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31개 도시 하나 하나를 새롭게 조명하고 여행의 매력을 새롭게 알아가보자 합니다. 김포를 시작으로 파주, 연천, 고양, 강화도, 시흥, 안산, 부천, 의정부, 양주 지역을 현재 취재 중입니다.[기자말] |
이번엔 예술의 고장 양평을 만들어주는 문학인을 알아보도록 하자. 양평에 거주하고 있고, 연을 맺은 수많은 예술, 문학인이 있지만 양평을 대표할 수 있는 한 분이 계신다. 예전 그 작가의 작품이 교과서에 심상치 않게 수록되었고,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이 깃들어진 소설 <소나기>의 황순원 작가가 바로 그분이다.
물론 양평이 황순원 작가의 고향도 아니고, 그가 오랜 기간 살아왔던 지역도 아니다. 하지만 황순원 작가가 양평을 종종 찾으며 소나기를 구상했고, 북녘에 고향을 둔 황순원 작가는 유년의 내 고향을 빼닮았다며 각별히 아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황순원 작가의 묘역이 양평에 조성되었고 그 묘역을 중심으로 문학촌을 형성했으니 이른바 황순원 작가를 기리는 문학촌인 소나기 마을이 서종면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소설 <소나기>와 꼭 닮은 마을
문학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주차장에 내려 10분간 비탈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초입에는 소를 키우는 농가 한 채가 버젓이 우리를 맞아준다. 이것조차도 소설 <소나기>의 감성을 살리는 무대 장치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분위기가 정다워 보였다.
비탈길을 10여 분 오르다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노천극장, 문학관 등이 전망 좋은 터에 같이 모여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을 주변에는 산책로를 조성해서 징검다리, 섶다리 개울, 수숫단 오솔길 등 소설 <소나기>의 배경을 재현해놓았다.
15분 정도 소요되는 산책로에는 작가 황순원의 소박한 작품비가 곳곳에 놓여있어 그의 수많은 작품들을 되짚어가는 문학 사색에도 빠져 볼 수 있다. 하지만 소나기 마을에서 우선 가봐야 할 곳은 그의 모든 문학 활동이 집대성되어 있는 황순원 문학관이다.
그의 소설 특히 <소나기>를 읽다 보면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표현력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특히 잔망스럽다는 표현이라던가 비에 젖은 소년의 몸내음새가 확 코에 끼얹혀졌다 등의 문장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맛이 새롭게 느껴진다.
아름답고 순수한 문장을 주로 남겼던 황순원 선생의 일생을 살펴보면 장인 정신의 일념으로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될 정도로 원리 원칙과 고집을 끝까지 견지하셨다. 그는 평생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신조를 지키며 어떠한 잡문 청탁이나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기로도 유명했는데 많은 언론사들이 인터뷰하러 집에 찾아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기가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황순원 선생은 말과 행동이 다른 작가의 삶을 경계했으며, 권력의 회유에 굴하지 않고 세속의 유혹을 탐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기념관 내부에는 그의 수많은 걸작들을 만들었던 집필실을 원형 그대로 재현했다.
그가 사용하던 물품과 책상이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맞은 채 가지런히 놓여있는데 그가 추구했던 신념처럼 서재는 일체의 장식적 군더더기 없이 단아하고 소박했다. 그는 마치 대장간의 장인처럼 이 자리에서 스스로 직접 교정을 보았다고 한다.
황순원 선생의 고집은 작품을 취재하러 가는 태도에서도 잘 나타난다. 작품 속에서 길이 어디로 난 것인지 정확히 기술하기 위하여 하루를 허비한 적이 많았었고, 작품을 쓸 때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생각날 때마다 메모지에 빽빽이 적었다고 한다.
비록 황순원 작가와 결이 다른 일개 여행작가에 불과한 필자지만 문학관에서 그의 치열했던 작가 정신을 가슴에 새겨본다. 건너편에 있는 다른 전시실에서는 황순원 선생의 작품의 대표적인 장면을 재현해놓은 파노라마가 펼쳐져 있었다.
<카인과 아벨> <독 짓는 늙은이> <목넘이 마을의 개> 등 주요 작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예전에 교과서 또는 문학전집에서 그의 작품을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단지 입시를 위해서 읽었던 소설이었지만 이제 다시 작가의 소설을 천천히 음미해보고 싶다.
문학관을 나와 바로 옆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황순원 선생 부부의 묘역을 참배했다. 그의 무덤은 특별한 장식도 화려한 문장이 쓰인 비석도 없이 자리해 있었다.
'20세기 격동기의 한국문학에 순수와 절제의 극의 이룬 작가 황순원, 일생을 아름답게 내조한 부인 양정길 여사 여기 소나기마을에 함께 잠들다.' 두 문장의 짧은 글이지만 두 분의 인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글이라 생각한다.
햇살 잘 비치는 정원에서 커피 한 잔
이번엔 카페를 넘어 양평에 오면 반드시 가봐야 할 장소로 자리매김한 '더 그림'으로 떠나본다. 옥천냉면으로 유명한 옥천면의 사나사 계곡에 자리 잡은 더 그림은 우리가 꿈꾸는 전원생활을 맛보게 해주는 정원 또는 카페로 유명한 곳이다.
원래는 더 그림의 대표가 별장으로 지으려고 가꾸던 장소를 사람들에게 개방하기 시작했고, 아름다운 정원과, 유럽풍 건물이 만들어내는 이색적인 사진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의 시스템은 조금 독특하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면 더 그림 내부에 있는 음료를 선택해서 교환할 수 있고, 자기가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 음료를 마시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드넓은 잔디밭에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저택이 바로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날씨는 적당히 따뜻하고 밝은 햇살이 잔디밭의 푸르름을 더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커피의 맛은 중요하지 않다. 햇살이 잘 비치는 자리에 걸터앉아 이 분위기와 한적함을 계속 즐기고 싶었다.
나도 열심히 살다가 은퇴할 때 이런 집을 짓고 한적하게 양평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왜 사람들이 도시 생활에 지치면 양평으로 오는지, 그 이유를 조금 알 것만 같았다. 이제 양평에서의 마지막 발걸음은 양평이 자랑하는 가장 대표적인 명소라 할 수 있는 용문사로 이어진다.
사실 대학 시절부터 용문사는 종종 찾아왔었다. 용문사를 품고 있는 용문산은 100대 명산 중 하나이며 1000미터가 넘는 난이도가 만만치 않은 산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용문사에 와보니 입구에서부터 수많은 카페와 음식점이 더욱 많아진 느낌이었고, 이제는 사찰이 아니라 관광지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용문사에 은행나무가 있는 한 사찰의 신성함은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수령이 1200년이 넘은 은행나무는 마치 수호신처럼 용문사를 감싸 안고 있었다. 이번 가을 은행잎이 풍성할 때 다시 찾을 계획이다. 두물머리에서 시작된 양평 여행은 용문사에서 마무리 짓게 되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양평의 아름다운 장소가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한강을 따라 양평의 명소들을 방문하면서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동네에 매력적인 장소가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이런 곳들이 오랫동안 잘 보존되고 유지되길 빌며 양평 편을 마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일주일 후 작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ugzm87와 블로그 https://wonmin87.tistory.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강연, 취재, 출판 등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ugzm@naver.com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