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이라는 한국의 배우가 한국영화사 102년 만에 우리 나이 일흔다섯에 2021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나는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을 누가 받았는지는 큰 관심이 없다. 오직 우리 배우 윤여정이 남녀연기상을 통틀어 이번 시상식의 가장 멋진 주인공이라는 것이 나에게 중요할 뿐이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이 배우의 기사는 샘솟듯이 흘러넘친다. 모두 아름답고 재치 있는 말솜씨로 '윤며들고' 있다는 신조어를 뒷받침하는 내용들이다. 국어학을 전공한 나는 외국에서 영어로 한국학을 강의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스피치 커뮤니케이션'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제2외국어로 영어를 쓰는 부담과 부끄러움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배우가 이렇게 전 세계인을 매료시키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보았다.
우선 누구나 인정하듯이 '윤여정 화법'이 있다. 약간 직설을 넘어 독설적으로 보일만한 말도 서슴지 않는다. 영국의 아카데미 시상식 BAFTA에서 말했던 'snobbish'란 단어는 '속물(근성)의, 윗사람에게 아첨하고 아랫사람에게 뽐내는, 신사인 체하는'이란 의미이다. 자칫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경계의 단어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배우는 그러한 속성이 있는 영국사람들에게서 인정받은 자신이 더욱 영광스럽다는 재치 있는 표현으로 사람들의 허를 찌르며 유쾌하게 넘어갔다.
그래서 영국사람들은 그가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는 무슨 소감을 말할까를 궁금해하고 기다렸다 한다. 심지어 그의 말솜씨로 아카데미상 수상을 견인차했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그렇다. 그는 영어를 잘하기보다 세계 보편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것이다. 미국 아카데미에서는 더욱 그녀의 영어로 된 관록의 말솜씨가 빛났다.
주홍글씨였던 이혼의 경력, 20대 빛나던 주연배우를 깨끗이 잊고 가족 부양을 위해 신인의 자세로 가장 낮은 단역부터 시작해야 했던 신산스런 시절이 있었다. 그것을 아들들 덕분에 일하게 되어 이런 결과가 됐다고 고맙다고 하였다. 고단했던 그의 모습을 오래 지켜본 나로서는 마치 내가 윤여정이 되어 상을 탄 것 같은 마음으로 며칠을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혼을 하고 억척스럽게 아이들을 키운 나의 친구도, 나보다 연배가 아래인 제자들도 모두 윤여정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진심으로 기뻐하고 박수치고 있었다.
그의 전남편 망발에는 함께 분개하고 촌철살인의 소감에는 함께 공감하였다. 특히 코로나19로 더욱 심해진 인종차별에 대해 인간을 색깔로 구분 짓지 말자며 무지개 일곱 색깔처럼 함께여서 아름답다고 소신을 밝히는 장면은 더욱 아름다웠다.
우리는 스스로 자기 앞에 금을 그어놓고 그 금을 뛰어넘지 못하고 사는 것은 아닌가. 남성과 여성, 결혼과 이혼, 서양인과 동양인, 선진국과 후진국, 상을 탄 자와 못탄 자 등등….
무엇보다 배우 윤여정에게서 우리가 희망을 본 것은 그의 나이 때문이었다. 특히 '남배우'가 아닌 '여배우'가 55년을 연기해온 그의 인생 여정은 고무적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것이다. '나도 저렇게 자기의 길을 꾸준히 가다 보면 윤여정과 같이 인정받는 날이 올지도 몰라.' 이 한 줄을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심어 준 것이다. 여성뿐 아니라 마이너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토닥토닥 등 두드려 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삼국유사>의 여인들을 새롭게 조명한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이제 '한국유사'를 새로 써야 할 시간이다.
이혼과 경력단절을 딛고 칠십 대 중반까지 무소의 뿔처럼 걸어온 대한민국의 수많은 여성들을 대표하는 윤여정의 쾌거를 시작으로 수많은 한국의 '윤여정'들의 이야기를 모아 '한국유사'를 쓸 것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21세기 여성들의 인생 아카데미 수상소감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경상일보 경상시론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