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각장에서 일하다 몸이 피곤해서 병원에 갔더니 신우암이라더라. 수술은 했지만 허리가 아파서 지금도 하루에 한 시간 이상 누워있지 못한다. 30분씩 쪼개서 자야 한다. 회사는 암 수술을 할 때 이미 병가를 썼다며, 일을 못 하겠으면 퇴사하라고 하더라."
산재신청을 한 이철호씨(화섬식품노조)가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폐수·폐기물 수송·처리 업무를 하는 회사에서 폐기물 소각을 담당했다. 마스크를 써도 악취와 분진이 입으로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 신장에 발생하는 악성 종양의 약 7%를 차지하는 신우암은 보통 화학 발암물질에 의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 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노조, 플랜트건설노조, 학교비정규직노조원들이 모였다. 직업성⋅환경성 암환자찾기119(아래 직업성암119)와 함께 집단산업재해(아래 집단산재) 신청을 하는 이들이다.
지난해(2020년)1⋅2차에 이어 이번 3차 집단산재신청에는 총 78명이 참여했다. ▲학교 급식실 노동자 24명 ▲플랜트건설 노동자 19명 ▲포스코 제철소 노동자 15명 ▲전자산업 노동자 8명 ▲지하철 승무노동자 2명 ▲화학산단 노동자 2명 ▲기타(학교 관리직·공무원 등 8명) 등이다. 현재순 직업성암119 기획국장은 "불과 한 달여 만에 모인 숫자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직업성암119, "제도개선, 입법발의 계획"
집단산재신청을 한 노동자들의 직업성암 분포는 폐암이 33명(45%)으로 가장 많았다. 학교 급식실에서 12년 동안 일하다 2018년 폐암으로 숨진 조리실무사가 지난 2월 뒤늦게 산재 인정을 받은 뒤 폐암으로 산재를 신청하는 급식노동자들이 상당했다.
석탄을 사용하는 작업으로 석면, 결정형 산화규소에 노출돼 폐암에 걸릴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플랜트건설 노동자도 대부분 폐암으로 산재를 신청했다. 삼성·LG 등 전자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포함한 백혈병 환자는 12명(16%), 교대로 근무한 지하철 역무원을 비롯한 유방암 환자는 9명(12%)이다. 갑상선암은 5명(6%)이 신청했고, 방광암, 위암, 대장암으로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도 각각 2명씩 있다. 파킨슨병, 루게릭병, 내분비암, 담낭암 등으로 집단산재에 참여한 노동자는 각 1명씩이다.
직업성암119는 산재인정을 위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1차적으로 병원에서 의사가 암을 진단할 때, 환자의 직업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환자의 일과 암발생 가능성 여부를 평가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라면서 "이후 자동으로 산재보험 체계로 연결되게 하는 제도인 '병원을 통한 직업성 암환자 감시체계 구축법안'이 필요하다"라고 힘을 줬다.
이어 "대부분의 직업성암을 판단 받으려면 수개월에서 1년 이상이 시간이 든다"라면서 "직업병 심의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필요가 있다"라고 부연했다. 19년 차 조리실무사인 양선희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 경기지부 노안위원장도 "주위에 천식, 폐암 진단을 받은 조리실무사들이 많지만, 산재 인정을 받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혼자 병원에 간다"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직업성암119는 건강관리 수첩제도도 개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강관리 수첩제도는 직업성암 발생이 명백하게 입증되고 있는 15종의 발암물질 혹은 작업을 대상으로 사업장 소속과 관계없어 연 1회 특수건강진단을 무료로 지원하는 제도다.
이윤근 소장은 "건강관리 수첩제도의 발급 대상이 일부 발암물질을 한정되어 있어 대상자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면서 "대상 발암물질을 확대하고, 해당 발암물질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노출되는 작업자로 확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집단산재신청 이후 직업성암119는 ▲직업성 암 감시 체계 구축 법제화 ▲심의 규정 간소화 ▲노동자의 특수건강진단 지원 확대 ▲노동자 알 권리 보장을 위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 등을 위한 입법 발의 연속 기자회견을 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