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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11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학원 강북본원 앞에 수험생 보호를 위한 방문자 출입통제 강화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지난 2020년 11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학원 강북본원 앞에 수험생 보호를 위한 방문자 출입통제 강화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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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둘째는 다시 수험생(재수생)이 되어 올 초부터 독학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9월 모의평가(아래 모평) 원서 접수 둘째 날인 6월 29일 저녁을 먹은 후 스터디 카페를 향하는 아들과 옆지기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아들아! 학원 말이야, 재원생들 외 일반인들 9월 모의평가 원서 접수가 이미 마감되었다더라.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렸다고 하니, 모교에 빨리 원서 접수하는 것이 좋지 않겠니?"
"학교는 괜찮지 않을까?"


6월 30일 원서 접수 셋째 날, 저녁을 먹은 아들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학교 홈페이지에 모평 원서 접수에 관한 공지가 사라졌어!"
"그럼 내일 학교 행정실에 전화해 봐!"


7월 1일 원서 접수 넷째 날, 점심을 먹은 둘째가 모교 행정실에 전화를 걸었다. 행정실 직원의 말에 기가 막히다. 

"마감 되었어요. 교육청이나 평가원에 알아보세요."

아들은 부리나케 인터넷 검색을 해 지역 교육지원청으로 전화를 걸었다. 

"학원에 알아보세요."

아들은 이제 전화를 걸 의욕을 상실한 것 같았다. 내가 배턴을 이어받아서 몇몇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한결같았다. '재원생 외에는 받지 않는다'는 대답을 들었다. 9월 모평이 끝난 후, 인터넷에 올라온 시험지를 출력해 혼자서 시험을 봐야 하나?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수험생에게 9월 모평은 아주 중요한 시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다시 교육지원청에 전화를 넣었다. 담당자가 자리를 비워 20분 후에나 전화 통화가 가능하다는 답변이다. 20분을 기다리는 것도 힘든 나는 아들 모교에 전화를 걸었다. 행정실의 답변은 여전하다. 마감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지 않았다. 지금까지 전화를 걸며 배구공처럼 이리저리 토스 당한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담당자를 바꿔주겠다고 했다. 내선이 연결되었지만, 담당자가 시험 감독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화를 받은 선생님에게 '어떻게 좀 안 되겠느냐, 잘 좀 이야기해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50분 정도 기다리니,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6월 모평을 모교에서 본 '진짜' 수험생이니, 자리를 마련해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와, 구사일생이 이런 것인가. 일단은 안도하는 마음이 커서 그 외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부탁을 해야만 시험을 볼 수 있는 상황에 짜증이 났다. 

양심에 호소할 수만은 없다 
 
30세 이상 60세 미만 예비군과 민방위 대원, 국방·외교 관련자 등에 대한 얀센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 6월 10일 오전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한 코로나19 백신접종 위탁 의료기관이 백신 접종자 및 내원객들로 붐비고 있다.
 30세 이상 60세 미만 예비군과 민방위 대원, 국방·외교 관련자 등에 대한 얀센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 6월 10일 오전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한 코로나19 백신접종 위탁 의료기관이 백신 접종자 및 내원객들로 붐비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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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알고보니, 현재 고3인 현역 수험생이 아닌 재수생 등은 9월 모평에 응시하면 8월 안에 화이자 백신을 맞는 게 가능하다. 이 사실을 안 일부 일반인들이 실제 수능 응시를 할 생각이 없음에도 더 빨리, 선호하는 화이자 백신을 맞기 위해 9월 모평에 응시한 것이다. 모평 접수가 일찍 끝난 건, 이런 영향 때문인 듯했다. 실제 종로학원의 조사에 따르면, 25세 이상 응시자가 예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고 한다. 

화이자 백신을 맞기 위해 수험생 행세를 하는 사람을 무조건 탓할 생각은 없다. 좀 더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은 아들을 탓할 생각도 없다. 그보다 이런 사례가 얼마나 많을지 정확하게 가늠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은 정부 부처가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실제 모평 접수 전부터 허위 응시가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했다. 이에 따라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 바 있다.

이같은 '예측'이 실현되자, 교육부는 "수험생들은 학교시험장, 학원시험장, 교육청시험장에서 모의평가에 응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모평 접수 현황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시험장을 적절하게 운영함으로써 희망하는 모든 수험생에게 9월 모의평가 응시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것은 달랐다. 일선의 공무원들은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방안을 찾아주기보다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아들은 시험을 볼 수 있게 됐지만, 이는 내가 직접 나서서 학원·학교·교육지원청 등에 여러 차례 통화를 한 후에야 가능했다.  

이렇게 당사자가 직접 '읍소'에 나서지 않아도, 시험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깔끔한 절차가 마련돼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게 학부모로서의 솔직한 심정이다. 각 주체가 '마감되었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험 접수가 가능한 곳을 바로 연결해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누군가 지금도 원서 접수할 곳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관계 부처가 더 탄탄한 대책을 마련해주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9월 모의고사 , #화이자백신,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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