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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내 삶을, 우리의 삶을, 전 세계인들의 삶을 덮친 지 1년 6개월여가 흘렀습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아득함 속에서 매일 매일 고군분투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의료진인데요. 그들은 1년여 넘는 시간 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요? <오마이뉴스>는 보건의료노조가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코로나와 싸운 1년 우리들의 땀과 눈물' 수기집 공모 응모작 중 몇 편을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PA의 급격한 양산과 불법의료 행위의 본질적 문제는 의사 부족이다.
PA의 급격한 양산과 불법의료 행위의 본질적 문제는 의사 부족이다. ⓒ 픽사베이
 
요즘 코로나19 확진자가 크게 늘고 있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병원 현장은 다시 긴장된 날들의 연속이다. 코로나로 인해 병원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인력부족 문제와 관련해서는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다. 

뉴스를 보면 심심치 않게 불법의료에 대한 기사를 접하게 된다. 묵인되던 PA(진료보조인력) 간호사들의 문제가 점점 수면으로 올라오고 있다. 불법의료행위는 의료진에 대한 환자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실 당사자에게도 무척이나 좌절스러운 말이다.

특히 열심히 일한 PA노동자들에게는 상실감과 불쾌감으로 다가온다. 의사 인력이 부족한 현실에서 PA는 보험 하나 없이 위험한 상황에서 의료공백을 메우고 있다. 그러나 큰 무게감과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지고 일하는 자리인 것은 분명하다. 현재 불법의료행위가 많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반대로 의료 현장에서 PA 역할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PA노동자의 불법의료행위는 의료현장 곳곳에서 이뤄진다. 처방, 동의서, 수술, 시술, 진단서 등 환자의 치료 과정에 전반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PA는 매번 바뀌는 전공의보다 업무의 숙련도가 높다. PA는 부서이동이 없기 때문에 일의 연속성에 있어 유리한 위치에 있다. 전공의가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이유로 아직까지 많은 병원에서 PA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인턴 배정 받지 못하는 달에는 고스란히 인턴 역할까지

나는 외과 병동에 10년 근무 후 비뇨의학과 PA로 4년간 일했다. 비인기과인 비뇨의학과에는 전공의가 없고, 두 달에 한 번씩 배정받는 인턴 인력이 전부다. 인턴을 배정받지 못하는 달에는 내가 고스란히 인턴의 역할을 해야만 했다. 의료행위 시 위험을 감수하며 인턴의 빈자리를 채웠고 불법의료행위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료사고가 날까 늘 두려웠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환자들을 상대로 검사와 치료를 하였다. 스스로 독립을 해야 했기 때문에 PA의 존재에 대해 돌아볼 여유도 없이 열심히 살았다. 불안에 떨며 일하던 새내기 시절, 정식적인 교육과정 없이 바로 업무가 시작됐고 나의 실수는 환자의 안전권을 위협하는 사고로 이어졌다.

암 수술을 한 환자들은 배액관을 달고 나오는데, 이는 불순물이나 고인 피가 잘 배액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주머니이다. 일주일 후 배액관을 제거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배액관 제거 시 안쪽으로 고정되어 있는 실을 커팅해야 하는데 바깥쪽 실을 끊어버려 실매듭이 살 쪽으로 파고들었다. 환자는 일주일 후 남은 실 한 가닥 때문에 염증치료를 해야 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변변치 않은 양두구육(洋頭拘肉)식의 의료를 제공한 셈이다. 결국 모든 위험과 불편은 환자가 감수하게 되는 불법의료행위의 민낯을 보여준 것이다.

PA업무가 시작될 때 단계적인 교육은 물론 법적 보호를 받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훨씬 더 체계적으로 정착했을 것이다. 임상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간호사에게 임상전문간호사 면허제도를 만들어 훈련시키고,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의료행위의 범위를 넓혀 준다면 인력 부족의 목마름을 조금이나마 해결해 줄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지난 22일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지난 22일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나는 경력이 쌓이고 일이 손에 익으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러나 또다시 사고는 터지고 말았다. 어느날 신장암 진단을 받고 입원한 70대 환자를 맡게 되었다. 그 분은 신장절제술을 위해 입원하였고, 기저질환은 고혈압 뿐이었다. 나는 수술 전날 신장절제술에 대한 내용을 설명한 뒤 수술 동의서에 첫째 딸의 서명을 받았다. 수술 진행 후 마취에서도 잘 깨어났고, 활력 징후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퇴근 뒤 집에 도착 후 전화 한 통이 왔다. 해당 병동 수간호사였다.

"O호 신장절제술 환자 지금 돌아가셨어. 남자 보호자가 동의서를 떼어 달래. 괜찮겠지?
"네? 수술 잘 끝났는데 돌아가셨다구요?"


나의 심장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혈압이 조금씩 떨어져서 수혈을 했는데도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으시더라고. 심박출량 저하로 쇼크가 온 거 같아."

놀람과 동시에 보호자가 동의서를 떼어 간다는 말에 환자의 걱정보다는 내가 받은 동의서가 문제가 될까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병동 간호사에게 전자 동의서 받은 것을 확인해달라고 급히 전화했다.

"혹시 내가 동의서 부작용에 사망이라는 곳에 밑줄을 그었나요?"
"아니요. 밑줄이 그어져 있지는 않아요."


밑줄을 그었다는 것은 반드시 설명했다는 일종의 서로 간의 표시인 셈이었다. 밑줄 하나에 나의 생사가 걸려 있다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고, 보호자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되어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음날 나는 발목에 모래주머니 100개는 찬 듯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했다. 멀리서 지켜보니 역시 아들 보호자가 왔고 병동은 시끌벅적하였다.

"동의서 받을 때 사망할 수 있다는 부작용을 설명했으면 우리 어머니 수술 안 시켰을 거예요. 동의서 떼어 보니까 사망 설명에 표시는 따로 없었는데 사망 부작용에 대해 설명한 거 맞아요? 그 때 가운입고 받은 사람이 어떤 의사에요?"

보호자는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은 표정으로 수간호사에게 윽박을 질렀다.

"동의서 설명한 사람은 전담 간호사입니다."

수간호사는 큰 죄를 지은 거마냥 고개를 떨구며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간호사라구요? 세상에 기가 막혀. 이런 큰 수술 동의서를 받는데 의사는 없어요? 무슨 대학병원이 이래요? 나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이건 불법의료라구!! 그 간호사 신고할 거예요."

보호자는 사망할 수 있다는 설명만 들었다면 수술을 시키지 않았을 것이고 이 일은 바로 그 간호사로 인해 벌어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 하였다. 나는 이 사건 이후 그럴듯해 보이는 껍데기를 벗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PA의 정체성 때문에 고통을 느꼈다. 이 일은 정말 나 때문인가? 애초에 의사가 할 일을 간호사가 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고질적인 의사 부족은 16년째 동결된 의대 정원과 전공의 수련시간을 80시간으로 제한하는 법률로 인해 공백이 더 커졌다. 여기에 대한 해결방안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PA 급격한 양산과 불법의료 행위 본질은, 의사 부족
 
폭염과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 전국적으로 폭염특보가 내려진 지난 22일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한 의료진이 오전 검사를 마친 뒤 땀을 훔치고 있다.
폭염과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전국적으로 폭염특보가 내려진 지난 22일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한 의료진이 오전 검사를 마친 뒤 땀을 훔치고 있다. ⓒ 유성호
 
의사와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의료현장에서는 업무 내용 혼선은 물론 의료인 간 갈등 역시 높아진다. 의사업무는 의사가, 간호사업무는 간호사가 하면 된다. 업무에 대한 법적인 재정비와 공식적인 업무분장이 필요하다. 업무 범위를 명확히 구분하여 의료법 등 관련법에 명시해야 한다.

PA의 급격한 양산과 불법의료 행위의 본질적 문제는 의사 부족이다. 불법 PA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의사수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또한 의사 인력을 늘리려면 우리나라 의료수가 체계를 바꾸어야 한다. 현재 많은 의사들은 졸업 후 인기과와 기피과로 나뉘는데, 소위 졸업 후 돈이 되는 성형외과나 피부과에 많이 몰린다. 의사 인력 확보를 위해서는 의료체계를 왜곡시키는 비정상적인 수가체제 개선이 필요하며 정상적인 의료를 펼칠 수 있는 의료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최근 보건의료노조는 국제간호사의날을 맞아 '불법의료 고발 현장 좌담회'를 진행했다. 안전한 의료 환경 조성을 위한 조속한 해법 마련이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보건의료노조는 정부가 책임 있게 나서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환자라면 어디서든 안전한 의료 환경에서 치료를 받게 하자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지금보다 안전하고 신뢰받는 의료가 되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엉킨 매듭을 잘 풀어야 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환자와 국민을 속이는 불법의료행위는 그만 두고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이를 해결함으로써 환자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역할과 소임을 다할 수 있는 보건의료인으로 다가서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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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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