든 판에 조카가 가장 가볍다.
 홀로 허균만이 이 죄를 뒤집어쓰니
 세상 바른 길이 진정 행하기 어렵겠도다. (주석 16) 


다른 기록도 전한다. 과거시험 감독관들의 실체가 어땠을까를 살피게 한다.

당시 허균은 박승종(朴承宗)ㆍ조탁(曺倬)ㆍ이이첨(李爾瞻) 등과 함께 전시(殿試) 시관(試官)으로 합격자를 뽑았는데, 합격자 명단에 박승종의 아들이자 이이첨의 사위인 박자흥(朴自興), 조탁의 아우 조길(曺佶), 이이첨의 사돈 이창후(李昌後)와 친구 정준(鄭遵), 허균의 조카 허보(許寶)와 조카사위 박흥도(朴弘道)가 들어 있어 당시 사람들이 '아들, 사위, 동생, 조카, 사돈의 합격자 명단'이라고 했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허보 한 사람의 합격만 취소한 채 모든 부정의 책임을 허균 홀로 지게 해서, 사신(史臣)이 처벌의 형평성을 지적한 바 있다. (주석 17)

허균은 탄핵되어 42일 동안 의금부에 갇혔다. 세론이 비등하자 이이첨이 자신은 빠져나가고 허균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그동안 허균과 관련 많은 비판서들이 "조카와 조카사위를 부정합격히킨 자"로 매도해왔다. 그는 의연히 「의금부에 갇혀」라는 시를 지었다. 

 의금부 문 앞에서 의건(衣巾)을 벗고 보니
 한 해에 두 번이나 온 내 신세 우습기도 하군.
 지옥과 천당 모두가 정토(淨土)거늘
 내 몸에 감긴 오랏줄 꺼릴 것 있겠는가. (주석 18) 


주석
15> 차용주, 앞의 책, 340쪽.
16> 이이화, 앞의 책, 71쪽.
17> 정길수, 앞의 책, 74쪽.
18> 앞과 같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허균, #허균평전, #자유인_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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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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