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금융위원장이 팝펀딩을 두고 '새로운 금융'이라며 엄청나게 칭찬했었죠. 정부는 포장하기에만 급급했지, 그 이면에 있던 문제는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겁니다."
지난 1년 동안 사모펀드 피해자들과 함께 피해 구제를 위해 힘써온 이의환 전국사모펀드사기피해공대위 집행위원장은 쉴 틈 없이 비판을 쏟아냈다.
이 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팝펀딩 상품은 '사모'로 모집했어야 했는데, 증권사와 은행을 통해 대규모로 판매됐다"라며 "문제 발생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정부는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전문투자자나 그에 준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소수에게 판매해야 할 팝펀딩 상품을 일반 공모펀드처럼 판매하면서 관련 규제를 피한 것 자체부터 문제였다는 얘기다.
혁신 사례라고 칭찬받았던 팝펀딩의 이면
팝펀딩 펀드는 홈쇼핑에 납품하는 회사의 판매 상품(동산)을 담보로 팝펀딩이 대출을 실행하고, 펀드는 대출채권을 양도받아 상품이 판매되면 수익을 받는 구조였다. 펀드 운용은 자비스자산운용과 헤이스팅스자산운용이 맡았다.
최대판매사인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2019년 6~11월 동안 '자비스팝펀딩홈쇼핑벤더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5~6호', '헤이스팅스더드림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4~7호' 등으로 약 550억원을 모집했다.
금융당국은 팝펀딩을 '혁신 사례'라고 추켜올렸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2019년 11월 팝펀딩 물류창고를 찾아 간담회를 열고 "팝펀딩을 시작으로 또 다른 동산 담보 금융 혁신사례가 은행권에서 탄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시는 팝펀딩 쪽이 대출 사기를 당한 뒤 이를 돌려막기 위해 추가 펀드를 모집하던 시점이었다. 지난해 한국투자증권 임원은 투자자들과의 만남에서 돌려막기용 모집이었다는 점을 인정한 바 있다.
이 펀드들은 당초 2020년 1월 차례대로 만기상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팝펀딩이 담보물 수량을 조작해 투자유치를 받는 방식으로 펀드 돌려막기를 하면서 대규모 부실이 발생했다. 일부 펀드가 환매(계약해지)가 중단되면서 300여명의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모두 날릴 위기에 처하게 됐다. 다른 금융회사의 팝펀딩 판매액을 모두 합하면 피해액은 총 1200억원에 달한다.
결국 수백억 대 사기로 결론이 난 팝펀딩 사업을 벌인 경영진 3명은 지난해 7월 구속기소됐다.
한투증권, 부실 알면서도 판매했나
피해자 백영수(60세)씨는 "피해자의 70% 이상이 60대 이상 고령층"이라며 "사모펀드가 뭔지, 어떻게 투자되고 소득이 나오는지 정확히 모른 채 그저 자산관리사(PB)가 얘기하는 대로 투자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매중단이 발생한 뒤 투자자 성향 등이 마음대로 조작돼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금융회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판매 과정도 엉망이었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한국투자증권이 팝펀딩 판매 이전인 2018년에 이미 펀드와 연계된 담보물의 부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투자증권의 2018년 9월 실사보고서에는 '홈쇼핑 상품의 물류 특성으로 인해 명확한 재고관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 '재고자산의 처리를 통한 원리금 회수 가능성에 대해 불확실성이 높다고 판단'이라고 명시돼 있었다.
또 '대출 후 물품(담보물)이 생산, 확보되기까지 팝펀딩 및 대출자의 신뢰에 의존(해야 한다)', '팝펀딩은 생산업체에게 발주한 송장·송금내역 등을 관리한다고 했지만 이번 실사에서 관련 서류를 제시하지 못함'이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한투증권 측이 대규모 부실 발생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금감원 검사 지지 부진... "정부 정책 실패 책임져야"
이런 실사보고서의 내용이 밖으로 알려진 것은 지난해 10월경이었다. 하지만 올해 5월 현재까지 금융감독원의 검사도, 검찰의 수사도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백씨는 "금감원에 민원을 넣은 지 오래됐고 답답한 마음에 고위직과 면담을 신청했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는 상태"라며 "지난해 6월 검찰에 고소장을 접수했고, 처음에는 검찰에서도 '팝펀딩 문제 있다'고 했는데, 지난 1년 동안 어떻게 수사가 이뤄졌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많은 사모펀드가 사기에 가까운 형태로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판매됐는데도 금감원이든 검찰이든 책임 있게 밝혀주는 기관이 없다"며 "언론의 도움을 얻어 문제를 이슈화하지 않으면 피해액이 수백억원, 수천억원에 달해도 해결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은 그저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해자들의 말대로 팝펀딩 최대판매사인 한국투자증권도, 금융감독당국도 피해 구제 등 사태 해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팝펀딩 관련 검사 진행 상황을 묻자 "제재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만 밝혔다. 해당 펀드에 대한 검사가 완료된 것인지 다시 묻자 "검사, 제재와 관련해 말하기 어렵다"고 답변을 피했다.
한국투자증권은 검찰 수사를 이유로 답변을 꺼렸다. '2018년 원리금 회수 가능성이 불확실한 점을 알았는데도 팝펀딩을 판매한 이유가 있나'라는 질문에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팝펀딩 관련 건은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팝펀딩을 혁신 사례라고 띄우기 급급했던 정부가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의환 집행위원장은 "판매사가 부실한 펀드를 판매했는데, 증권사와 투자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에 따른 도덕적 해이에 대한 대책을 정부가 마련했어야 했다"며 "금융산업 전반의 시스템적인 문제를 방치한다면 제2의, 제3의 사모펀드 사태는 계속해서 불거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도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모펀드 피해자들에게 원금의 10%가량이라도 배상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특단의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또 금감원의 적극적인 역할도 주문했다. 그는 "최근 금감원 분쟁조정 결과를 보면 판매사가 (펀드 부실을 속였어도) 설명의무 등을 다하지 않았다는 점만 인정해 투자자에게도 책임을 묻는 식으로 배상비율이 나오고 있다"라며 "펀드 부실을 속인 것은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감독당국이 이에 대해 판단을 미룬 채 투자자에게도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