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전주시 동완산동에는 새로운 달팽이들이 모여 있다.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전국 조직으로 활동하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및 '민달팽이유니온'과는 무슨 관계인지 다들 궁금해한다. 간단히 말하면, 법인은 다르고 뿌리는 같다.
서울 집중 현상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 주거 문제는 자연스럽게 수도권을 중심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지역에도 집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높은 집값·임대료, 열악한 주택·주거 환경으로 대표되는 수도권의 주거 이슈와는 똑같지 않을 뿐, 지역의 청년들도 나름대로 집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주 청년들이 고민을 넘어 직접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시도했다. 전국 조직인 '민달팽이'와의 협업을 통해 전주시만의 사례를 남기기 위해 의기투합에 나섰다. 결국 2018년 전주의 청년들은 비수도권 최초의 사회주택인 '전주 달팽이집'을 공급해냈다.
"함께 해도 괜찮겠다는 확신"
전주시 역시 사회주택의 취지에 공감하며 청년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전주는 역량 있는 사회적경제 주체 다수가 활동하는 도시였기 때문에, 행정 지원은 전주의 주택 사업 추진에 윤활유 역할을 해냈다. '전주 달팽이집'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주택이 공급되며, 지역 사회주택의 선도적인 사례가 됐다.
"정주의 지속성이 생겼어요. 어느 지역으로 가도 사회주택 안에서 시작한 게 아니라면 10년 넘게 쭉 살 수 있겠다는 믿음이 없었을 거예요. 입주자들의 연결로부터 오는 안정감이 컸어요. 관계에 대한 믿음, 거기서 오는 편안함, 따뜻함이 있었어요. 함께해도 괜찮겠다는 확신에 믿음을 준 게 굉장히 컸죠."
비록 여섯 세대만 입주 가능한 단독주택일 뿐이지만, 전주 달팽이집에는 전주에서 장기적인 미래를 걸고 활동하는 지역의 청년 활동가 및 기획가들이 모여 있다. 특히 상가용 공간이 주택과 함께 공급되면서, 입주자들은 이 공간을 마을 사업을 위한 아지트로 쓰고 있다. 서울의 사회주택은 주로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간으로만 인식되지만, 지역에서는 활동, 일자리, 마을 공간의 콘텐츠와 결합되어 또 다른 모델을 개척 중이다.
전주 달팽이집 협동조합의 정은실 이사장은 타지에서 전주로 전입한 사람이다. 전주에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뿐이었지만, 달팽이집의 인연을 통해 이사장까지 맡게 되었다. 정씨는 "일 년 만에 내가 마치 여기 전주에 십 년 살았던 것처럼 관계가 연결됐다"면서 타지 출신의 부담을 극복하고 자신의 관심 및 전문 분야에서 일자리까지 구한 이야기를 전했다.
다른 입주자들 역시 달팽이집을 통해 정주의식을 갖고 정착하게 된 스토리가 있었다. 정씨에 따르면 "친구들 역시 처음에는 서울에 집중되는 다양한 자원을 따라 상경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서, 함께 모여 살다 보니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었고, 다시 지역에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고 말했다.
"달팽이집이 있는 원도심 중심으로 거점들이 다양하게 있어요. 원도심을 사랑하고 유지해 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 예를 들면 공유 공간으로 청년들의 활동 콘텐츠 제작 등을 지원하는 둥근 숲, 남부시장 안에 청년들의 창업과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청년몰, '고물자 골목' 안에 자신들의 활동으로 공간을 유지해 가고 있는 다양한 그룹들.
이 친구들과 마을에서 함께 사는 게 무엇인지, 함께 산다는 게 얼마나 즐겁고 유쾌할 수 있는 일인지를 알리고 싶어요. 그 안에서 관계를 형성하는 일을 조금 더 중점적으로 하고 싶어요. 그게 완산동까지 이어져서, 이 마을을 지나다니고 여기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 편안하고 따뜻한 경험으로 와닿을 수 있는 일들을 만들고 싶어요."
주거 그 이상의 공간
달팽이집으로 인해 지역에 정주의식을 가지게 된 청년활동가들은 각자의 사업을 연결하며 마을 공동체 및 도시재생 활동까지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잠시 중단이 되었지만, 2018년과 2019년은 '완산골 영화제'를 주도적으로 기획하였으며, 남부시장의 청년몰과 연계한 프로젝트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역의 주택 정책은 일자리, 문화, 교육 등 다른 정책과 결합하지 않고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데, 지역의 사회주택은 복합적인 주택 정책을 펼치는 좋은 사례를 이미 만들고 있었다.
물론 예산의 제약으로 사회주택이 급속히 확장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전주시는 지자체 예산치고는 상당한 금액인 10억을 매년 편성하지만, 집을 짓는 것 자체가 워낙 큰돈이 오가기 때문에, 겨우 한 채 정도 지을 수 있는 수준이다. 지역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다행히도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 최근에 들렸다. 국토부에서 지역의 사회주택 활성화를 위해 맞춤형 정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정부 사업이 내실 있게 마련된다면, 지역 주체들에게는 지속가능한 예산과 사업 다각화를 통해 사회주택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일로써 성공하더라도, 삶의 모든 근간이 되는 집이 불안하고 흔들리면 다른 영역까지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긴장을 내려놓고 편하게 쉬면서 고민을 풀어낼 수 있는 공간(집)을 만들고 싶어요.
이전까지 집이란, 내가 준수해야만 하는 것들이 많았어요. 기성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부여되는 일들이 많았던 것이죠. 하지만 여기서는 최소한의 규칙만을 지키면 나머지는 우리 모두에게 자유가 존중되죠."
전라북도의 유출 인구 중 무려 70%가 청년이다. 청년이 떠나며 인구 소멸을 목전에 둔 도시가 많아지는 오늘날, 전주 달팽이 협동조합 조합원들의 바람에서 시작한 작은 시도가 의미하는 바는 정말 크다. 지역에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생기고, 그곳에서 함께할 관계를 이루어야, 비로소 정주의식이 생기고 정착에 대한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다. 전주 달팽이 협동조합, 그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명확하다. 주거 그 이상의 공간, 그들에겐 동료와 새로운 가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