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으로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여성들이 있다. 당연한 틀을 갈라지고 터지게 만든 그들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편집자말] |
그 일을 겪고 저는 더 이상 이 사회에 살아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온종일 언론과 네티즌의 2차 가해가 난무하고 동영상 찌라시가 나도는 고통으로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해외로 떠나신 저희 아버지는 뉴욕의 식당 옆 테이블에서까지 딸을 꽃뱀x 이라 욕하는 비난을 두 귀로 생생히 듣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지난 6일 가수 정준영씨 불법촬영 피해자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 일부다. 그의 글에는 5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2차 가해와 그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큰지 담겨 있었다. 그는 "피해자 불법 촬영 동영상을 찾는 네티즌의 가해 행위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고 했고, 또한 "피해자 불법 촬영 동영상을 찾아보는 행위는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2차 가해"라고 강조했다.
"국제법에 따라 플랫폼 기업에 책임 물을 것"
이와 같은 2차 가해의 책임을 제대로 따지려면 어디부터 바라봐야 할까?
'n번방' 최초 고발자인 <추적단 불꽃>이 가리킨 곳은 클라우드 서비스업체들이었다. <추적단 불꽃>은 최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n번방 1년, 남은 질문들' 캠페인 글을 통해 "지난 2년 동안 수십 개의 소셜 미디어와 검색 플랫폼을 꾸준히 모니터링한 결과, 아동 청소년 성착취물을 비롯한 모든 범주의 불법 유포물은 정확히 하나의 지점에서 만났다"며 "구글 드라이브, 메가, 드롭박스, 네이버MYBOX 등의 클라우드 링크"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추적단 불꽃>이 정조준한 기업은 구글이었다. <추적단 불꽃>은 "가해자들은 이름과 전화번호 일치 여부 확인 등 본인 확인 절차를 요구하는 네이버와 달리 가상번호로 복수의 계정을 만들 수 있는 구글의 서비스를 선호했다"고 전했다. 또한 구글코리아 취재 결과 "성인 피해물의 경우는 피해물인지 포르노물인지 인증받은 후 영상 삭제가 가능한 절차와 언어적 장벽으로 인해 영상 유포 속도를 따라잡기에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5월 28일은 국제엠네스티 창립 60주년이었다. 지난 26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신민정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장은 세계 최대 인권단체로서 국제엠네스티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디지털 성착취와 관련하여 구글 등 플랫폼 기업에 책임을 분명히 묻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신 이사장은 "해외방에서 세계 각국 언어로 성착취물이 유통되고 있다, (클라우드)는 이미 국경을 넘은 국제적 인권 침해 경로"라면서 "정확한 실태 조사와 국제법을 기준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이사장은 "UN은 경영적 윤리 가이드라인을 통해 어떤 기업이든 인권 침해가 되지 않는 활동을 해야 하고, 또한 인권 침해 현상이 발생했을 때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면서 "이런 걸 주시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에 다가가는 방법이다, 가해자 처벌 강화와 제도 개선이 한 축으로 가되, 근본적으로는 계속해서 성착취물을 확대시키는 유통망을 주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0년 4월 취임한 신 이사장은 "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앞으로 인권 활동 측면에서 어떤 지점에 균열을 내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디지털 성착취 문제"라며 "피해 생존자의 정의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고 오히려 기하급수적으로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연대와 시민들의 참여, 사회단체 및 활동가들과의 협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임기 안에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다음은 주요 문답이다.
"앰네스티 시작 자체가 균열... 철저한 조사로 잇는다"
- 어떻게 앰네스티 이사장으로 일하게 됐나.
"앰네스티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특별한 변화'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나도 그런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개인적으로는, 외국계 회사에서 전략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로 일하다가 2010년 전문가 집단의 재능기부 일환으로 커뮤니케이션 전략 자문을 진행하면서 처음 앰네스티와 연을 맺었다. 그 후 이사회 활동 참여를 권유받았고, 부이사장을 두 차례 한 후 지난 해 이사장으로 취임하게 됐다. 앰네스티 이사회는 다른 조직과는 다른 구조다. 구성원들은 다들 본업을 갖고 있고, 앰네스티 일로 급여를 받지 않는다. 모두 자원봉사자이며, 자기 시간을 빼서 참여한다. 전 세계 앰네스티 지부 모두 동일하다."
- '평범한 사람'이 이끌어간다는 상징으로 느껴진다.
"그렇다. 사무처와 긴밀하게 전략을 짜고 실행하고 자문하고 논의하는 활동을 해 나가고 있다. 사무국 직원분들도 전문가로서 각자 최전선에서 뛴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사무국과 이사회, 한국지부와 국제앰네스티와의 통로 역할에 항상 신경쓰고 있다."
- 인권 발전을 위해서는 누군가가 행동해서 생긴 균열이 국제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국제앰네스티 역할이 아닐까?
"정확히 그렇다. 앰네스티의 시작 자체가 균열이라고 본다. 1961년, 포트투갈 두 학생이 자유를 위해 건배를 들었다고 7년형을 받았다. 이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영국의 변호사가 신문에 기사를 써서 알리고, 각국 사람들이 연대해 사면을 위한 청원 활동을 하면서 국제 앰네스티가 출범했으니까. 이후 60년 동안 세계 최대 인권단체로 있었던 것도 160개 나라 각지에서 균열이 일어났고 이를 이어왔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 앰네스티는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가.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캠페인을 벌이는 인권 조직이다. 인권 침해 상황을 알리고, 관심을 촉구하고,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런 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어떤 현안이 발생했을 때 입장을 발표하는 것이 먼저가 아닌 조직이다. 조사를 먼저 한다. 그래야 캠페인에 힘이 생기고 정부에 압박하는 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 개인적으로 상징적인 사건을 꼽는다면?
"2020년 12월 11일 아르헨티나에서 임신 중지 합법화 법안이 통과됐다. 우리나라는 2021년 1월 1일 낙태죄 처벌조항이 효력을 잃었다. 연달아 이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 가슴에 와 닿았다. 세계적으로 다 연결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차별금지법의 경우 오랫동안 발의와 폐기만 반복하다보니 시민들이 국민청원 10만 행동에 나섰다. 평범한 사람들이 나서지 않으면 세상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다시 느끼고 있다."
"정말 끝난 것인가? 피해 생존자 정의 회복 위해 끝까지"
- 임기 2년의 절반이 지났다. 남은 기간 꼭 해결하고 싶은 의제가 있나.
"인권 활동 측면에서 한국지부가 '앞으로 어떤 지점에서 균열을 내고 싶냐'고 묻는다면, 디지털 성착취 문제다. 디지털 성착취 문제가 불거진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당시 큰 화제가 됐다. 가해자가 3000명 가까이 되고, 처벌이 이뤄지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이 개정됐다. 이런 일련의 가해자를 처벌하는 그림, 제도가 개선되는 그림들을 보면서 '이제 좀 변화 있나?'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하는 건 '정말 이게 끝난 건가'였다. 피해 생존자 입장에서는 지금도 계속해서 성착취물이 검색되고 있다. 더 대중화된 플랫폼에서 본인들의 검색어를 넣으면 성착취물이 나온다. 기하급수적으로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 것에는 주목하지 않고 있다. 앰네스티는 피해생존자의 정의 회복이 될 방법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왔다.
일단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플랫폼들, 그 기술기업들에 누가 책임을 묻고 있느냐다. 앰네스티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플랫폼들이 글로벌하게 연결돼 있으니, 이미 국경을 넘은 국제적 인권침해 현장이 되어 버렸다. 해외방에서 세계 각국의 언어로 성착취물이 유통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플랫폼에 대해 정확한 조사와 국제법을 기준으로 해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본다.
온라인 상에서 피해 생존자들의 성착취물이 완전히 없어지는 날, 비로소 그들은 안심하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 현재 피해자들은 성형수술하고, 만날 (자신의) 성착취물 검색하고, 과거 이력을 바꾸고,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있다. 갈 길이 멀다. 가해자 처벌과 제도 개선이 한 축으로 가되, 정말 근본적으로는, (성착취물을) 계속 확대시키는 유통망을 주시해야 한다. 글로벌 연대를 통해 해결하고 대응해야 한다. 국제 앰네스티 안에서도 이 문제를 선도해서 아젠다로 삼아 활동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임기 내에 계속해서 가져가고 싶다. 조사 결과에 따라 책임을 묻고 정부와도 협업할 계획이다."
- 플랫폼 업체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인가.
"그렇다. 유엔 비즈니스와 인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모든 기업은 그들의 운영과 공급망 전체를 포함하여 그들이 운영하는 모든 곳에서 인권을 존중할 책임이 있다. 기업은 자신의 활동이 인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기여하는 것을 방지해야 하며 그러한 영향이 발생할 때 이를 해결해야 한다. 또한 기업이 직접 영향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기업 영업 활동이나 제품 혹은 서비스 등과 연결된 관계에서 인권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 이를 방지하고 완화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러한 국제 기준에 따라 책임 주체들을 면밀히 봐야 한다. 더 교묘해지고 과학기술 이름 아래 숨어 있고 가시화돼 있지 않은 것을 정확히 짚어내려면, 문제가 무엇인지 같이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답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리 회원분들 보통 10년 이상 되셨다. 저는 병아리다. 글로벌 총회에 가면 40년 이상 활동한 분들도 자주 만난다. 그 분들이 '나는 총회에 10번 왔어, 처음 온 거지?' 하면서 반겨준다(웃음). 앰네스티는 후원해주시는 분들과 함께 움직이는 조직이다. 정부 재정지원을 일절 받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특별한 변화' 그게 앰네스티의 가장 큰 가치라고 본다. 후원하는 분들이 동시에 인권활동가가 될 수 있는 곳이, 앰네스티다."
독립편집부 = 이주연·이정환 기자 facebook.com/ohmy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