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에게 '이대녀'라는 기묘한 이름이 생긴 것은 2021년 4월 8일의 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20대 남성에게 4월 8일 '이대남'이라는 이름이 먼저 생겨났기에 '이대녀'라는 이름도 탄생할 수 있었다.
4월 7일 재보궐선거에 '이대남'들은 60대 남성보다 보수에 더 많은 표를 던졌고, 이에 깜짝 놀란 정치권과 언론들은 20대 남성을 '이대남'이라 부르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20대 남성이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이대남'들의 투표를 'LH사건' 및 '조국 사태' 등의 공정성 담론 위에서 해석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페미니즘에 대한 분노"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에 발맞추어 정치인들도 '이대남'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미 위헌 판정을 받은 군가산점제 도입, 여성징병제 도입, 심지어는 "군대 간 것 벼슬 맞다"라고 말하는 정치인들까지 생겼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이름을 가지게 된 '이대녀'에 대한 이야기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페미니즘이 성경이냐"라고 말했던 정치인 이준석이 국민의힘 대표가 되는 시대, "페미니즘에 반대한다"라는 말을 하는 정치인들이 점점 늘어나는 시대. 2021년 4월 7일 이후 페미니즘이 모든 악의 근원처럼 여겨졌고, 그 속에서 20대 남성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20대 여성은 마이크도, 스포트라이트도 없이 이름으로만 남았다. '정치' 속에 페미니즘은 없었고, '청년' 속에 여성이 없었으며, '이대녀'라는 말 속에 '이대녀'의 삶은 주목되지 못했다. 이 블랙코미디 같은 일들은 곧 하나의 커다란 원기옥이 되어 새로울 것 없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야한다." 대선 주자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 무엇이 문제인가
'이대녀'의 한 명으로서 아주 어릴 때부터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야한다는 다양한 주장을 듣고 살아왔다. 청소년 때는 여성가족부에서 보리모양의 과자인 '죠리퐁'이 여성 성기를 닮아서 판매 금지를 고려했다는 괴소문이 돌았고, 대학생 때는 학생들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제로 토론하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 심지어 2008년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여성가족부는 여성 권력을 주장하는 사람들만의 부서"라며 여성가족부를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이번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도 새롭지 않다. 하태경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은 벌써 여러차례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한 정치인들이기도 하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한 후 다른 부처에서 항목별로 여성 이슈를 다루어야 한다는 유승민 전 의원의 주장은 일면 타당해 보이지만 실효성은 없다. 당장 성인지 예산조차 잘 쓰지 못하는 부처들이 한가득인 상황에서 여성가족부 없이도 여성정책이 잘 굴러갈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나 다름없다.
2021년 성인지예산서 분석 결과, 성평등 목표달성에 직접 기여하는 사업의 규모가 3년간 가장 늘어났다고 평가된 곳은 국방부였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 공군 성폭력 사건으로 국방부 내 사건 처리 시스템과 매뉴얼이 어떠한 기능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형편없는 곳에 예산을 사용하는 곳도 많았다. 국토교통부는 '환승센터 구축 지원' 사업을 성인지 예산 사업으로 제출했고, 국회 사무처는 '대한민국 어린이 국회' 사업을 성인지 예산 사업으로 제출했다. 과연 성인지예산 사용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내부 구성원조차 지키지 못하는 지금의 정부 부처가 여성문제를 여성가족부 대신 떠안아서 진행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여성가족부 해체가 아니라 부처별 성인지 감수성 향상을 위한 대책이어야 한다.
여성가족부 폐지가 뜨거운 화두에 오르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질세라 논란에 가담했다. 이 대표는 6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여가부 같은 것들이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안 좋은 방식이다. 나중에 우리 대통령 후보가 되실 분이 있으면 폐지 공약은 제대로 냈으면 좋겠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 대표는 여가부가 존재했음에도 "10년간 젠더갈등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작 이 대표가 어떤 방식으로 지지를 얻었는지를 생각한다면 과연 '젠더갈등'이라는 것을 누가 부추기고 있는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 대표는 "페미니즘이 성경이냐"라는 말을 하고, 자신과 함께 당대표 후보로 나온 이가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는 글을 남기자 Q.E.D(증명 완료)라는 말을 썼으며, 여성할당제 폐지를 주장했다. 그리고 그 말들로 인기를 얻었다.
평범한 '이대녀'인 나의 눈에는 이 모든 행위가 오히려 '젠더 갈등'의 원흉처럼 보였다. 유구한 역사동안 반복된 여성혐오에 침묵하던 여성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젠더갈등'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정의로운 언사로 보이지 않았다.
'이대녀'에겐 여성가족부가 필요하다
현재 가장 두드러지게 여성가족부 폐지를 외치고 있는 세 명의 정치인 하태경, 유승민, 이준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그리고 많은 '이대녀'들에게 여성가족부는 아직도 필요하다. 여성 폭력과 생계, 주거의 문제, 직장의 문제 등에서 수많은 '이대녀'들은 여성가족부의 도움을 받았다. 여성가족부는 성별임금격차의 문제와 성불평등지수, 여성 고용률 등을 조사하고 통계로 정리하여 발표하는 유일한 부서이기도 하다. 또 '정상 가족'이라는 신화를 해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나도 여성가족부에서 주최하는 청년 성평등 문화 플랫폼에 참여하여 동년배 청년들과 여성 정책에 대해,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공부했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동시에 여성가족부가 하는 일은 '이대녀'뿐만이 아닌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청소년 지원 정책과 가족과 관련된 정책, 성범죄에 관련된 정책의 대상자는 모든 사람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진짜 문제가 되는 사안은 여성가족부가 해결해야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에도 권한과 재정이 약하다라는 점이다.
국가 전체 예산의 0.2%밖에 되지 않는 예산, 정부의 눈치를 보아야하는 힘없는 장관의 모습, 여성가족위원회가 아직도 국회 겸임상임위인 현실, 인력 부족 등의 문제는 여성가족부가 제 힘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세 명의 정치인이 해명하는 말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인기 몰이의 형식이 아니라 진짜 대한민국의 여성 정책을 위해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했었다면, 세 정치인들은 바로 이 지점부터 지적했어야 했다. 해경 해체만큼 비논리적 언사인 "여성가족부 폐지"는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여성가족부 폐지를 큰 논리 없이 주기적으로 내놓는 정치권의 변화도 필요하다. 세상의 변화 없이 '이대남'들의 분노를 부추기는 것만으로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으른 믿음이 점점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며 오히려 대책과 대안은 후순위로 밀렸다. 성평등에 대한 비전이 없다는 사실을 대선 주자들이 자랑스럽게 펼치고 있을 때 정치는 미래를 제시하는 방향타가 아닌 인기 몰이의 영역에 놓이게 되었다.
'이대녀'에 대해, 여성 문제에 대해,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은 인기의 비결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태경, 유승민,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이야말로 여성가족부, 그리고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