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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아 한국미얀마연대 대표(오르쪽)가 <오마이뉴스> 의뢰를 받아, 미얀마 군경이 쏜 총에 13살 아들(포세인)을 잃은 어머니 띤띤뇌씨를 화상(줌)으로 인터뷰 하고 있다.
 조모아 한국미얀마연대 대표(오르쪽)가 <오마이뉴스> 의뢰를 받아, 미얀마 군경이 쏜 총에 13살 아들(포세인)을 잃은 어머니 띤띤뇌씨를 화상(줌)으로 인터뷰 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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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6일 오후 1시 45분] 

"중학생 아들이 미얀마 군경이 쏜 총에 맞아 죽었어요. 시신은 이틀 뒤에 경찰이 알려줘서 겨우 볼 수 있었습니다."

미얀마 쿠데타 군인·경찰이 쏜 총에 13살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을 자세히 털어 놓았다.

<오마이뉴스>는 조모아 한국미얀마연대 대표를 통해, 지난 25일 미얀마 양곤에 살고 있는 '띤띤뇌'(40)씨와 화상(줌) 인터뷰를 가졌다.

띤띤뇌씨의 아들(포세인, 13살)이 지난 6월 19일 밤 12시경 집 근처에서 놀다가 군경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것. <오마이뉴스>는 포세인군의 사망 소식을 듣고 유가족 인터뷰를 요청했다. 

띤띤뇌씨의 증언에 의하면, 중학생인 포세인군은 당시 양곤시 바한구에 있는 집 근처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군경이 수배자를 찾으러 왔다는 것이다.

군경이 조사하던 중 어른들이 도망치자, 놀고 있던 아이들도 따라서 달아났다. 그러자 군경이 도망치는 사람들을 향해 총 4발을 쐈고, 그때 도망치던 포세인군이 총을 맞게 된 것. 

띤띤뇌씨는 "우리 아이가 총탄을 맞고 넘어졌다. 쓰러진 아이를 군인과 경찰들이 끌고 갔다"면서 "수배자를 찾다가 못찾으니까 총탄을 맞은 아이를 경찰차량에 싣고 간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당시는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고, 밤에 밖으로 나가는 게 위험해서 아들을 찾아 나설 수가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다음 날 새벽부터 하루종일 근처에 있는 병원에 찾아 다녔다. 그녀는 "아들을 찾지 못하고 저녁 늦게 어두컴컴해서 집에 다시 돌아 왔다"라고 설명했다. 

포세인군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누나 3명과 남동생 1명이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이들 가족은 버마족이다.

"아들 몸 속에 총알 박혀 있었다" 
  
6월 19일 밤 양곤시 바한구 집 근처에 놀다가 쿠데타 군경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포세인(13) 군의 생전 모습.
 6월 19일 밤 양곤시 바한구 집 근처에 놀다가 쿠데타 군경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포세인(13) 군의 생전 모습.
ⓒ 미얀마 C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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띤띤뇌씨는 "19일 밤, 군경이 총을 쏘았을 때 우리 아이 한 명만 사망했고, 다른 사망자나 부상자는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당시 민주화시위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했다. 띤띤뇌씨는 "당시 아이들은 시위현장에 있었던 게 아니고, 집 근처에서 다른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요즘 양곤시에서는 반독재 시위를 대규모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그래서 일부 게릴라 시위를 하고 있다. 군경의 억압이 심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민들은 무서워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가 힘들다"고 덧붙였다. 

아들의 사망 소식은 이틀 뒤에 알려졌다. 21일 오전 11시경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아이가 죽었다"며 "장례 절차를 준비하자"고 했다는 것. 

어머니는 경찰과 함께 양곤시내 병원을 따라갔고, 거기서 아들의 시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띤띤뇌씨는 "아이의 몸 상태를 보니, 목에 총알을 맞은 흔적이 있었고 몸 속에 총알이 박혀있는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어머니는 죽은 아이를 위한 마지막 의식으로 시신 앞에 '밥'을 차려 놓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조모아 대표는 "미얀마에서는 죽은 사람한테 마지막으로 밥을 지어 올린다"고 했다.

띤띤뇌씨는 "경찰은 그날 오후 1시경 아이 시신을 묘지로 보내겠다고 했다"며 "우리는 너무 힘들었다. 아이 얼굴을 한번 더 보고 집으로 왔다"고 했다.

경찰이 관을 만들어 죽은 아이를 묘지로 이동시켜 장례를 치렀다는 것이다.

띤띤뇌씨는 "우리 사는 동네(양곤시 바한구)에서 군경에 의해 주민이 희생되기는 아들이 처음"이라고 했다. 

"아들을 죽인 군경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자 그녀는 "지금은 쿠데타를 당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며 "소송이나 고발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더 힘들다"고 했다.

미얀마 국민들은 쿠데타 이후 삶이 더 힘들어졌다고 한다.  띤띤뇌씨는 "우리는 하루 일을 해야만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활이다"며 "그런데 쿠데타 이후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졌다. 생계가 많이 힘들다"고 설명했다. 

"한국이나 국제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했더니, 띤띤뇌씨는 "한국인과 한국에 있는 미얀마 사람들이 많은 힘을 보여주고 있다. 계속 도와달라. 우리를 도와주는 분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남미얀마교민회(대표 네옴)는 그동안 모은 '미얀마 민주주의 연대기금' 가운데 10만원씩을 매달 포세인군 가족한테 후원하기로 하고, 6월치를 보냈다.

한국미얀마연대는 2월 1일 쿠데타 이후, 미얀마에서 군경에 의해 사망한 20살 이하 사망자가 70여명이라고 밝혔다.

태그:#미얀마, #한국미얀마연대, #군부 쿠데타, #경남미얀마교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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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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