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호 가까이 되는 사회주택 중 '네임드'를 꼽으라면, '안암생활'이 대표적이다. 국토부 장관, 여당 대표, 청와대 인사 등 주거 정책을 다루는 고위 공직자 중 안암생활에 방문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안암생활은 관광호텔을 청년주택으로 리모델링하는 '용도변경형 리모델링 사회주택'이라는 사업을 통해 '아이부키'가 공급 및 운영하는 사회주택이다.
리모델링 공사라는 특징을 활용하면 신속하고도 저렴하게 공급이 가능하다. 약 120세대의 퀄리티 높은 원룸이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이라는 임대료로 운영되고 있으며, 입주자들은 공유주방과 세탁방 등 각종 커뮤니티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결국 안암생활은 청년주택의 새로운 모델로 각광을 받았고, 유수의 언론사에서도 수차례나 보도되어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흥미로운 점은 '아이부키'의 이광서 대표는 본래 미술 교육 및 학원을 운영하는 사업자였다는 것이다. 주택 사업자가 설계나 시공 쪽도 아니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미술 교육'이라고 하니, 의아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건축이라는 기술에 국한되지 않으면서, 영역을 넘나들고 연계하는 특성이야말로 사회주택의 특별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광서 대표는 하드웨어에 국한되지 않은 상상의 강점을 강조한다.
"지역에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만드는 기획에 특화된 분들이 훨씬 더 사회주택을 잘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집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생활이나 라이프 스타일 전반을 다루는 거라서, 건축물만 생각해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는 거죠.
입주자들과 건물의 상호작용이 여기서 어떤 삶을 만들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것, 꿈을 꾸는 것들이 사회주택에서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행, 시공에 대한 전문성보다는 기획 능력, 꿈을 꾸는 비전 등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사람이거든요"
주택 사업이라고 하면 성냥갑처럼 획일적인 하드웨어 건물만 상상한다. 대규모 택지에 천편일률적으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나, 저층주거지에 빨간 벽돌로 촘촘하게 배치된 빌라 사업이 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주택은 집을 건물로만 한정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장애인도 이용가능한 주택 시설을 고민하고, 청년들의 주거권 역량 강화를 고민하는 사회주택도 있다. 그리고 '아이부키'의 키워드는 교육이었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입주자의 다양한 콘텐츠를 고민하는 사회주택을 공급 및 운영하고 있었다.
아이부키의 주택 사업은 노년층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보린주택'에서 시작했다. 서울시 사회주택 조례가 제정되기 전에 공급된 보린주택은 서울시 사회주택 사업의 초기 모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사업을 추진할 수 있던 이유는 이광서 대표가 건물을 짓고 운영을 한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사경 주체들이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이 개발했지만, 콘텐츠가 지역을 활성화시키면 오히려 임대료가 올라가며 희생양이 된 사례가 많았다"며 건축주가 되어 건물을 직접 지었을 때의 자유로움이 주는 매력이 크다고 강조했다. 특히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입주자를 모집할 수 있고, 젠트리피케이션의 위협 없이 장기적인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결국은 사람이거든요. 어마어마한 자본이 투입되고, 으리으리한 주택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사람이 사는 공간을 만드는 거예요. 사람을 통해 성장하는 공간이 사회주택이 가진 최고의 가치이죠. 예를 들어 청년 1인가구의 경우 사회생활이 피곤하고 골치 아프니까 집에 돌아오면 아무런 간섭 없이 쉬는 것이 첫 번째이긴 하지만, 관계에서 오는 외로움도 분명 크게 느낍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관계라는 게 항상 한계가 있기 때문에요. 특히 창업하는 사람들은 혼자 회사를 운영해야 하는 것에 대한 외로움이 있어요. 그래서 뜻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것이죠. 혼자이기 때문에 생기는 결핍들을 이 커뮤니티를 통해서 충분히 해결 할 수 있겠다. 수요가 맞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는 것, 그리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커뮤니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아이부키는 사회주택 분야에서 오랜 시간 노하우와 역량을 쌓으며, '안암생활'의 새로운 모델까지 성공시켰다. 안암생활과 같은 용도변경형 리모델링 사회주택은 빠르게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입주자와 사업자 모두에게 장점이 있다.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한 청년들이 대부분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로 빠져드는데, 청년주거 문제의 대표적 이슈라고 할 수 있는 '지옥고'의 해결책으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
저렴한 보증금과 임대료로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거주하며 각종 편의시설까지 이용할 수 있으니, 서울에서 갓 독립을 준비하는 청년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코로나 이후에 관광산업이 위축되어 호텔의 공실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데, 주택과 관광 산업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물론 호텔은 애초에 주택으로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거주하기에는 평수나 시설 측면에서 완벽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사회주택과 공공주택은 이러한 주택 말고도 다양한 형태의 모델을 제공할 수 있다. 생애주기적으로 이동성이 높고 첫 독립을 안정적으로 하고 싶은 청년이 우선 이곳으로 입주한 뒤 최대 6년간 머물며 다음의 집을 고민하기에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정부는 용도변경형 리모델링 사회주택의 장점을 인지하고, '안암생활'과 같은 주택을 올해만 8천 호나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회 안팎의 지나친 관심은 정치권의 타깃이 되었고 LH 직원의 투기 사태까지 겹치며,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결국 현재 목표량의 10%도 달성하지 못하며 청년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장관과 경제부총리까지 방문한 것이 무색할 수준이다.
사람이 사는 집을 두고 여야가 진영을 나누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이 누구이냐에 따라 달려져서도 안 된다.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새로운 모델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아이부키의 노력이 헛되지 않으려면, 정치는 보여주기식 방문보다는 성과로 답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