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 토요일 아침 둘째 아이가 "엄마" 하고 현관에 들어섰다. 대학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는 둘째는 주말엔 코로나때문에 학교에서 밥 먹기가 여의치 않다며 목요일 저녁에 귀가하여 월요일 밤이나 화요일 아침에 학교로 가고 있다.
이날은 기숙사에 확진자가 생겨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이 나와 집에 온 거란다. 아이는 세 번이나 코로나 검사를 했다. 기숙사 입사생에게 코로나 음성 확인서가 필요해서 한 번, 학교 식당에서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서 한 번, 기숙사 확진자 발생으로 한 번. 곳곳이 정말 지뢰밭이라 방심을 할 수 없는 세상이다.
4학년이 되어 취업 준비를 위해 기숙사에 들어가야겠다고 할 때 이런 시국에 단체생활하는 곳에 굳이 들어가야겠냐고 말리고 싶었지만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차근차근 준비 중인 다 큰 아이를 막아설 수는 없었다.
본인이 알아서 조심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같이 짐을 쌌다. 기숙사는 코로나때문에 입사생이 별로 없어서인지 정원이 네 명인 방을 한 명만 쓰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주말 대학캠퍼스에 활기는 없고 푸릇하게 물기오른 나무와 막 터지기 시작하는 꽃봉오리 그리고 적막만이 가득했다.
둘째가 기숙사로 들어가기 전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라치면 날카로워지는 내 목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식당에서 마스크 벗고 식사하는 게 제일 걸렸다. 취업 준비라는 명분을 내걸긴 했지만 학교에 근무하는 엄마가 매번 방역에 관한 잔소리를 하니 듣기 싫어서 도망가는 것 같았다.
"내가 코로나 양성이 나오면 우리 학교 900명에게 민폐를 끼치는 거야. 내가 미안해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니." 기숙사로 들어갈 때 "이젠 엄마 잔소리 안 들어도 되겠다" 하며 웃는 둘째를 보고 참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집에 온 다음날 일요일 아침 핸드폰 문자를 확인하며 "엄마, 팀원이 어제 고향에 갔는데 열이 나고 오한이 와서 오늘 아침 검사 받았대, 근데 지난 목요일 우리 팀원들 학교 식당에서 같이 밥 먹었는데 괜찮겠지?"라고 한다.
'아....... 또 검사를 받아야 하나', '마스크를 벗고 발명품 만드는 과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며 밥을 먹었을텐데......' 둘째는 굳어지는 내 표정을 보더니 이제 당분간 집에 안 와야겠다며 속상해했다.
점심 먹고 학교로 떠나는 아이의 뒤통수에 대고 "결과 나오는 즉시 알려줘, 엄마 출근 전에 연락해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화장실에서 둘째에게 팀원의 검사결과를 물으니 아직 답이 없단다. 확진자에게는 아침 일찍 연락이 온다고 들었다. 오전 8시 가까이 되어가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는 건 긍정적 시그널인가 기대를 하며 출근 준비를 했다. 학교 주차장에 도착해서 다시 물었다. 아이는 전화해볼게 하더니,
"엄마!! 음성이래."
그랬는데 지난 주 다시 집에 온 둘째가 "이제는 아무데나 들어가서 식사하는 게 부담스러워, 기숙사생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될 것 같아서, 뭔가 책임감 같은 게 생겨버렸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이 녀석이 듬직해 보인다.
좀전에 이번주는 집에 언제 오냐고 물으니 과제가 많아서 못 온다는 답이 돌아왔다. 진짜 과제가 많아서 못 오나, 혹여라도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이 검사하는 일이 생기고 엄마가 또 불안해하는 일이 생길까 봐 안 오는 건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며칠전 은평 둘레길 봉산 근처에서 윤동주의 '새로운 길'이 적힌 시비를 만났다. 우리는 지금 초유의 사태 앞에서 각자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삶이란 게 온통 처음가는 새로운 길이지만 이정표를 만들어 공유하고 함께 걸으면서 든든한 지도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