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한부모연합의 연구에 참여한 한 한부모 가장은 소득이 복지선정기준을 초과해 '탈수급'하는 것을 '시베리아에서 남극'으로 내몰리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복지 수급자로 사는 것은 시베리아, 소득이 발생해서 여기서 쫓겨나면 남극이라는 말이다. 정부는 탈수급과 탈빈곤을 돕겠다고 그토록 외치는데 탈수급이 당사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인 한부모가족이 받을 수 있는 복지 기준을 살펴보자. 우선 소득이 전혀 없는 한부모 가장은 소득보장이 가장 절실하다. 이 가족의 소득이 기준중위소득 30%, 2인가구일 때 92만 6천 원 이하일 경우 기초생활수급자로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만약 92만 6천 원 이상의 소득이 발생하면 가족은 수급에서 탈락한다.
그래도 아직 '한부모'로의 복지는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기준중위소득 52%, 2인가족 기준 160만 5천 원 이하의 소득이 있을 때까지는 한부모 복지지원을 받을 수 있다. 20만 원의 아동양육비 같은 것이다. 이 구간을 벗어나면 사실상 복지지원이 끊긴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것은 '법정한부모가족'이라는 이름이다. 기준중위소득 60% 이상, 2인 가족 기준 185만 2천 원 이상의 소득이 생기면 더 이상 법적으로 한부모 가족이라는 표식조차 갖고 있을 수 없다.
수급 가부를 가로 짓는 기준은 아주 강퍅하다. 한부모가족 복지기준과 자격기준은 각각 기준중위소득 52%와 60%로 둘 다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단 185만 원의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거의 모든 복지지원이 사라지니, 소득이 조금 올랐을지는 몰라도 이것이 '시베리아에서 남극으로' 쫓겨나는 일이라는 것은 충분히 현실감 있는 비유다.
위급한 빈곤에도 복지는 복지부동
이렇게 낮은 복지 선정기준은 실제 복지의 필요를 느끼는 대다수 사람을 복지제도 바깥으로 내쫓는 역할을 한다. 한국의 빈곤선은 기준중위소득 50%로 1인 가구의 경우 91만 3천 원이다. 빈곤선 이하라고 자동으로 따라오는 복지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달 100만 원도 없는 사람조차 빈곤 상태는 아니라고 말하는 빈곤선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당신에게 고사 직전의 가난이 올 때까지 사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다. 이런저런 지원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 신청하려고 보면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더라는 수많은 경험담의 한 축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비현실적인 기준중위소득'이다.
중위소득은 전체 국민 소득의 중간값이다. 이를 복지선정 기준으로 사용하기 위해 매년 결정하는 기준중위소득은 2015년 7월 시행됐다. 도입 당시 기준중위소득은 기존 최저생계비가 담아내지 못하던 전체 국민의 상대적 삶의 질 향상 속도를 따라잡겠다고 선언했지만 현실의 결과는 반대다.
2000년 기초법 도입 이래 최저생계비가 평균 3.9%, 최대 7.15% 상승한 것과 달리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은 도입 이후 2.4%에 불과하다. 특히 문재인 정부 4년간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은 평균 2.21%에 불과한데, 같은 기간 최저임금의 상승만 고려해보더라도 현실과 무척 동떨어진 결정이 내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빈곤 심화되는데 예산은 일단 줄이고 보자?
정부가 기준 중위소득 인상을 후순위로 미루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등 다른 사각지대 해소 단계를 밟고 있으니 다른 문제는 다음에 해결한다는 것이다. 2018년 10월 주거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된 뒤 꾸준히 늘어난 기초생활수급자 숫자는 최근 200만 명이 넘었다.
또 하나는 코로나19로 인해 경기가 어려우니 수급자의 수급비와 직접적인 연관(생계급여는 기준중위소득 30%)을 맺는 기준중위소득을 섣불리 인상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근거 모두 빈곤 문제 해결이라는 사회적 관점에서 오답이다. 사각지대 해소와 선정기준, 보장 수준 강화는 선후가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2018년 10월 주거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된 뒤 늘어난 수급자는 지난 12월 방배동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김씨처럼 주거급여 하나만 받는 '얇은 복지' 수급자다.
더불어 수급자가 빠르게 늘어난 시점은 2020년 하반기로 현재 수급자의 증가는 제도 개선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삶이 어려워지고 빈곤이 심화되고 있는 표식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빈곤층이 나날이 늘어나는 시기에 정부는 '수급자가 늘어나니 추가적인 빈곤 정책 제도개선은 필요 없다'는 한가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중앙생활보장위원회 회의에서 기획재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를 이유로 경제 규모 확대, 물가 인상에 따른 기본인상률을 1%로 낮출 것을 주장했다. 원칙대로라면 3년 평균 기준중위소득 평균 인상폭을 반영해야 하지만 코로나로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는 주장이었다.
2021년 한국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4% 이상의 경제성장률과 1% 이상의 물가상승률을 전망하고 있으며,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는 축포를 터트리고 있다. 그러나 올해도 기획재정부는 단 1.4%의 기본인상률을 고집하고 있다. 복지 확대를 최대한 모든 방면에서 지체시키겠다는 아집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기준중위소득 대폭 인상, 빈곤 해결의 디딤돌
재난은 성큼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우리 사회의 변화는 너무나 더디기만 하다. 코로나19로 가게는 폐업하고 청년은 일자리를 잃는데, 집값만큼은 모든 이들의 미래를 담보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코로나19와 폭염, 긴 장마나 혹한이라는 이름의 기후 위기가 가난을 더욱 견디기 힘든 것으로 만드는 지금, 복지제도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빈곤이라는 우리 사회의 리스크는 가난한 개개인에게 모두 전가될 것이다. 가난의 책임과 무게가 개인들에게 돌려졌을 때 발생하는 절망과 죽음을 우리는 이미 안다.
누구나 빈곤을 경험할 수 있지만, 가난에 빠지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의 취지이고 목표였다. 선정기준과 보장 수준을 억지로 낮춰 취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국민의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빈곤 문제 해결에 일망타진이 있겠는가. 다만 복지선정기준인 기준중위소득 인상조차 역행시키는 정부의 '포용적 복지'는 기만이다. 오는 28일, 세종시 보건복지부에서는 내년도 기준중위소득을 결정한다. 이 자리에 참석할 보건복지부 장관과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교육부 차관을 비롯한 고위공무원, 정치인, 전문가들에게 묻는다.
피로 쓰여온 빈곤층의 죽음에도 왜 반성이 없는가. 비현실적인 기준중위소득을 정상화하는 것은 위기의 시대를 함께 헤쳐 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것을 명심해 달라.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