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과 가석방 요구가 재계, 보수언론, 정치인 등을 중심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이 이 부회장 사면은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재벌공화국으로 퇴행하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마저도 재계의 사면 건의에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며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경실련은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재벌의 중대한 경제 범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한 공약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경실련과 대전경실련, 부산경실련, 대구경실련 등 전국 24개 지역 경실련은 7일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고, 임기 내 사면 또는 가석방이 없을 것임을 천명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4대 재벌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이 부회장 사면요구에 대해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 지금 경제 상황이 이전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고, 기업에 대담한 역할이 요구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고 발언했다"며 "우리는 대통령의 발언에도 나타나듯 '반도체 산업의 투자와 경쟁력 강화'가 삼성 이 부회장 사면의 핵심이유로 거론되는 여론몰이를 우려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즉, 이 부회장이 없으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망하고, 투자도 어려울 것처럼 언론을 통해 호도되고 있다"면서 "이는 반도체 산업 강점이 있는 삼성전자 법인과 자연인인 이 부회장을 일체화시켜 총수 일가 경영권 세습과 사익편취를 위해 저지른 명백한 개인 범죄를 삼성경영 과정에서 발생한 것처럼 본질을 호도하여 사면과 가석방에 영향을 주려는 속셈"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그러나 반도체 투자는 이미 2019년 삼성에서 133조 원 가량의 시스템반도체 투자계획을 발표한 바 있고, 이 부회장 수감 기간에도 삼성은 역대급 실적은 물론, 하만 인수도 차질 없이 진행했었다"면서 "이러한 사례는 이 부회장의 구속과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확보 및 투자는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막강한 경제 권력을 가진 이 부회장은 이미 사법적 특혜도 받았다. 뇌물공여와 횡령 등의 중대 경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뇌물 수수로 15년 형을 선고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비해 1심에서 징역 5년 형만 받았으며, 재판과정에서의 준법감시위 설치 등 법경유착으로 이마저 2년 6월로 절반가량 깎였다"며 "그럼에도 이제는 죄를 묻지 말고 조기 출소까지 시키기 위해 사면 여론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 부회장을 사면 또는 가석방해서는 안 되는 네 가지 이유를 소개했다. 우선 법의 지배, 법치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 법이 평등하지 않고, 막강한 경제권력자와 일반 시민들에게 다르게 적용된다면 약자의 재산권 보호는 어려워지고, 법의 지배 원칙 확립은 불가능해진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두 번째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뇌물 등 5대 중대 범죄자의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했고, 재벌의 중대한 경제 범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세울 것이며, 중대한 반시장 범죄자는 시장에서 퇴출하고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국민과 약속했었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세 번째는 과거 여러 재벌 총수들이 구속되었음에도 국가 경제와 기업경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고, 마지막 네 번째는 재벌 총수 사면이 이어지면 우리 사회 정경유착과 재벌총수들의 황제경영, 사익편취 근절은 요원해진지고, 재벌공화국·삼성공화국이라는 역사적 퇴행을 가져올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했다.
이들은 끝으로 "지금 우리 경제는 지속되는 재벌 중심의 경제정책으로 양극화와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경영권 세습을 위해 범죄를 저지른 이 부회장을 반도체 산업을 핑계로 사면할 것이 아니라,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와 황제경영 근절, 공정한 시장경쟁 환경이 조성되도록 법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