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변호사에게 성폭행 등을 가한 혐의로 수사를 받던 한 로펌의 대표변호사가 사망했다. 피해자 측은 입장문을 통해 "사망한 피의자에 대해서도, 황망한 상황에 놓인 피해자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안타까운 마음을 금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2019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A 변호사(여, 20대)는 서울 서초동의 한 로펌에서 수습기간을 거쳐 같은 곳에서 정식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20년 3월 31일~6월 2일 총 10차례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며 로펌의 대표변호사인 B 변호사(남, 40대)를 경찰에 고소했다.
고소장엔 ▲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형법 제303조 제1항) ▲ 강제추행죄(형법 제298조) ▲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죄(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10조) 혐의가 담겼다.
수사를 맡은 서초경찰서는 두 사람을 불러 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B 변호사는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고, 경찰은 A 변호사를 한 차례 더 불러 B 변호사의 입장에 대한 의견을 다시 한 번 들었다. 경찰은 조만간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었다.
이 사건은 지난 24일 보도되며 처음 알려졌고, B 변호사는 이틀 뒤인 26일 오전 4시께 로펌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타살 혐의점은 없는 가운데 유서가 발견됐지만 경찰은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
관련기사 : "법조계 민낯" 어느 초임 변호사의 '미투' http://omn.kr/1tc1d)
앞서 B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지금 (수사 중인) 상황에선 어떤 말씀도 드리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의 법률대리인 C 변호사에게 서면 질의서를 보내기도 했지만 답을 얻지 못했고 C 변호사는 이후 통화에서 "답을 주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A 변호사 측은 26일 오전 11시 입장문을 내놨다. 이은의 변호사는 입장문을 통해 "피의자의 장례가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말을 삼가고 싶었으나 제 개인 휴대폰으로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많아 부득이 간략한 입장을 밝힌다"라며 "고소 후 6개월 간 수사가 진행돼 검찰 송치만을 앞둔 상황이었기에 피의자의 사망은 피해자 측에선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뜻밖의 상황이었다. 그런 이유로 피해자는 크게 충격을 받고 당혹스러운 심경을 금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고소 사건은 종결되더라도 이 사건을 계기로 이제 막 시작돼야 할 이야기들이 종결돼선 안 될 것이다"라며 "피의자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수사기관을 향해, 대한변협 등 법조계 내부를 향해, 사회를 향해 요청 드리고 이야기를 건네야 할 종합적인 입장을 전달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아래는 입장문 전문이다.
2021년 5월 24일 최초 보도되었던 초임변호사에 대한 성폭행 사건으로 피소된 대표변호사의 사망 소식이 금일 아침 전해졌습니다. 저는 피해자의 변호사 이은의 입니다.
우선 사망한 피의자에 대해서도, 황망한 상황에 놓인 피해자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안타까운 마음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피의자의 장례가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말을 삼가하고 싶었으나, 제 개인 휴대폰으로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많아 부득이 간략한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피해자 측은 금일 아침 7시경 언론사 연락을 통해 피의자의 사망소식을 접하였습니다. 고소 후 6개월간 수사가 진행되어 검찰 송치만을 앞둔 상황이었기에, 피의자의 사망은 피해자 측에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뜻밖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피해자가 크게 충격을 받고 당혹스러운 심경을 금하기 어려운 중입니다.
피해자는 열악한 지위에서 피해를 입었기에 이 사건 고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신고하지 못하고 중첩된 피해에 놓였던 까닭이 수습변호사로서 초임여성변호사로서 갖는 지위에 기인하였듯, 고소를 결심하기까지 여러 고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도 피해자의 변호사도 이 사건의 피해를 규명하는 한편, 더 이상 유사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바람과 변호사 실무수습제도에 대한 법조계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고심 끝에 고소를 결정하였고 취재에도 응하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피해자 측은 이 사건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되고 판단만을 앞둔 상황에서 피의자가 선택한 사망 앞에, 그저 애도만을 전할 수만도 없는 입장입니다. 이에 고소 사건은 종결되더라도 이 사건을 계기로 이제 막 시작되어야 할 이야기들이 종결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피의자의 장례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수사기관을 향해, 대한변협 등 법조계 내부를 향해, 사회를 향해 요청 드리고 이야기를 건네야 할 종합적인 입장에 대해 공식적인 자리를 마련하여 전달할 예정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