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농지'를 검색해 봤다. 이런 영상이 나온다. 절대 사면 안 되는 산지와 농지. 클릭해 봤더니 부동산 유튜버가 이렇게 설명한다. 도시민이 절대 사면 안 되는 농지가 있는데 그건 바로 '농업진흥구역'이라는 절대농지라고.
개발사업 시에 절대 사면 안되는 절대농지는 '농업진흥지역'이 되겠습니다. (중략) 이런 농지에서는 농가주택, 즉 농막이라고 하죠. 간단히 주택 정도는 농업인으로 등록된 사람이면 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투자의 관점에서 보면 건축물을 지을 수가 없으니 투자목적으로 사면 당연히 안 되겠죠. (어느 부동산 유튜버의 농지 재테크)
그러면서 부동산 유튜버는 도시민들이 절대 사면 안되는 농지 7가지를 복습해 보자고 한다. 7가지나? 그게 뭔가 싶어서 계속 봤더니 이런 땅들이다. 개발제한구역, 군사보호구역, 농업진흥구역, 농업보호구역, 도시자연공원, 상수도보호구역 등의 수질관련구역, 그리고 문화재보호구역.
내 머릿속에 경기도 내 여러 지역이 떠올랐다. 개발제한구역에 군사보호구역에 상수도보호구역까지 2중 3중 규제에 묶여 있는 경기도 내 또 다른 경기도. 그런데 궁금했다. 여주. 대표적인 중복규제 지역으로, 저 유튜버에 따르면 '절대 사면 안 되는 농지'로 가득 찬 쌀의 본고장에 어떻게 해서 부재지주가 농지의 90% 이상을 소유한 마을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지난 1월 28일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위원장 정현찬)는 '농지 소유 및 이용 제도개선 방향' 온라인 토론회를 통해 충격적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20년 9월 16일부터 12월 5일까지 경기 화성(2곳)·안성(1곳)·여주(1곳), 경남 거창(2곳)의 6개 마을(법정리)에서 농지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비영농 부재지주의 농지가 324㏊로 전체 조사 면적(1064㏊)의 30.5%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특히 경기도 여주의 한 마을은 부재지주 비율이 91.1%에 달했다.
15년 안에 전체 농지의 84%가 비농업인 소유 될 것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유가 궁금했다. 물어물어 해당 마을의 실정을 잘 알고 있는 여주의 농민 세 명과 통화할 수 있었다. 모두 20년 이상 여주에서 쌀농사 전업농으로 살아온 진짜 농사꾼들이었다.
우선 해당 마을 인근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는 A농민. 그는 해당 마을 이름을 비공개로 해줄 것을 당부하면서, 언론에 보도되는 '부재지주'라는 개념은 낡은 것이며 '실경작자냐 아니냐'는 관점에서 봤을 때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이 마을 농지를 많이 소유한 것은 맞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비영농인의 입장에서 절대농지도 많고 규제도 많은 여주의 농지를 굳이 소유할 이유가 있느냐고. 그랬더니 주로 '상속' 때문에 그렇단다.
"상속이 많아요. 어머니 아버지가 농사짓던 땅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데 자식은 농사를 안 지으니까 부재지주가 되는 거지. 농지소유 거리 제한도 없어졌으니까."
상속을 통해 합법적으로 비농업인 소유의 농지가 늘어왔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 17일 농지 관련 국회 토론회에서 기조 발제를 맡은 박석두 박사(GS&J 인스티튜트 연구위원)는 우리나라 농지소유 문제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비농업인이 상속을 통해 농지를 소유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농사를 물려받을 후계농업인을 확보한 농가가 전체의 5%도 안 되는 현실에서 상속농지의 95%는 비농업인 소유가 되는데, 현재의 고령화 추세를 고려하면 고령 농민들의 사망시점(기대수명 81.4세)이 도래하는 15년 안에 전체농지의 84%가 비농업인 소유가 될 것으로 추산됩니다."
결국 상속을 통해서 헌법상의 '경자유전' 원칙이 합법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농지 쪼개기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지난 22일 여주의 쌀 전업농인 전주영씨는 상속을 통해 부재지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농사 지을 후계자가 없는 상태에서 부모가 자식 한 명에게만 땅을 물려주면 집안싸움이 나잖아요. 그래서 자식들 모두에게 골고루 땅을 나눠주면서 '농지 쪼개기'가 합법적으로 이뤄지는 거죠."
또 다른 쌀 전업농 김영준씨는 상속뿐 아니라 투기적 목적으로 농지를 구입하는 부재지주의 실태에 대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부재지주도 두 종류예요. 상속으로 인한 탈농이 하나고, 또 하나는 투기꾼. 90년대 후반, 2천년대 초반부터 경기도 곳곳의 농지를 쇼핑하듯이 사둔 사람들이 있어요. 파주에도 사놓고 광명에도 사놓고 여주에도 사놓고 개발되기를 기다리는 거죠. 그런 사람들이 여주에 와서 하는 말이 '여주 땅값이 제일 안 올랐다'고 푸념해요. 파주는 평당 30만 원짜리가 600만 원이 됐는데 여주는 2만 원짜리가 아직 15만 원밖에 안됐다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작 농사로 먹고사는 전업농들은 농사 지을 땅을 구할 수 없어 매년 곤욕을 치르고 있다. 26년 전에 귀농을 한 김영준씨도 그랬다.
"실경작지가 부족하다는 거죠. 나이가 30~40대 정도 농민이면 한 사람이 3만 평 규모 논농사를 지어야 먹고 사는데 그 정도 농사 짓는 사람이 거의 없죠."
2만 평 논농사 지으면서 직불금 한 푼 못 받기도
농민들은 뉴스에 나오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농지투기는 너무 먼 얘기처럼 들려서 관심이 안 간다고 말했다. 농지 가격이 평당 5만 원이 넘어가면 농사 지어서 이자도 내기 힘든데 LH 직원들이 산 농지는 평당 70~80만 원이 훌쩍 넘어가기 때문이다. 농민들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직불금 부정수급을 막아달라는 것이다.
농민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강화된 공익형 직불금이 농민 입장에서 긍정적이라고 평하면서도, 부재지주들의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 입장에서 직불금을 받고 싶어도 말도 못하고 못 받는 사례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여주의 경우 농민수당을 받잖아요. 그래서 농민들끼리 누구는 받고 누구는 못 받고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되는데, 깜짝 놀란 게 제 주변에 2만 평 논농사를 짓고 있는 분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직불금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김영준 농민)
"공익형 직불제가 좋지만 오히려 소작인 입장에서는 무력화되는 거예요. 직불금을 못 받는 경우가 많고 저도 마찬가지죠."(A 농민)
현행법상 실제로 농사를 짓지 않는 땅 소유주가 직불금을 수령하는 것은 불법으로 징역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지난 2008년 직불금 부당수령 문제가 전국을 뒤흔들기도 했다. 그런데도 왜 직불금 부당수령이 근절되지 못할까? 전주영 농민은 '8년 자경' 양도세 감면 혜택을 거론했다.
"(조세법상) 8년 동안 자경(스스로 농사지음)해야 양도세를 감면받으니까, 투기꾼이든 상속을 받았든 8년 자경의 증빙자료를 위해 직불금을 받는 거죠."
부재지주들한테 쌀 직불금은 일석삼조라는 말이 있다. 직불금을 받으면 본인이 직접 농사를 짓고 있다는 증거를 축적해 안전하게 가짜 농부 행세를 하면서 농지법상 강제 명령 처분도 피하고, 농지를 팔 때도 유리하며, 양도소득세 중과를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땅 주인들이 농민들에게 일종의 공범 역할을 하도록 강요하기도 해요. 땅 주인 이름으로 직불금 수령 통장을 만들고 농약을 사든 비료를 사든 다 그 통장으로 하게 하고 불법행위에 부역하게 하는 거죠."(A 농민)
직불금 부당수령이 문제가 될 때마다 제도를 손봤다. 직불금의 부가 혜택도 줄이려 했고 처벌은 더 무겁게 했다. 그런데 세 명의 농민들은 그럼에도 직불금 부당수령 문제를 쉽게 뿌리 뽑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당수령에 대한 농민들의 신고가 활성화돼야 하는데 현행 제도는 신고자에 대한 보호가 전혀 없다는 거다.
정부가 '농지'에 대한 확실한 정책 펼쳐야
농민들은 직불금 부당수령을 신고해봐야 신고한 사람만 손해라는 생각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직불금 문제를 처음으로 제보한 김포의 농민도 신고를 한 뒤 지역사회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지금 제도에서는 직불금을 부당수령한 사람에 대한 처벌만 있고, 신고한 농민을 보호하거나 혜택을 주는 게 전혀 없어요. 그러다 보니 신고한 농민만 발가벗겨지는 거예요. 지역에서 '블랙리스트'가 돼서 땅 빌리기도 더 힘들어지고."(A 농민)
A씨는 그래서 직불금 부당수령을 뿌리 뽑으려면 신고한 농민을 보호할 뿐 아니라 그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제도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신고 농민에게 농어촌공사를 통해 5년에서 10년 장기저리로 농사 짓도록 한다든가 이런 방법이 있어야 신고가 활성화됩니다."
김영준씨는 지금이라도 정부가 전 국민 대상으로 '직불금 부당수령은 범죄'라는 캠페인을 5년이든 10년이든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땅 주인이 직불금 타가는 게 불법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고 죄책감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2년 전에 땅을 빌려주겠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땅 주인이 젊은 사람인데 자기가 직불금을 받아야겠다는 거예요. 직불금은 경작자가 받는 거라고 말했더니 그럴 순 없다는 거예요."
전주영씨는 이번 LH 논란을 통해 정부가 '농지'에 대한 확실한 정책을 펼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저는 차라리 정부가 싼 농지를 매입해서 농지 공개념, 이런 식으로 정말 농사지으려는 사람들에게 임대해줬으면 좋겠어요. 미래세대의 문제이기도 하잖아요."
농민들과의 숨가쁜 인터뷰를 마친 뒤 다시 유튜브 영상을 봤다. 도시민들에게 '농지 재테크'를 가르치고 있던 그 영상 말이다. 이런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임야에서 개발행위 제한이 많다 하더라도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농어촌정비법'에 의한 사업을 진행하면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농어촌 관광단지와 관광농원이 있는데 이 두 가지 사업방식을 잘 검토해서 진행하시면 무조건 안 된다는 시설도 입지가 가능할 수가 있으니 무조건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전문가와 상담을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느 부동산 유튜버의 농지 재테크)
이처럼 무조건 안 된다는 임야도 농지도 건물이 되고 황금알을 낳는 재테크 수단이 되는 동안, 식량안보를 지켜온 이 땅의 진짜 농사꾼들은 오늘도 농사 지을 땅을 확보하느라 고민하고 있다.
[참고자료]
홍경진, '비농민 농지 상속 많아…'경자유전' 흔들' (<농민신문>, 2021. 2. 1)
김회승, '[유레카] '쌀 직불금' 타 먹는 '가짜 농부들' (<한겨레>, 2021. 3. 17)
박석두, 'LH사태에서 살펴본 농지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농지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긴급토론회, 2021.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