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이십 대 초반 필리핀에서 만났다. 국제협력단 파견 봉사단원으로 같은 도시 마닐라에 배치된 몇 안 되는 단원이라 자주 만났고, 사랑에 빠졌다. 처음에 남편은 나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한참을 사귀고서야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임기를 마치면 미국으로 유학을 하러 가려고 준비 중이었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 대학원으로 복학할 예정이었다. 사이가 깊어질수록 그의 고민은 계속되었고, 그는 마침내 나를 본인의 인생에 넣고 다시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임기를 마치고 각자 한국으로 돌아왔고, 나는 학교에서, 그는 직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몇 년 후, 우리는 결혼을 했고 딩크족으로 살자던 다짐이 무색하게 아이가 찾아왔다. 우리는 아이와 함께인 삶의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우리의 꿈, 혹은 '너의' 꿈
스무 살이 넘어 첫 해외 생활을 경험한 우리에게 영어는 늘 걸림돌이었다. 토익 점수는 학원에서 올릴 수 있었지만, 일찍 외국물을 먹었던 이들이 구사하는 영어와 문화적 코드는 밤을 새워 공부한다고, 미드를 본다고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직장에서 연차가 올라갈수록 가정을 버려야만 조직에서 쓸 만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안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커졌다.
다시 한국 밖으로 나가 아이는 문화적 코드를 담은 진짜 영어를 배우고, 우리는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새로운 곳을 찾아 기반을 다져보자고 결정했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선택지 중 가장 현실적인 건 남편이 유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문과 전공인 나와는 달리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남편이 당시 뜨던 분야인 빅데이터를 공부하면 한국에서의 경험을 더해 괜찮은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역시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국제교류, 해외취업지원 등 영어가 필요한 업무를 계속해왔기에 적응하는 데 크게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남편은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직장 생활과 병행해야 했기에 퇴근 후 쪽잠을 자고 새벽까지 책상에 앉아 토플, GRE는 물론이고 입학 서류에 한 줄을 더할 온갖 자격증을 취득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자랐다. 나는 일하는 엄마로서, 예비 유학생의 아내로서 최대한 남편이 공부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렇게 서로 팀워크를 발휘하며 우리의 꿈을 위해 한 발짝씩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지칠 때면 '우리의 꿈'이 아니라 네가 접은 '너의 꿈'을 위해 나와 아이가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남편이 공부하러 들어가는 것을 마냥 응원하기보다는, 언제쯤 나와서 나와 바통터치를 해줄까 하는 생각으로 그의 뒷모습을, 닫힌 공부방 문을 쳐다봤다. 지친 마음이 뾰족한 원망의 말이 되어 잠시 쉬러 나온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버리고는 못다 한 아빠 노릇을 강요하기도 했다. '너의 꿈'을 위해 우리가 이렇게 희생하고 있는데, 너도 우리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하지 않겠냐는 가시 돋친 말을 하기도 했다.
'너의' 꿈을 위해 통째로 뒤바뀐 삶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해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음악상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화제가 된 영화 <미나리>는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던 모니카(한예리), 제이콥(스티븐 연) 부부가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 남부 아칸소 주로 이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10년 동안 병아리 감별만 해온 제이콥이 이루고 싶었던 꿈,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위해서.
영화 속에서 차가 멈춘 곳은 트레일러트럭이 외롭게 서 있는 넓은 대지였다. 이사 트럭에서 내린 남편 제이콥은 차에서 내린 아내 모니카의 실망한 얼굴을 보고 아이들을 데리고 서둘러 트레일러 안으로 들어간다. 모니카는 '믿을 수가 없네'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트레일러 안으로 들어가기 전 짧게 볼멘소리를 한다.
"우리가 약속했던 건 이게 아니잖아."
6년 전 나도 그랬다. 남편이 박사과정 입학 허가를 받은 후 바로 학교에서 운영하는 대학원생 기숙사를 신청했다. 주소가 나오자마자 셋이 모니터 앞에 앉았다. 구글 지도에서 집을 찾아보며 이게 우리 집이구나! 하며 설레던 기분은 막상 그 집에 들어가자 여러 가지 실망으로 바뀌었다.
빨래 바구니를 들고 우리 건물 안의 여덟 집이 공유하는 지하 세탁실로 내려갔는데 세탁기 안에서 다른 사람의 빨래를 발견했을 때, 드라이기와 전자레인지를 한 번에 돌리면 집안 전체의 전기가 나간다는 걸 알았을 때, 한국에 있는 내 동기들이 하나둘 차장으로 진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의 실망감은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온' 남편에게로 향했다.
영화에서 토네이도 경보가 올 때 남편 제이콥은 모니카에게 그때까지 하지 않았던 말을 한다. 토네이도가 오면 이런 집 따위는 날아가 버린다고 말이다. 모니카가 제이콥에게 베개를 던졌을 때, 나도 같이 분노했다. 왜 이제야 이런 말을 하는 거냐고,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선택을 할 때, 이런 얘기를 왜 먼저 해주지 않았던 거냐고 소리치고 싶었던지도 모르겠다.
생각과는 다른, 녹록지 않은 삶의 현실을 마주할 때면 우리는 더 넓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이 어려움을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여유 따윈 없이 왜 나를 이런 곳에 데려왔냐고 원망의 눈초리로 쳐다보게 된다. 후회가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가족과 함께 주거지를 다시 옮긴다는 건 너무도 큰 선택이다.
영화에서 토네이도 예보가 '경보'에서 '주의'로 바뀐 그 날 밤, 모니카와 제이콥은 밤새도록 싸웠다. 아마도 그 결론은 이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보자는 쪽으로 났을 거라 짐작한다. 그전까지, 이곳을 진짜 이사를 하기 전까지 잠시 머물다가 갈 곳일 뿐이라고 아이들에게 말하던 모니카는 말을 바꾸어 우리는 이 바퀴 달린 집에서 살 거라고 말한다. 그렇게 그들의 삶은 6000평 대지 위에 외롭게 서 있는 트레일러에서 새로운 시작을 맞는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그들은 너무 먼 길을 와버렸다.
'우리'를 포기할 뻔 했던 순간들
외국인으로서, 취업 비자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만 지원해야 했기에 남편은 몇 배나 더 큰 노력을 해야 했다. 코로나 이후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회사와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 긴축 재정을 선포하는 와중에 비자까지 지원해주며 새 일자리를 주겠다고 하는 곳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작은 기회라도 있으면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를 바라보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나 역시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러나 학교가 문을 닫아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를 옆에 두고 하루 여덟 시간을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재택근무를 하기는 쉽지 않았다. 화상회의 중간에 끼어든 아이를 대신해 사과하고, 미팅 후 기다렸던 아이에게 또 미안하다고 말하며 놀아주고 공부를 시키면서 출근했을 때처럼 집에서 일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몇 주쯤 지나고 나니 나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다. 남편은 연구실에 계속 나가던 중이었는데, 내가 힘듦을 토로하자 내일은 아이를 데리고 연구실에 출근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내가 눈을 떴을 때, 남편은 혼자 출근하고 없었다. 화가 났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사과는커녕 지친 얼굴로 들어서는 남편을 보고 나도 모니카처럼 눌러왔던 감정을 폭발시켰다. 당신만 바라보며 버티기엔 내가 너무 지쳤다고, 이럴 거면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너 혼자 여기서 잘 살아 보라고 쏘아붙였다.
남편은 억울한 표정으로 이건 우리의 선택이었다고 말했지만, 힘들어하는 나를 두고 출근을 한 그 순간, 남편이 생각했던 '우리'의 꿈은 그가 혼자 꾸는 꿈이 되었고, 우리가 함께 걷는 길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과정은 '그의 꿈'을 위한 우리의 희생이 되어버렸다.
그때 내 머릿속은 이렇게 희생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너무 늦기 전에 다시 되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은 진심을 담아 사과했고, 연구실에서 컴퓨터와 각종 자료를 가져와 집에서 일하기로 했다. 서로의 미팅 시간에는 다른 한 사람이 아이와 함께 산책하러 나갔고, 아이의 공부는 돌아가며 챙겼다.
다행이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아서
여전히 쉽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나 혼자 남편의 꿈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우리'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하루하루 버텨나갔다. 기적처럼, 원하던 곳에 취업이 결정된 순간, 나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결혼을 언제 해야 할지, 아이를 언제 낳아야 할지 고민이라는 친구와 동생들에게 나는 한결같이 말했다.
"놀 거 다 놀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그때 해.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점점 줄어들거든."
셋이 함께 꾸는 꿈은 혼자, 혹은 둘의 꿈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 가족에게는 함께한다는 것이 더 높은 지위보다, 더 많은 월급보다 중요하다. 우리 셋이 그리는 그림은 배경과 장면은 다를지 몰라도 세 사람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같이 보던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That father is so greedy, he only cares about his farm. Farm! Farm! Farm! Farm over the family!" (저 아버지는 욕심이 많아서 농장에만 신경을 써. 농장! 농장! 농장! 가족보다 농장이 우선이야!)
영화 속 제이콥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그 농장은 가족을 위해 가꾸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꿈을 향해 걷는 걸음마다 우리가 정말 모두 함께 가고 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영화 <곡성>의 유명한 대사가 생각난다. "뭣이 중헌디?"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https://brunch.co.kr/@nowhereus/33
https://blog.naver.com/lauterbrunen/222282681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