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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무너지는 지방대' 기사에 달린 댓글.
조선일보 '무너지는 지방대' 기사에 달린 댓글. ⓒ 인터넷 갈무리

드디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방대 얘기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에 따르면 2021학년도 정시 전형에서 추가모집 이후에도 정원을 채우지 못한 4년제 대학이 대교협 소속 198개 대학 중 162곳이라고 한다. 이들 대학의 추가모집 인원만 해도 2만6천여 명으로 작년보다 세 배나 늘었다. 미달 인원의 91%는 지방대로, 일부 지역거점국립대도 정원 미달의 충격에 빠졌다.

최근 <조선일보> '무너지는 지방대' 보도에 따르면, 올해 신입생 미달 인원이 100명 이상인 대학이 30곳이 넘고, 이 중 18곳은 미달 규모가 200명 이상이라고 한다. 지방대 대부분이 학생 등록금에 재정을 의존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지경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같은 지방대의 위기는 학령인구의 감소 때문이다. 대학교육연구소가 추계한 2021학년도 '대학 입학가능인원'은 41만4천 명으로, 334개 국내 대학·전문대 입학정원인 49만2천 명보다 7만8천 명 부족하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대학 입학가능인원은 2024년 38만4천 명으로 줄고, 2037년엔 31만5천 명까지 줄어들다. 이에 현재 입학정원을 유지할 경우 2024년엔 지방대의 34.1%, 2037년에는 83.9%가 '충원율 70%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2024년엔 지방대 34%, 2037년에는 84%가 충원율 70%를 채우지 못할 전망이다.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2024년엔 지방대 34%, 2037년에는 84%가 충원율 70%를 채우지 못할 전망이다. ⓒ 대학교육연구소
  
이런 상황이지만 과연 지방대의 위기에 대해 대중들이 공감하고 걱정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대학이 쓸데없이 많으니까 그런 일(지방대 미달)이 일어나지. 쓰레기 부실대학 이참에 싹 솎아내야 함." "망해 마땅한 학교들이 망하고 있는 거지. 경쟁력도 없으면서 청년들 돈이나 빨아먹는 유사 교육 집단." 앞서 언급한 <조선일보> 기사에 달린 댓글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글들이다.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지방대가 빨리 망하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지방대는 대게 '부실대학', '비리대학'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이런 대학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어느 정도 대학 구조조정이 필요한 면도 인정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대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교육부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평가(2010~2014), 대학구조개혁평가(2015~2017), 대학기본역량진단(2018) 결과를 보면, 일시적 '주의' '경고' 등의 평가를 받은 대학이 전체의 10~20%, '부실' 평가를 받은 대학이 2~6%였고 이 중에는 서울 등 수도권 대학도 섞여 있다. 지방대 다수가 망해야 할 정도로 부실하다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 사회자원 배분 메커니즘의 핵심 원리를 구성하는 '능력주의'의 폐해다. 인재를 가르치고 성장시키기 위해 객관식 시험을 통해 소수의 '특정한 능력자'를 선별하고, 이들에게 과도한 보상을 주며, 나머지는 소외시키거나 배제하는 원리 말이다. 그러나 최근 많은 지식인들이 주장하듯이, 능력주의는 세습과 우연, 행운, 다양성을 무시하고, 승리자의 과도한 보상과 패배자의 과도한 처벌에 불합리한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불공정‧불평등하다.

승자는 더 많이 받고, 패자는 더 잃는 악순환
 
 2019년 정부의 전국 대학 일반재정지원 현황을 보면 지방대 대학당 지원액은 수도권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2019년 정부의 전국 대학 일반재정지원 현황을 보면 지방대 대학당 지원액은 수도권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 대학교육연구소
 
지방대가 능력주의에 피해를 받는다는 게 무슨 말일까? 대표적인 게 정부 재정지원의 엄청난 격차다. 대학교육연구소의 '정부 대학재정지원 분석(2021)' 보고서를 보면, 2019년 전국 대학 재정지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학자금 지원과 국공립대 경상비 지원을 제외한 '일반지원'에서 수도권대 대학당 평균 지원액은 225억 원이었지만 지방대는 121억 원으로 2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특히 연구개발사업에 대한 지원 격차가 두드러져, 수도권대 대학당 연구개발 지원액은 149억 원인데 비해 지방대는 52억 원으로 3분의 1에 불과했다.
     
즉, 능력주의 필터를 거쳐 승리자로 판명된 인서울 대학에는 더 많은 자원이 몰리고, 패배자로 판명된 지방대에는 턱없이 적은 자원이 나눠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방대가 더 수준 높은 교육을 위해 교육과정과 인프라를 혁신하고 싶어도, 자원이 없어 시도조차 할 수 없어진다. 승자는 더 가지고, 패자는 더 잃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전체 지방대생에게 전해진다. 한국 대학생의 60%가 넘는 지방대생이 처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능력주의에 따른 자원 배분 원리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는 능력과 노력에 따른 기회를 제공하되, 인재 선발과 정부 재정 지원 시스템을 보다 공공적인 방향으로 개혁해 불합리하게 과도한 격차를 줄이고, 상대적 약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능력주의의 구조적 불공정과 불평등을 한층 완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고등교육 분야에서 지금까지 논의된 대표적인 개혁 방안이 바로 '공영형 사립대'와 '대학통합네트워크'다. 먼저 공영형 사립대는 이사진 절반을 외부 공익 이사로 선임하는 등 대학 운영의 공공성을 높이고 국가 재정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모델이다.

우리나라는 대학의 80%를 사립대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대학 서열을 높이기 위한 경쟁 속에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더욱 강화돼 온 면이 있다. 이에 공영형 사립대는 공공적 거버넌스를 확립한 지방 사립대에 국가가 안정적으로 자금을 투입함으로써 전반적인 교육과 연구 수준을 높이자는 구상이다.

대학통합네트워크는 지역거점국립대, 지역국립대, 공영형 사립대와 독립형 사립대가 참여하는 수평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공동으로 입시·교육·학위 수여를 하자는 구상이다. 이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대학통합네트워크를 매개로 고등교육을 상향 평준화하면 대학 간 서열을 완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경우 경쟁력을 갖춰 다닐만한 학교가 늘어나 극심한 입시경쟁을 느슨하게 하는 효과도 생길 수 있다.

지방대 살리기는 곧 자원 배분 원리의 변화
 
 강원도 원주시 상지대가 지난해 11월 본관 앞 광장에서 ‘민주공영대학 출범 선포식’을 진행하는 모습.
강원도 원주시 상지대가 지난해 11월 본관 앞 광장에서 ‘민주공영대학 출범 선포식’을 진행하는 모습. ⓒ 상지대

이들 정책의 공통점은 능력주의의 사적 실현으로 '각자도생'과 '승자독식'이 득세하는 고등교육 판을 공공적 시스템(공적 거버넌스와 네트워크)으로 관리함으로써 연대와 협력, 그리고 자원의 분산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 교육재정의 증액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고등교육재정교부금'을 신설하거나 학령인구 감소로 여유분이 생길 것으로 예상되는 초중고교 예산을 조정하는 등의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모두 지난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일이다.

물론 지방대의 뼈를 깎는 노력도 필요하다. 시민들이 지방대를 신뢰하고 공적 지원에 동의할 수 있도록 재정의 투명성, 행정의 책무성, 운영의 민주성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 국립대 수준의 '재정위원회'를 설립하거나 이사회를 개방하는 등 그동안 사학이 극도로 거부했던 변화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에 더해 지역산업과 연계한 교육과정 및 기술 개발, 그동안 쇠퇴해 온 기초학문 교육과 연구 강화, 지역사회 맞춤형 평생교육 개선 등 사회와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공적 교육 개혁 또한 실현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육 개혁은 노동 양극화, 지역 불균형 해소 등 다른 연관 사회 개혁 과제와 함께 발맞춰 나가야 한다. 황갑진 경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는 <사회 불평등과 교육>(2018)에서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권력, 돈, 명예와 같은 사회 희소가치를 얻을 기회가 주어지는 명문학교 입학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학교가 학부모나 학생들의 성공 욕구에 편승하여 입시 위주의 교육에 치중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과열된 입시경쟁과 학벌주의 역시 대표적 일자리, 주거, 지역발전 등이 양극화하면서 불평등이 확대된 탓이 크다.

이 역시 사회 전 분야에서 단순한 능력주의 원리를 개선, 보완하는 일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공채를 통과할 능력이 있는 대기업 정규직과 그렇지 않은 하청 비정규직의 과도한 임금·고용 격차, '영끌'해서라도 서울 브랜드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과도한 주거 격차를 줄여나갈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지 않은 채 교육 분야에서만 개혁을 시도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하다.

망해가는 지방대를 왜 살려야 하는가? 공공적 방향의 개혁을 통해 지방대를 살리는 것은 건국 이래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던 '능력주의', '각자도생', '승자독식'의 교육 자원 배분 메커니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육 기회를 공적 연대와 협력, 배려가 살아 있는 시스템에 따라 배분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매우 중차대한 과제다. 부족하게나마 지역사회와 호흡하며 지역 인재를 길러왔던 지방대 수십 곳이 쓰러질 날이 이제 몇 년이 채 남지 않았다.

#지방대#능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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