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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워낙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정면으로 마주 보는 게 두려웠다. 작업실에 <금요일에 돌아오렴>이 두 권이나 있었지만 첫 페이지도 읽어보지 못했다.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중에서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중에서 ⓒ 김홍모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세월호 영상들도 피해 다녔다. 특히나 세월호가 침몰할 때 단원고 학생들이 찍은 영상은 이미지만 봐도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구출될 줄 알았던 그 해맑은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부모들의 마음은 얼마나 무너지고 또 무너졌을까.

그러다 용기를 내서 <내가 살던 용산>(용산 참사 만화)을 함께 작업했던 동료 작가들에게 물어봤다. 세월호 만화를 함께 작업할 생각이 없냐고. 어떤 작가는 세월호는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고 어떤 작가는 내가 하자면 무조건 한다고 해서 용기를 내 기획을 시작했다.

처음 기획은 파란 바지 김동수씨뿐만 아니라 단원고 학생 생존자, 단원고 유가족, 외국인 유가족, 구조 활동을 끝까지 한 어민 등을 취재해서 옴니버스로 하려고 했다. <내가 살던 용산>처럼. 

우연히 만난 파란 바지 김동수씨

열심히 기획서를 쓰고 있는데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지고 촛불 정국으로 변했다.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앞장을 서셨고 나도 다른 시민들과 함께 제주와 서울에서 열심히 촛불을 들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다. 

정부가 바뀌고 이제 세월호 진상 규명이 되겠구나 싶어서 만화는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다. 서슬 퍼런 박근혜 정권 상황에 맞춰서 기획한 거라 정세가 바뀌니 기획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는데 우연히 제주에 살고 계시는 파란 바지 김동수씨를 만나게 됐다. 기사로만 보던 세월호 생존자를 처음 만났는데 꽤 충격이었다. 몇 차례나 자해를 할 정도로 트라우마가 심한지 몰랐고 생존 피해자에 대해 여전히 제대로 된 대책이 없다는 것에 놀라웠다.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중에서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중에서 ⓒ 김홍모
 
만남 후 며칠이 지나도 자꾸만 김동수씨와 가족들이 생각이 나서 결국 김동수씨 집으로 찾아갔다. 이 만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김동수씨와 아내 김형숙씨, 첫째 딸 예람씨와 막내 예나씨를 다 만나서 인터뷰를 몇 차례씩 진행했다. 김동수씨는 세월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목소리가 커지고 손이 떨렸다. 그 떨림은 내가 여태껏 도망치며 피해오던 세월호의 아픔이었다. 

어느 날은 내가 김동수씨가 되고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중에서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중에서 ⓒ 김홍모
 
그 아픔이 전해져 오면서 어떤 사명감 같은 게 생기기 시작했다. 반드시 이 만화를 무사히 마치겠다는. 이들의 스피커가 돼서 많은 사람들에게 세월호 사건의 진상에 대해, 생존자와 가족의 트라우마에 대해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아내 형숙씨는 만날 때마다 늘 웃는 모습이었다. 그게 참 대단해 보였다. 그렇게 힘겨운 순간들이 많았는데도 웃음을 잃지 않고 남편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모습이 너무 멋지고 눈물이 났다.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중에서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중에서 ⓒ 김홍모
 
2년 동안 준비 작업과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그동안 피했던 자료들을 찾아보고 아이들이 찍은 영상도 꾹꾹 참으면서 봤다. 세월호의 아픔과 매일매일 직면하면서 나 역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시나리오를 쓰려면 감정이 이입이 될 수밖에 없는데 어느 날은 김동수씨가 되고 또 어떤 날은 형숙씨와 두 딸들이 되었다. 그렇게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1년 동안 독립 웹툰 플랫폼에 연재를 하고 드디어 출간을 했다.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중에서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중에서 ⓒ 김홍모
 
작업하는 중간부터 몸이 아파 내가 이 만화를 못 끝내게 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지만 많은 분들의 응원으로 여기까지 왔다. 1070명이나 되는 북펀딩 시민들의 힘으로 세월호 만화가 세상에 나오게 됐다. 

2021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7주기가 되는 날이다. 세월호 유가족, 생존 피해자들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날이다.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참사의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여전히 생존 피해자들은 트라우마에 고통받고 있는데 국가는 제대로 된 대책이 없다. 

부디 이 만화가 김동수씨뿐만 아니라 172명의 세월호 생존 피해자들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 세월호 유가족과 진상 규명을 바라는 모든 시민들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중에서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중에서 ⓒ 김홍모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중에서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중에서 ⓒ 김홍모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의 작가 인세 일부는 '제주 세월호 생존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모임(제생지)'에 전해집니다. 

홀 -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김홍모 (지은이), 창비(2021)


#세월호7주기#세월호생존자#김동수#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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