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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사랑공동체 왼쪽 골목길 안에는 베이비박스가 있고 오른쪽 문을 열면 베이비룸이 있다.
주사랑공동체 왼쪽 골목길 안에는 베이비박스가 있고 오른쪽 문을 열면 베이비룸이 있다. ⓒ 김지영
 
빨간색 선명한 두 줄, 임신이었다. 미영씨 나이 겨우 스물한 살. 고등학교 선배로 만난 아이 아빠는 대학생이었다. 엄한 아빠와 생활력 강한 엄마에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외동딸로 부족함 없이 자랐다. 자라는 동안 부모님은 그녀의 의사를 존중했고 무얼 하든 신뢰했다. 하지만 임신은 학원이나 학교를 선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스스로 신뢰를 저버렸다는 실망감에 앞서 두려움과 무서움이 그녀를 압도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에 정규직으로 취업에 성공한 직후였다. 아이 아빠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대학생이었고 장래도 불투명했다. 이혼 후 홀로 자신을 키워 온 어머니에게 말할 용기가 없었다. 누가 보아도 준비되지 않은 임신이었다. 아이 아빠는 순전히 그녀의 결정을 존중했고 그녀는 낙태할 생각은 없었다. 감히 생명을 없앨 수는 없었지만 키울 자신도 없었다. 출산 후 입양을 보내기로 했다.

배가 심하게 불룩해지지 않았다. 직장 때문에 혼자 나와 살고 있어 부모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출산을 앞두고 인터넷 검색을 했다. 베이비박스 외에 다른 대안은 없었다. 소문나지 않게 아이도 살고 자신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직장에는 병가를 냈다. 출산을 하고 곧장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 베이비박스로 갔다. 수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길이었다.

거기 도착하자 골목 안쪽으로 아이를 놓고 가는 베이비박스가 있었고, 길에 면해 있는 유리문에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베이비룸이 따로 안내되어 있었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넣고 돌아서기 전, 아이를 한 번 더 안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처럼 꾸며진 베이비룸 소파에 앉아 깊이 잠든 아이 얼굴을 눈물로 가슴에 새기며 아이를 내려 놓을 마지막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을 지켜보던 직원이 베이비룸에 들어왔다.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포기하기 위해
 
 베이비룸은 집 거실처럼 따뜻하다. 여기에서 아이와 마지막 작별을 할 수 있고 위기 상담을 거쳐 아이와 살 수 있는 방편을 모색하기도 한다. 어떤 결정이든 아이를 살리고 보호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
베이비룸은 집 거실처럼 따뜻하다. 여기에서 아이와 마지막 작별을 할 수 있고 위기 상담을 거쳐 아이와 살 수 있는 방편을 모색하기도 한다. 어떤 결정이든 아이를 살리고 보호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 ⓒ 김지영

2010년 베이비박스가 처음 만들어졌을 땐 그저 아이만 무사하면 그만이었다. 일부러 난곡동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와서 아이를 놓고 가야 할 만큼 절박한 사연까지는 미처 챙길 생각을 못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연구가 되고 경험도 쌓였다. 아이를 재빨리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식뿐 아니라 아이를 놓고 돌아서는 생모를 상담자리에 앉히는 노하우도 매뉴얼이 될 정도였다.

2011년 23%였던 상담률이 2017년 90%대에 오른 후로 순조롭게 정착되어 2020년에는 98%를 기록했다. 사실상 베이비박스를 찾은 거의 모든 생부모를 전문상담사가 만난 셈이다.

상담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베이비박스를 찾아야 했던 농밀한 이유를 알고 나면 최대한 아이의 복리에 맞는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걸 그들이 받아들일지 여부는 두 번째 문제였다.

물론, 가장 좋은 아동복지는 낳은 부모가 직접 키우는 것이다. 인간은 결국 자기 생의 시원에 대한 본능적 의문을 가지고 태어나며 이는 삶의 원심력으로 작동하는 자기 정체성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사연도 인간사에는 얼마든지 존재했다. 지금까지 베이비박스에 보호된 1822명의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들이 품고 온 사연도 사실은 각기 다른 1822개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에 똑 같은 사람이 없듯이, 똑 같은 삶도 똑 같은 사연도 없다.  

베이비박스를 찾는 사람들은 대체로 아이를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포기하기 위해 온다. 그런 사람들의 사연은 죄다 절박하거나, 참담하거나, 어쩔 수 없다. 제 새끼를 버리는 독한 사람들이라는 손가락질에 앞서 그런 사연에 먼저 귀를 기울인다면 말이다. 죄 없는 자 먼저 돌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래서 진리다. 하지만 베이비박스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다. 위기에 처한 임산부와 위험에 빠진 아이를 우선 구하는 것까지. 그리고 되도록 엄마 품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것까지다. 나머지는 국가의 몫이다.

아이 만큼은 살리고 싶다는 강한 의지
 
 베이비박스 건물 안에 있는 보호소 풍경. 아이들은 여기에서 잠시 머물다 세 가지 경로로 흩어진다. ① 원가정 복귀 ② 입양, 아니면 ③ 시설이다.
베이비박스 건물 안에 있는 보호소 풍경. 아이들은 여기에서 잠시 머물다 세 가지 경로로 흩어진다. ① 원가정 복귀 ② 입양, 아니면 ③ 시설이다. ⓒ 김지영
 
십대 아들을 둔 마흔 살 경진씨는 이십대 이른 나이에 결혼과 이혼을 경험한 싱글맘이다. 1년 전 지인들과 기분 좋은 술자리에서 과음을 했다. 이어진 차수에 다른 일행들과 섞이면서 처음 본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생리가 없는 걸 일찍 폐경이 온 줄로 알았지 임신은 생각도 못 했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가족들 몰래 출산했다. 사춘기 아들과 병 중인 어머니에겐 감당 못할 충격이었다. 임신기간부터 혼돈스러운 생각이 아이를 낳고도 정리되지 않았다. 베이비박스를 찾아 일주일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활비를 버는 중에 어린 아이까지 양육하는 건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었다.

이혼한 지 5년 된 지연씨는 십대인 자녀가 둘이다. 전 남편에게 양육비는 고사하고 오히려 빚을 넘겨 받아 파산 신청 후 회생 단계에 있을 정도로 가정 경제가 엉망이다. 임신은 물론 계획된 건 아니었다. 출산 후 아이는 입양을 보낼 생각으로 베이비박스를 찾았다. 사실은 출생신고조차도 자신이 없었다.
       
베이비박스에 오는 부모들 중 미혼인 경우는 2020년 전체 137명 중 65%인 89명이었다. 혼인 중인 부부나 이혼 부모인 경우가 18%인 25명, 부모 중 어느 한쪽의 외도인 경우가 15%로 20명이었다. 나머지는 알 수 없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통계분류가 시작된 2017년부터 이 비율은 큰 변동이 없다. 말하자면 시대의 반영이다.

혼인 중인 부부도 베이비박스를 찾는다는 사실이 다소 의외일 수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게 경제적이든 가정불화든 혹은 그게 무엇이든 그래도 베이비박스까지 왔다는 건 아이 만큼은 어떻게든 살리고 싶다는 강한 의지의 소산이다. 그러니 손가락질은 나중으로 미루자.
 
 베이비케어키트는 해당 아동 연령을 고려한 분유, 기저귀, 옷, 물티슈와 각종 생활용품 등 30만 원 정도의 맞춤형 세트로 3년 동안 지원된다.
베이비케어키트는 해당 아동 연령을 고려한 분유, 기저귀, 옷, 물티슈와 각종 생활용품 등 30만 원 정도의 맞춤형 세트로 3년 동안 지원된다. ⓒ 김지영

베이비박스의 운영은 주사랑공동체 교회에서 한다. 베이비박스 사역은 굵직하게는 임산부 위기 상담에 이어 영아 보호와 미혼 부모 지원 사업 등 세 가지다. 미혼부모 지원 사업 안에 의료, 주거 생계 지원이 있고 별도로 베이비케어키트 지원 사업이 특화된다.

형편이 어려운 양육가정에 매달 최장 3년 동안 30만 원 가량의 물품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아이 연령에 맞는 분유, 기저귀 일체와 의류 및 생활용품 등 대략 십여 가지의 물품을 담은 박스를 매달 보내준다. 필요한 경우 의료비와 긴급 생계비도 현금으로 지원된다. 현재는 월 평균 100여 가정에 지원되고 있고 2021년 1월 누적 통계로 6291건이 베이비박스를 거쳐 간 양육가정에 보내졌다.

연계된 병원과의 무료 출산 지원까지 감안하면 혼자 몸도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 임산부에게는 어쩌면 생명수와 같은 곳일 수 있다. 유기 아동을 양산한다는 주장과 유기 아동을 구한다는 주장을 두고 여전히 진행 중인 사회적 논쟁은 우선 차치하자. 중요한 건 위기에 빠진 임산부와 아이를 구하는 일이다.

미영씨, 경진씨, 지연씨와 아이들은 그 후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여전하다. 그러는 와중에도 갓 태어난 아이들의 사망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논쟁 당사자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는 차후의 문제다. 가장 중요한 건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여전하다. 그러는 와중에도 갓 태어난 아이들의 사망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논쟁 당사자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는 차후의 문제다. 가장 중요한 건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 김지영
 
베이비룸 소파에 앉아 아이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던 미영씨는 그 날 아이를 맡기고 돌아가 밤새 뒤척이다 입양을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한 달 동안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위탁한 후 새로 구한 집으로 데려갔다. 양쪽 집안 부모님께 허락받는 동안 진통이 있었지만, 지금은 혼인신고까지 마치고 셋이 함께 산다.

싱글맘 경진씨는 나중에 가족들에게 사실을 알렸다. 십대 아들과 어머니의 강력한 입양 권유가 있었지만, 경진씨는 꿈쩍하지 않았다. 삶은 여전히 시리고 고달프지만 아이가 주는 순수한 행복감이 우울할 뻔한 집안 공기를 바꿔 놓았다.

자녀가 둘에 가정경제도 엉망이었던 지연씨는 아이를 일 년 동안 가정위탁을 보냈다가 부모님을 설득해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고 있다. 떨어져 있던 1년 동안은 항상 목에 걸린 가시처럼 아이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금은 혼자 감당해야 할 아이가 셋이어서 힘들다가도 오롯이 혼자 사랑해야 할 아이들이 셋이라고 생각하면 없던 힘도 생긴다.     

나이와 사연이 다르고 그래서 모든 게 전혀 다른 미영씨와 경진씨 그리고 지연씨는 뜻하지 않았던 임신을 겪고 아이를 포기하기 위해 베이비박스를 찾았다가 상담을 통해 아이를 다시 품에 안고 돌아간 행복한 엄마들이다. 물론, 가장 행복한 이는 엄마 품에 다시 안길 수 있었던 아이들이다.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베이비박스는 이별을 막아 준 안도의 공간이다.

2020년 베이비박스를 찾았던 137명의 어린 생명들 중 다시 가정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27명이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베이비박스에 왔던 아이들은 모두 1822명. 이 중 12%인 217명의 아이들은 지금 자신을 낳은 부모와 함께 산다. 행복한지는 알 수 없으나 삶이 참으로 다행인 사람들이다.  

#베이비박스#유기아동#가정보호#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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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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