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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단일화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안 후보는 "국민의힘이 제시한 모든조건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 단일화 협상 재개를 촉구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단일화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안 후보는 "국민의힘이 제시한 모든조건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 단일화 협상 재개를 촉구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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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해외로 이민 가서 국내 뉴스를 전혀 듣지 못한 사람이 오랜 만에 귀국하게 된다면, 그는 안철수의 '변함 없음'에 시선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단일화로 주목 받았던 안철수가 지금도 여전히 단일화로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인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단일화는 2012년 대선 단일화보다는 2021년 현재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단일화와 좀 더 비슷하다. 단일화 구도가 토너먼트 방식을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정치권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합의"라며 감격해 했던 2011년 9월 6일 안철수·박원순의 단일화는 그해 10월 3일 박원순(무소속)·박영선(민주당)·최규엽(민주노동당)의 최종 단일화로 귀착됐다. 올해 2021년에도 안철수·금태섭의 1라운드 단일화는 안철수·오세훈의 2라운드 단일화로 이어졌다.

단일화는 안철수의 정치 데뷔를 장식한 명장면 중 하나였다. 10년이 경과한 지금도 여전히 단일화 문제로 주목을 받고 있으니, 이 정도면 '단일화 전문 정치인'으로 비쳐질 만도 하다.

그때와 지금

물론 예전과 달라진 점도 있다. 2011년·2012년과 달리 지금은 단일화 대상이 보수 정당이다. 그것도, 시대 흐름인 무상급식을 '과잉복지'라며 온몸으로 반대하다가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그 대상이다. 보수이념에 대한 안철수의 인식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2011년 단일화 4일 전인 그해 9월 2일 있었던 '희망 공감 청춘 콘서트' 토크쇼 현장. 이날까지도 출마 여부가 불확실했던 안철수가 무소속 출마 의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했던 발언이 있다. 그해 9월 3일자 <동아일보> 기사 '안철수 "무소속? 분명한 건 국민정서상 한나라당은 아니다"'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차이가 없다"며 "분명한 건 국민정서상 한나라당은 아니다"라는 게 그의 발언이었다.

국민정서상 한나라당과는 함께 할 수 없다고 했지만, 동시에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차이가 없다는 말도 했다. 미래를 예견하고 한 발언은 아닐지라도, 진보·보수를 뛰어넘을 향후 행보의 명분이 될 만한 발언이 이 시기에도 있었던 것이다.

그 뒤 그는 실제로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모호함' 덕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정치적 목표나 이념적 정체성이 그리 명확하지 않은 게 이것을 가능케 했다고 할 수 있다.

2011년 9월 6일자 <연합뉴스> 기사 '한나라, 안철수 맹공... 본격 검증 예고'에도 보도된 바와 같이 그해 단일화 직후에 한나라당 내에서는 그를 강남 좌파로 모는 발언이 나왔다. 폄하의 의도도 들어간 발언이지만,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는 그가 적어도 보수파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진보의 길을 걷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보수의 냄새가 많이 났다. 작년 1월 19일 귀국 기자회견에서도 경제적 약자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국가주의적 시각'으로 규정한 뒤 "이제는 정부가 수레를 앞에서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보수적 신자유주의 사고를 드러냈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실제로는 보수에 가깝지만, 데뷔 10년이 되도록 정치적 비전이 명확하지 않은 그의 모호성은 '준비 안 된 정치인'이라는 비판의 근거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제3지대 유권자들에게 끊임없이 기대감을 주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가 진보·보수를 넘나들며 단일화를 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요인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의 정치 지형이 형성된 1987년 6월항쟁 이후의 역대 대선에서 양대 정당의 득표율은 1987년 64.7%, 1992년 75.8%, 1997년 79.0%, 2002년 95.5%, 2007년 74.8%, 2012년 99.6%, 2017년 65.1%였다. 이를 토대로 하면, 7차례 대선에서 제3지대가 얻은 득표율은 평균 20.8%다.

6월항쟁 이후의 역대 총선에서 양대 정당이 확보한 의석수를 백분율로 환산하면 1988년 65.2%, 1992년 82.3%, 1996년 72.9%, 2000년 90.8%, 2004년 91.3%, 2008년 78.3%, 2012년 93.0%, 2016년 81.7%, 2020년 94.3%다. 9차례 총선에서 제3지대에 배분된 의석은 16.7%다.

20.8%와 16.7%는 지역적·이념적 혹은 여타 이유로 양대 정당에 표를 던지지 않은 유권자들의 비율이다. 이들은 정치 무관심층이 절대 아니다. 관심이 없었다면 아예 투표장에 나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관심과 의욕은 있지만 양대 정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 유권자들이 이 비율에 포함된다.

그 속에는 양대 정당을 싫어하거나 새로운 정치를 기대하거나 아니면 '우리 지역도 한번 돼야 한다'는 인식을 가진 유권자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안철수는 지역색이 강하지는 않으므로 그를 응원하는 유권자들은 양대 정당이 싫거나 새로운 정치를 기대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유권자들이 그의 모호성에 개의치 않고 꾸준히 그에게 기대감을 걸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유형의 유권자들은 자신이 던진 표가 사표(死票)가 되고 자기가 찍는 후보가 낙선될 가능성을 크게 개의치 않을 가능성이 높다. 되든 안 되든 마음에 드는 후보를 찍는 소신파 유권자들이 이 안에 많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안철수 본인도 잘 알고 있다. 2011년 단일화 이틀 전에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조직과 세력 없이 민주당·한나라당 등에 맞설 수 있겠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받은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정치의식'과 '자신의 출마 가능성으로 인해 흔들리는 기성 정치권'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답변했다.
 
"지금 사람들의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비교가 안 된다. 건국 이래 역사상 가장 심하다. 아직 만으로 40대인 나 같은 사람이 아직 (출마를) 할지 말지도 결정 안했는데, 저렇게 역사가 오래된 당들이 한꺼번에 흔들리면 그게 민심이다. 나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 2011년 9월 5일자 <오마이뉴스> 기사 <안철수 "제2의 박찬종? 난 아니다">.
 
그는 안철수 신드롬을 자신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으로 해석했다. 이처럼 자신을 응원하는 유권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인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단일화 전문 정치인'으로 비쳐질 만한 행보를 걷는 것은 난센스 같은 측면이 없지 않다.

세 건의 단일화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그의 단일화는 상대 세력과의 이념적·화학적 결합을 시도하는 단일화였다고는 보기 힘들다. 자기 지지자들의 정치적 의지를 명확히 앞세우는 단일화도 아니었다. 임박한 선거에 대비해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단일화는 '양대정당'과의 단일화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더플러스 스튜디오에서 채널A 주관으로 열린 후보 단일화 TV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더플러스 스튜디오에서 채널A 주관으로 열린 후보 단일화 TV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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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단일화 대상은 진보든 보수든 양대 정당 중 하나였다. 2011년 단일화 역시 민주당과의 최종 단일화로 이어지는 것이었으므로 결국에는 양대 정당과의 단일화에 포함된다. 오세훈 후보와의 단일화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까지 그가 참여한 단일화는 제3지대 유권자들의 정치 지향을 선전하는 장을 만들기보다는 양대 정당 상호간의 권력투쟁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에 그치는 측면이 훨씬 컸다. 단일화로 인해 제3지대의 영향력이 강해지거나 판세를 흔들 정도의 새로운 에너지가 정치권에 유입되지는 않았다. 제3지대 유권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단일화가 작동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의 2021년 단일화 과정에서도 안철수는 제3지대의 희망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제3지대 유권자들의 열망을 선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이 시점을 그는 그냥 그렇게 흘려보내고 있다. 이번 단일화 역시 과거와 다를 바 없이 흘러가고 있으며, 흐름을 바꾸기 쉽지 않은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38석을 얻기는 했지만, 그것은 김대중계와 노무현계의 분열로 인한 어부지리 측면이 훨씬 컸다. 이로 인해 제3지대 유권자들의 열망이 의회 정치에 반영될 여건이 조성됐다고는 말하기 힘들 것이다.

제3지대 유권자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양대 정당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 중 상당수는 양대 정당을 싫어하거나 혐오한다. 그런데 안철수는 이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양대 정당과의 단일화를 추진했고,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결과적으로 양대 정당의 세를 불려줬다. 결국 그의 단일화로 인해 손실을 본 쪽은 제3지대 유권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안철수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그런 결과가 발생했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그가 지지자들의 희망과 에너지에 부응할 만한 역량이 높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 되고 만다. 정치적 비전보다는 당선 가능성을 우선시하며 양대 정당에 휩쓸릴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주는 게 되는 것이다.

2017년 12월 4일 국민의당 대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창당 정신을 확대하는 튼튼한 3지대를 만들어 다당제를 확실히 구축하겠다"며 그해 5월 대선과 관련해 "대선 패배가 기득권 양당 구도를 혁파할 제3지대를 만들었어야 했다는 교훈을 줬다"고 발언했다.

이렇게 양당 구도를 혁파하고 제3지대를 발판으로 다당제를 구축하겠다고 표명하고 있지만,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것은 양당제를 오히려 강화하는 일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의 단일화는 엄밀히 말하면 제3지대 유권자들에 대한 배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태그:#서울시장 보궐선거, #안철수, #오세훈, #야권 단일화, #제3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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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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