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이 임진왜란 시기에 금강산을 찾아가는 도중 철원의 객점에서 한 늙은 여자를 만나 그로부터 들은 하소연을 표현한 내용이다. 전쟁 때 백성들의 뼈저린 아픔을 기록하고 있다. 장시여서 앞 부문을 인용한다. 원제는 「노객부원(老客婦怨)」이다.
객지에서 늙은 여자의 원성
동주성 서편으로
가을 해 뉘엿뉘엿
보개산 마루턱엔
저녁노을 끼었구나.
객점을 찾아드니
머리 센 할멈 남루한 차림으로
사립문 열고 나와서
길손을 맞이하네.
이 할멈 하는 이야기
"나는 본디 서울 사람으로
유리파산하고 외톨이로
타관살이하는 신세라오.
지난번 난리에
왜놈들이 서울을 함락할 제
자식 하나 데리고
어머님과 낭군을 따라
수백리 먼 길에 발이 부르터
궁벽한 산골짝으로 들어가
낮에는 가만히 숨었다가
밤이면 나가서 먹을 걸 구하는데
어머님 병환이 나서
남편이 업고 가야 하니
험준한 산속에 발바닥 뚫어져도
숨돌릴 겨를 없었더라오.
그때에 비가 내리고
밤은 칠흑같이 캄캄하니
더듬더듬 발이 미끌려
그만 험한데 넘어졌는데
칼을 들고 덤벼든 두 놈
어디서 홀연 나타났는가!
전생에 무슨 척이나 진 듯이
어둠을 틈 타 쫓아와서
성난 칼날 번쩍하는데
몸이 두 동강 났구료!
어머님 낭군 모자가
나란히 원한의 피를 흘렸다오.
이내 몸 어린아이 끌어안고
숲속에 숨어 있는데
아이가 울음소리 내니
도적놈이 내 아이 빼앗아 갔지요."
(주석 6)
주석
6> 임형택 편역, 『이조시대 서사시(하)』, 36~37쪽, 창작과 비평사, 1992.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