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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렀지만 사상 유례 없는 폭염이 몇 주째 지속되고 있었다. 답사를 다니는 사람들의 최대 난제 중 하나가 날씨라는 변수다. 적당한 기온, 맑은 하늘이면 언제든 여행을 떠나는데 망설임이 없었겠지만 날씨는 변화무쌍한 얼굴로 우리를 괴롭힌다.

장마철엔 비로 인해 진흙밭으로 신발이 성할 날이 없고, 추운 겨울엔 눈길을 뚫고 엄한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 어려움을 감수해야만 한다. 더운 날씨지만 사진이라도 잘 나오는 것을 위안 삼아 힘을 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해 본다.   

조선왕조 최대의 왕실 묘지군, 동구릉
 
동구릉의 터주대감 건원릉의 전경 동구릉의 터주대감 건원릉은 동구릉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조선왕릉의 표본이 되었다.
동구릉의 터주대감 건원릉의 전경동구릉의 터주대감 건원릉은 동구릉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조선왕릉의 표본이 되었다. ⓒ 운민
     
구리는 아차산은 물론 매년 가을이면 성황리에 개최되는 한강변의 코스모스 밭으로도 유명하지만 구리의 상징적인 아이덴티를 알려주는 장소라 하면 단언 조선왕조 최대의 왕실 묘지군이라 할 수 있는 동구릉이다.

말 그대로 서울 동쪽에 9개의 왕릉 군으로 구성된 곳인데,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동구릉의 가장 깊숙한 터를 잡은 이래 끊임없이 왕과 왕비들의 안식처로 공간을 넓혀갔다. 동구릉은 현재 구리의 북쪽 구역을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으며, 지하철 8호선, 별내선 공사 중인 관계로 주변이 어수선한 편이었다.     

하지만 동구릉의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속세의 소음은 완벽하게 차단되었고, 오로지 새들의 지저귐들과 매미 울음소리만 숲속에 가득했다. 7명의 왕(추존왕 포함)과 10명의 왕후(추존 왕후 포함)가 안장되어 있는 동구릉은 그 규모가 만만치 않아 어지간한 각오가 아니면 전부 둘러보기 힘들다.

한 가지 더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숲이 우거지고 왕릉 구역의 정 방향으로 하천이 흐르는 만큼 사방에 모기를 비롯한 벌레들이 많다. 꼭 벌레 기피제를 미리 뿌리시고 가시길 추천드린다.     

밖에선 뜨거운 폭염이 사정없이 내리쬐고 있지만 600년 동안 그 누구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었던 금단의 구역이었던 만큼 나무들이 자연스레 그늘을 형성하고 있다. 조선왕릉을 답사하다 보면 구릉지에 위치한 경우가 더러 있어 등산을 하는 듯한 경험을 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동구릉은 넓은 평지를 따라 길게 뻗어 있어 역사탐방이 목적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볍게 산책을 하기 위한 공원으로도 훌륭하다. 왕릉의 경계를 알리는 홍살문을 지나 본격적인 동구릉 탐방을 함께 시작해보도록 하자.      
 
동구릉의 초입에 자리한 재실 동구릉은 큰 규모만큼이나 거대한 숲속에 온 듯하다. 그 초입에는 왕들의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동구릉의 초입에 자리한 재실동구릉은 큰 규모만큼이나 거대한 숲속에 온 듯하다. 그 초입에는 왕들의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 운민
 
동구릉은 가운데 흐르는 금천을 두고 U자형으로 돌다 보면 웬만한 왕릉을 전부 둘러볼 수 있는 동선으로 짜여 있다. 재사를 준비하는 재실을 지나 숲길을 걷다 보면 오른쪽 옆으로 정자각 건물과 푸른 잔디밭 위의 왕릉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추존왕 문조와 그의 왕비 신정왕후 조씨의 왕릉 수릉이다.

여기서 잠깐, 추존왕이 무엇인지에 대해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쉽게 얘기해서 생전엔 왕이 아니었지만 그의 자손이 왕위에 올라 왕으로 추대된 경우를 뜻한다. 신하가 죽고 관직이 높아져 추존되는 것은 추증(追贈), 생전에 왕이나 황제가 아니었던 인물을 왕이나 황제로 추존하는 행위는 추숭(追崇)이라고 구별하기도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왕정국가가 아니므로 이를 따로 구별하지 않고 추존이라 칭한다.     
 
추존왕 문조와 신정왕후가 합장된 수릉 추존왕 문조와 신정왕후가 합장된 수릉에서 안타까웠던 조선 후기 역사를 되집어 볼 수 있다.
추존왕 문조와 신정왕후가 합장된 수릉추존왕 문조와 신정왕후가 합장된 수릉에서 안타까웠던 조선 후기 역사를 되집어 볼 수 있다. ⓒ 운민
   
수릉의 주인 문조는 과연 누구일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더러 있겠지만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 박보검 배우가 출연했던 세자 이영의 역할의 모티브가 되었던 효명세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정조가 죽고 어린 나이에 순조가 즉위한 이래 그의 인척이었던 안동 김씨가 정권을 잡고 세도정치의 그늘에 들어서 있던 시점이었다. 순조는 그런 상황 속에서 개혁을 할 원동력도 의지도 없었지만, 그의 아들 효명세자는 달랐다. 스무 살도 채 안 된 어린 나이에 대리청정을 시작해 조정의 기강을 잡았으며, 개화파의 선구자인 박규수를 등용하는 등 인재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한지 22살이 되는 1830년 병으로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 조선의 마지막 개혁을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되는 효명세자는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고,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는 점차 조선의 어둠을 짙게 만들었다.

후에 그의 아들 헌종이 후에 8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면서 문조로 추존되었고, 헌종의 왕릉도 동구릉 경내에 반대편에 경릉이란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문조, 즉 효명세자의 부인 신정왕후 조씨도 조선 역사에서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인물 중 하나다.

근현대사에 심심치 않게 나오는 '조대비'라고 불리는 사람이 바로 이분으로 남편이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장수하며 왕실의 맞어른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특히 강화도령 철종이 갑자기 죽고 후사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대원군의 아들을 다음 후계자로 내세웠다. 조선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라 손꼽힐만한 장면이다.     
 
조선 5대 왕 문종과 현덕왕후가 모셔진 현릉 조선 5대 왕 문종과 현덕왕후가 모셔진 현릉은 아들 단종이 폐위됨에 따라 갖은 수모를 당한 끝에 다시 합쳐지게 되었다.
조선 5대 왕 문종과 현덕왕후가 모셔진 현릉조선 5대 왕 문종과 현덕왕후가 모셔진 현릉은 아들 단종이 폐위됨에 따라 갖은 수모를 당한 끝에 다시 합쳐지게 되었다. ⓒ 운민
 
원래 용마산 아래에 문조의 릉이 있었는데, 신정왕후 조씨가 죽고 나서 동구릉에 합장되었다고 한다. 죽은 뒤에 신정왕후는 문조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지 궁금해진다. 이제 다음 왕릉의 주인공을 찾아 이동해 보기로 한다.

수릉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각각 다른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동원이강릉 형태의 현릉을 발견하게 된다. 이 왕릉의 주인공은 세종의 아들이자 5대 임금인 문종과 현덕왕후다.

문종을 이야기 함에 있어 자연스레 그의 아들인 단종을 함께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문종은 제위 기간이 2년 정도로 짧았기 때문에 단종은 12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게 되었다. 조선 왕조 기간 동안 성인이 되기 전 왕에 오르는 일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단종은 어머니(현덕왕후)가 그를 출산한 이후 곧바로 사망했기 때문에 변변한 후견인이 없었다.     

결국 단종은 삼촌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물려주어야만 했고, 얼마 뒤 영월에서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그 과정에서 문종의 부인 현덕왕후는 죽은 뒤에도 갖은 수난을 겪는다. 그녀의 어머니와 남동생이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연좌되어 서인으로 강등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중종 때에 들어서 다시 복위되면서 문종의 곁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겉보기엔 평화로워 보이는 조선왕릉이지만 이처럼 사연을 알고 왕릉을 바라보면 좀 더 답사가 흥미로울 것이다.   
   
건원릉 봉분에서 자라고 있는 억새풀들 태조 이성계의 릉인 건원릉은 그의 유언에 따라 고향의 흙과 억세풀이 봉분을 뒤덮게 했다고 전해진다.
건원릉 봉분에서 자라고 있는 억새풀들태조 이성계의 릉인 건원릉은 그의 유언에 따라 고향의 흙과 억세풀이 봉분을 뒤덮게 했다고 전해진다. ⓒ 운민
 
이제 동구릉의 터주대감인 건원릉으로 간다. 멀리서부터 억새풀로 뒤덮인 위엄 있는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확실히 비슷한 인상을 주는 다른 조선왕릉들과 달리 무(武)의 위용이 한눈에 느껴진다.

태조 이성계의 릉인 건원릉은 조선 왕조 능제의 표본으로 정면에 정자각, 그 옆엔 수복방과 수라청, 그리고 그의 업적이 적힌 신도비까지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성계가 죽은 후 하륜이 답사를 거쳐 지금의 위치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가 죽을 당시 고향인 함흥 땅에 묻혀 달라 유언을 했지만 정통성을 위해 차마 그럴 수 없어 대신 함흥의 흙과 억새를 가져다가 건원릉을 단장했다고 전해진다. 매년 한식 때 문화재청에서는 능침까지 올라갈 수 있는 특별 관람을 진행한다 하니 나중을 기약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동구릉의 답사는 계속 이어진다.

덧붙이는 글 | 9월 초 경기도의 도시의 매력을 알리는 경기별곡 시리즈가 책으로 출간됩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경기도#경기도여행#구리#구리여행#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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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팟케스트 <여기저기거기>의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obs라디오<굿모닝obs>고정출연, 경기별곡 시리즈 3권, 인조이홍콩의 저자입니다.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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