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글에서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허투루 취급할 것도 없지만 산문 가운데 몇 편을 고르자면 「통곡의 집」(원제 「통곡헌기」) 등이 아닐까 싶다. 담백하면서도 정갈한 문체, 비판정신을 드러낸다. 짧은 글이어서 전문을 소개한다. 필사본 문집 『성소부부고』에 실려 전한다.
내 조카 허친(許亲)이 집을 짓고서는 통곡헌(慟哭軒)이란 이름의 편액(扁額)을 내다 걸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크게 비웃으며 물었다.
"세상에는 즐길 일들이 정말 많거늘 무엇 때문에 곡(哭)이란 이름을 내세워 집에 편액을 건단 말이냐? 게다가 곡이란 상(喪)을 당한 자식이나 버림받은 여인이 하는 행위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자들의 곡소리를 몹시 듣기 싫어한다. 남들은 기필코 꺼리는 것을 자네는 일부러 가져다가 집에 걸어두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그러자 허친이 이렇게 대꾸했다.
"저는 이 시대가 즐기는 것은 등지고, 세상이 좋아하는 것은 거부합니다. 이 시대가 환락을 즐기므로 저는 비애를 좋아하며, 이 세상이 우쭐대고 기분 내기를 좋아하므로 저는 울적하게 지내렵니다. 세상에서 좋아하는 부귀나 영예를 저는 더러운 물건인 양 버립니다. 오직 비천함과 가난, 곤궁함과 궁핍이 존재하는 곳을 찾아가 살고 싶고, 하는 일마다 반드시 이 세상과 배치되고자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것은 언제나 곡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을 능가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곡이란 이름을 내세워 제집의 이름을 삼았습니다."
그 사연을 듣고서 나는 조카를 비웃는 많은 사람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곡하는 것에도 도(道)가 있다. 인간의 일곱 가지 정(七情) 가운데 슬픔보다 감정을 일으키기 쉬운 것은 없다. 슬픔이 이르면 반드시 곡을 하게 마련인데, 그 슬픔을 자아내는 사연도 복잡다단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사(時事)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이 진행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여 통곡한 가의(賈誼)가 있었고, 하얀 비단실이 본바탕을 잃고 다른 색깔로 변하는 것을 슬퍼하여 통곡한 묵적(墨翟)이 있었으며, 갈림길이 동쪽과 서쪽으로 나 있는 것을 싫어하여 통곡한 양주(楊朱)가 있었다. 또 막다른 길에 봉착하자 통곡한 완적(阮籍)이 있었고, 좋은 시대와 좋은 운명을 만나지 못해 스스로 인간 세상 밖에 버려진 신세가 되어서 통곡하는 행위로써 자신의 뜻을 드러내 보인 당구(唐衢)가 있었다. 저 여러분은 모두가 깊은 생각이 있어서 통곡했을 뿐, 이별에 마음이 상해서나 남에게 굴욕을 느껴 가슴을 부여안은 채 좀스럽게 아녀자가 하는 통곡을 흉내 내지 않았다.
저 여러분이 처한 시대와 비교할 때, 오늘날은 훨씬 더 말세에 가깝다. 국가의 일은 날이 갈수록 그릇되어가고, 선비의 행실은 날이 갈수록 허위에 젖어들며, 친구들끼리 등을 돌리고 저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배신 행위는 길이 갈라져 분리됨보다 훨씬 심하다. 또 현명한 선비들이 곤액(困厄)을 당하는 상황은 막다른 길에 봉착한 처지보다 심하다. 그러므로 모두들 세상 밖으로 숨어버리려는 계획을 짜낸다. 만약 저 여러 군자가 이 시대를 직접 본다면 어떤 생각을 품을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통곡할 겨를도 없이, 모두들 팽함(彭咸)이나 굴원(屈原)이 그랬듯 바위를 가슴에 안고 물에 몸을 던지려 하지나 않을까?
허친이, 통곡한다는 이름의 편액을 내건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통곡이란 편액을 비웃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내 말을 듣고, 비웃던 자들이 "잘 알았습니다." 라며 물러났다. 오간 대화를 정리하여 글로 써서, 뭇 사람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심정을 풀어주고자 한다. (주석 9)
주석
9> 안대회 지음, 『문장의 품격』, 17~19쪽, 휴머니스트, 2016.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