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에 사람들은 몸보신을 하기 위해 여러 음식을 찾는다. 그중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찾는 음식은 닭죽이나 삼계탕이다. 학생식당이나 구내식당에서도 복날이 되면 닭죽이나 삼계탕이 특식으로 나온다.
굳이 복날이 아니어도 '1인 1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치킨은 인기 있는 음식이다. 2019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가게는 전국에 총 21만5188개가 있는데 편의점(4만1394개), 한식음식점(3만927개)에 이어 치킨전문점(2만5687개) 3위를 기록했다.
튀김옷이 묻은 닭과 원형 보울에 담긴 닭은 어떤 삶을 살다 왔을까? 7월 7일 동물권 운동 단체 '서울애니멀세이브'는 초복(7월 11일)을 대비해 경기도 북부의 한 도계장에서 비질(도축장 등을 방문해 목격하고 기록해 공유하는 행동)을 진행했다.
해당 도계장은 국내 닭고기 업체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이 운영하는 곳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도축 실적에 따르면 2021년 5월 말 기준, 5개월간 1500만 명(命)을 도축했다. 하루 평균 15만 명(命)이 인간이 먹는 고기가 되기 위해 죽는다. 그곳은 학살의 현장이었다.
여기, 동물이 있다
도살장으로 향하는 닭들을 애도하고 진실의 증인이 되고자 하는 시민들이 비질에 참여했다. 뙤약볕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닭을 실은 차가 오지 않았다. 서 있기만 해도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몸은 지쳐갔다.
여름철에는 온도와 습도가 높기 때문에 생계 운송 차량은 보통 낮보다는 새벽과 이른 아침에 이동한다. 온도와 습도가 높으면 닭들이 운송 중에 많이 죽기 때문이다. 운송 차량이 뜸해 우리가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드디어(?) 저 멀리 차가 오기 시작했다. 활동가가 피켓을 들고서 차를 세웠고 다른 활동가는 운송기사에게 잠깐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동안 시민들은 트럭 곁에 서서 닭장 속의 죽은 닭, 죽어가는 닭, 살아있는 닭을 보았다.
닭장의 닭은 무더운 날씨에도 숨을 쉬어보겠다며 고개를 내밀고 삐약삐약거렸다. 개중에는 이미 숨을 거둔 닭도 있었다. 채 자라지 않은 벼슬은 빈혈로 인해 붉은 기가 없었다. 그렇게 1~2분이 지났을까. 운송기사는 "닭들이 죽으면 책임질 거냐?"라고 외치며 경적을 울렸다. 활동가는 옆으로 비켜섰고 차량은 도살장 안으로 들어갔다.
차를 잠시 세운 활동가의 행위도, 닭의 생명을 운운했던 기사의 말도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닭에게는 참으로 '인간적'인 언행이었다. 물론 닭의 생명을 이야기했던 기사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정차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노동시간도 길어지고 닭들에게 고통이 가해지는 시간도 늘어난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빽빽이 채워진 닭장에 있는 닭들이 죽어가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활동가들은 차를 세워 비질을 해야 했다. 이는 진실을 세상 밖으로 가져오려는 행위이자 저항이었다. 고통당하고 학살당하는 비인간 동물은 말이 없기 때문이다.
트럭에 실린 닭은 '육계'로 불리는 닭이었다. 육계는 무게에 따라 호수가 달라지는데 지육 기준 950g~1050g는 '10호'다. 보통 프랜차이즈 치킨 집에서 사용하는 닭이 10호다. 엄밀히 말하면 이 닭들은 닭이 아니다. 30일 된 병아리다. 다큐멘터리 <도미니언>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자연 상태의 닭이 동일한 크기로 성장하려면 3배 정도, 약 96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단시간에 닭의 크기를 키우는 걸까? 얼마 전 밤에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 중이었다. 밤이 되어 칠흑 같이 어두운 시골이었지만 양계장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밤중에도 양계장 불이 켜져 있는 이유는 닭이 잠들지 않도록 해, 끊임없이 사료를 먹이기 위함이다.
육계로 사육되는 닭이 먹는 사료에는 성장호르몬과 항생제가 함께 급여된다.
이렇게 사육된 닭은 인간이 원하는 일정한 무게가 되면 도계장으로 운송되어 도살된다. 경제성을 위해 인간들이 만들어낸 기발한 '과학적'인 사육, 운송, 도살 방식이다. 무항생제 사료를 쓰고 동물복지 인증을 받는 양계장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이같은 방식이 일반적이다.
복날에 유독 더 많이 도살되는 닭
우리나라의 여름엔 '복날'이 있다. 보통 7월 초부터 8월 초 정도에 초복, 중복, 말복이라는 세 개의 복날이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자료를 확인해보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7월의 도살량이 급증한다. 3년 간 7월에만 매달 평균 1억 1000만여 마리의 닭이 도살되었다.
2020년에는 10억 7000여 마리의 닭이 도살되었다. 매년 인간동물을 위해 10억여 개의 비인간동물 지옥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사회가 만든 지옥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는 닭에게만 해당하는 수치라는 점이다. 게다가 도축량에 해당하는 수치이기 때문에 사육하는 과정에서 태어나고 죽는 수많은 병아리와 닭의 수는 제외되어 있다.
이번 비질에서 목격한 것 중, 도계장 주변의 고약한 냄새와 잔혹한 풍경도 기억에 남지만 무엇보다 도계장 내 안전문구가 기억에 남았다. '살아 숨쉬는 위생관리, 생존하는 우리 회사', '위험을 보는 것이 안전의 시작이다'.
이 세상에는 어떤 존재들이 살아 숨쉬고 생존하는가. 무엇이 위험이고 안전인가. 참 아이러니한 문장에 한참 생각에 잠겼던 순간이 떠오른다. 찰나의 순간을 위해 차를 멈춰 세운 활동가들, 차를 세우는 건 불법이라고 말하는 사회, 인간들의 갈등 속에서도 정해진 운명대로 도계장으로 향하는 닭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우리가 고민하고 논쟁하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복날을 위해, 우리의 '1인 1닭'을 위해 수많은 닭이 무참히 살해되고 있다.
'여기, 동물이 있다.' 덧붙이는 글 | 비질(vigil)은 Animal Save Movement 단체에서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활동입니다. 비질은 이해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꼭 한 번 참여해보길 권합니다. 2021년 7월 기준, 비질은 서울애니멀세이브(https://linktr.ee/seoulanimalsave)에서 진행하고 동물권 활동가들의 소모임으로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비질은 모든 도살장을 지켜보며 모든 착취당하는 동물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비질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페이스북 비질 소모임 계정(https://www.facebook.com/groups/470566474214410)으로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해당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