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적 근로계약'을 '승진'까지 인정한 법원 판결이 나와 관심을 끈다.
24일 부산고등법원 창원재판부 제1민사부(재판장 김관용·최승원·이상완 판사)는 운전직 노동자 김아무개(창원)씨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주)(옛 삼성테크윈, 아래 원청)를 상대로 낸 '호봉 정정 등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청에 대해 김씨의 호봉을 '부장(G급) 3년차'로 정정하고, 임금 1억 2300만원을 지급하며, 소송 비용을 원청이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김씨는 2020년 9월 1심에서 패소했는데 항소심에서 뒤집어졌다.
김씨는 1990년 8월 옛 삼성테크인에 정규직으로 근무하면서 운전업무를 수행했고, 1998년 9월 퇴사한 뒤 원청과 계약을 맺은 도급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일해 왔다.
그러다가 도급업체가 2016년 7월 폐업했고, 김씨는 이때 촉탁직으로 재입사한 뒤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김씨는 이 회사의 방산물량 수송 차량 운전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회사는 김씨가 도급업체에서 일했던 기간 동안 호봉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김씨는 최초 입사부터 현재까지 계속근로를 인정해 달라고 했다.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 성립 여부'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1998년 원청에서 퇴사한 뒤 그 무렵부터 도급업체 소속으로 회사의 업무용 차량에 관한 운전 업무에만 종사하였고, 이외 다른 회사의 차량을 운전하는 업무는 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도급계약의 본질적 업무에 필요한 핵심 자산이라 할 수 있는 '차량' 일체는 회사의 소유였고, 도급업체 스스로 소유한 차량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도급업체가 소유하였다고 볼만한 부동산이나 동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원청이 도급업체 근로자들을 '비정규직' 일종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도급업체의 존폐를 원청이 사실상 결정할 수 있는 관계에 있었던 곳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근로제공방식에 대해, 재판부는 "원청 직원이 배차계획표를 작성하면 도급업체 대표는 이를 각 운전자들한테 그대로 전달했다"며 "결국 방산물자에 관한 차량 배치와 방산물자 수송에 관한 업무지시는 전적으로 회사가 하였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또 재판부는 "김씨는 도급업체 소속이면서도 회사의 각 현장부서로부터 수시로 지게차 상·하차 작업에 관한 요구를 받고 그 작업을 하였다"고 했다.
재판부는 임금 지급에 대해 "도급업체가 독립적, 독자적으로 수익사업을 해온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고, 취업규칙 등에 대해 "도급업체는 여러 부분에서 원청의 취업규칙을 따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김씨와 원청 사이에는 김씨가 도급업체에서 근무한 기간 동안에도 직접 원청이 김씨를 채용한 것과 같은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설립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며 "따라서 김씨가 회사에 최초 입사한 1990년 8월부터 현재까지 원청의 계속근로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호봉 정정'에 대해, 재판부는 "계속근로가 인정됨에 따라 호봉을 2019년 3월 기준 'G급 3년차'로 인정할 수 있으므로 정정할 의무가 있고, 취업규칙 또는 단체협약에 따라 김씨한테 적법한 지위를 부여할 의무가 원청에 있다"고 판결했다.
호봉 정정에 따른 임금 지급도 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재판부는 명절상여금, 목표인센티브, 성과인센티브, 설귀성여비 등을 포함하면 김씨가 받아야 할 임금이 총 3억 750여만원인데, 그동안 받은 임금 1억 8410만원을 빼면 1억 2334만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원청은 김씨에게 승격심사에 필요한 어학 자격이나 충분한 고과점수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나, 김씨가 1998년 9월경 원청에서 퇴사하였다가 2016년 7월 원청에 촉탁직으로 재입사한 후 2018년 7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되어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었던 그 동안의 경위에 비추어 볼 때, 원청 주장의 사정을 김씨의 책임 내지 불이익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김씨의 '위자료' 청구는 "이유 없다"고 판결했다.
김아무개씨를 변론했던 김두현 변호사(금속노조법률원)는 "운전직의 묵시적 근로계약 사건이다. 2016년경 원청에서 계약직으로 직접 고용을 하여서, 호봉정정을 청구한 사건"이라고 했다.
그는 "묵시적 근로계약을 인정하면서 해당 기간 동안 대리-과장-차장-부장의 승진까지 '표준승진연한'에 따라 인정하여 '부장 3년차로 호봉정정'을 인용한 판결"이라고 했다.
그는 "계속 근로기간 동안 호봉승급이야 인정될 수 있지만, 고과점수와 승진심사까지 거치는 직급승진까지는 불확정적이기 때문에 인정해준 사례가 없었다"며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직급별 '표준체류연한'에 따른 승진을 그대로 인정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두현 변호사는 "같은 법리를 향후에 부당해고사건에도 적용 가능할 수도 있고, 해고기간 동안 승진도 일정하게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