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32도를 넘나들던 지난 금요일, 상수동으로 '침묵의 여행'을 다녀왔다. 완벽한 코발트블루를 말의 잔등과 눈빛에 새겨 넣는 이택희 화백의 전시다. 지난 7월 10일부터 시작해 오는 8월 10일까지 한다기에 늦지 않게 다녀오기로 했다.
100호 정도 되는 캠퍼스에 연필로 그린 여인의 소묘화를 보고는 한눈에 반했던 작가의 작품을 애정한 지 꽤 됐다. 예전에 말 그림들과 소묘화 외에 이러저러한 작품들을 봤지만 개인전은 처음이다.
제목이 '침묵의 여행'이라니... 갤러리 입구에 붙어있는 대형 포스터. 말라가는 낙엽처럼 갈색빛으로 그늘진 여인의 침묵이 무거워 보였다. 극동방송 맞은편 붉은 유료주차장을 지나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갤러리홍'.
어떻게 저 구석의 갤러리를 찾을 수 있겠나 싶지만 어찌됐든 전시가 궁금한 사람들은 물어물어 전시를 보고 갔단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 거리두기 4단계로 진입한 시기여서 이렇다 할 홍보도 못했다고. 그래서인지 거리두기에 적당한 사람들이 하루에 서너 차례 한두 명씩 온다니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작은 갤러리여서 그런지 소품 중심이었고 꽤 많은 작품들이 조금은 비좁게 붙어있다. 여전히 코발트블루 같은 푸른색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몇 점의 붉은 색 계통 그림이 오히려 눈을 사로잡는다.
아프리카조각 같은 누드화, 무표정하지만 슬퍼 보이는 말, 그리고 퀭한 눈의 히스테릭한 여성 누드 '트라우마'라는 제목의 그림이 섬찟하다. 그 옆으로 이어지는 그림들도 외롭고 고독하고 공허하다. '침묵의 여행'은 우울증의 시대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럼에도 그 믿기지 않은 달가움이라니, 예기치 않은 친숙함이라니, 온몸의 세포들이 가려움증에 시달리고 있는 그림 속 주인공들에게서 느끼는 감정. 그건 어쩌면 2년이라는 길고 긴 코로나19로 인한 시대적 우울증을 겪어오고 있기에 알 수 있는 익숙한 감정이 아닐까? 작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전 세계 인류를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떨게 하는 코로나19에 대한 각양각색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훅 몰려들었다.
작가는 팸플릿에 실린 작업노트 글을 통해 이번 전시의 의도를 전했다. 늘 그리던 대로 그린 그림들이라는 걸 말하는 듯 '사람들의 외로움 그리움 그리고 추억과 상상은 양면 속에서 존재한다... 내 그림은 내 삶의 이야기이고 그 속에서 관념들을 나름의 기술로 표현한다.' 그리곤 이렇게 끝을 맺는다. '늘 그리고 싶은 것이 있다'.
작가가 그리고 싶은 것들이라고 고백한 그림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접시 위의 생선을 그린 '이렇게라도 남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우는 소녀 '울지 말아요', 팀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에 나올 법한 여인을 그린 '잔을 든 여인', 엄마의 무서운 잔소리가 드릴 듯한 '히스테리 엄마의 훈육' 등등 겉으로는 결코 아닐 거 같지만 내면은 기실 어두움을 담고 살아가리라 생각되는 그림들. 설핏 이런 생각이 틀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말이다.
'침묵의 여행'은 12회의 개인전과 180여 회의 각종 그룹전 및 초대전을 열어온 구력을 가진 홍익대 서양학과 출신 이택희 화백의 깊은 사유와 농익은 작품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어 의미 있었다. 물론 코로나19로 영혼마저 탈탈 털린 듯 히스테릭, 우울증에 시달리는 우리의 모습이 반영되는 느낌도 지울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