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코노미스트의 말에 의하면 주식투자는 물 위에 떠 있는 게임이라고 한다. 물 위에 잘만 떠 있으면 언젠간 바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그런데 대부분이 더 빨리 가려고 욕심을 내다 무리하여 중간에 빠진다고. 무리하지 않는데 나의 처절한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기자말] |
좋은 결과를 가져왔던 해결법이나 일부의 사례를 들며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덮어 버리려고 할 때가 있다. "우리 할아버지가 담배를 80년을 태우시고도 100세까지 사셨어! 그러니까 괜찮아!", "지난번에 절에서 108배 하고 시험 잘 봤는데, 내일은 도서관 말고 절에 가야겠다", "아... 예전엔 밤새 마셔도 괜찮았는데, 체질이 변했나? 소맥이 좀 순한 것 같던데 주종을 바꿔 봐야겠네..."
혹시 방금 고개를 저었다면 한 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언젠가 나도 그런 적이 없었는지. 고백하건데 나는, 어제도 그랬고 엊그제도 그랬고 지난주도 그러했다. 주식 투자자에게 이런 류의 착오는 흔하다. 보통 자기 합리화와 낙관주의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구하기도, 위험에 빠트리기도 한다.
모든 것이 같을 수 없음에
반도체에 투자해서 재미도 보고 아픔도 많이 겪었다. 철강은 안 그럴까. 2차 전지와 플랫폼 기업은? 생각해보면 산업별로 기웃거리며 직접 겪고 나서야 그들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이게 다르고 저건 저게 다르고 이것과 저것은 요게 비슷하면서 고게 다르다는 걸.
그런 경험이 있기 전까진 모든 것을 '퉁'쳐서 생각했다. '어차피 다 같은 주식 아닌가?(퉁~) 우리은행이랑 카카오랑 다를 게 뭐 있어?(퉁~) 실적만 보면 되지(퉁~)'. 더 알고 싶지도 고민하고 싶지도 않은 귀찮음으로 인해 투자가 힘들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논리 정연한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례를 굽어 봐도 소용이 없다. 꼭 겪어봐야 안다. 왜 겪고 나서야 알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선 알아내지 못했지만, 중요한 사실은 하나 알게 됐다. 주식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모든 것이 크든 작든 '다름'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한 때, 사이클 산업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경기에 민감하게 움직인다는 종목에 투자해서 속앓이를 많이 했다. 그 좋다던 반도체는 왜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지, 신차가 출시되어 기대된다고 하는데 왜 기대감만큼 주가는 오르지 못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나 하나 속이자고 온 세상이 떠든 것만 같았다.
산업재와 소비재의 공급과 수요, 산업의 규모와 각 제품의 매출 기여도 등에 대한 낮은 이해 수준은 해당 산업에 대한 투자의 실패로 이어졌다. 한 때 재미를 본 것도 그저 운이 좋았던 것. 내가 잘해서 번 줄 알았는데, 뒤늦게 깨닫고 상당히 많이 아쉬웠다. (크... 실력은 언제 느나요?)
영국에서 미국 지도 펼치기
종목의 특성이나 산업의 생리도 모른 체 멋모르고 투자할 때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영국에서 국회의사당을 찾기 위해 미국 지도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잘 모르는 길 찾기의 대안으로 미국 지도를 호기롭게 펼쳐든 모습. 게다가 미국에서 아주 유용했던 지도에는 하필 또 국회의사당이 있고 만다.
디테일이 빠진 길 찾기. 이름만 같다고 해서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엄한 지도를 들고 결국 영국 국회의사당 근처에 가보지 못하고 지쳐버리는 여행객이 된다. 이런 경우, 운 좋게 국회의사당 앞에 다다라도 알아채지 못한다. 다름을 모르고 잘못된 대안에 매몰되면 내 위치도 알 수 없게 되는 탓이다.
주식 투자를 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꽤나 많다. 한 번의 성공은 다음에도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주가는 6개월을 앞서간다", "바닥에서 나오는 장대 양봉은 반전의 신호다", "외국인이 매수하면 오른다". 우연찮게 동일한 시도가 성공하기라도 하면 생각지도 못한 맹신의 단계에 들어서게 되고 맞지 않는 잣대를 갖다 대며 끼워 맞추기가 시작된다. 스스로를 틀에 가두는 악수는 이렇게 자행된다.
기다리면 오른다는 말도 대표적인 영국에서 펼쳐든 미국 지도다. 모든 기업이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상장 기업의 안정성을 보면 높은 확률로 맞는 말이긴 하지만, 테마주로 급등한 종목에 물려서 하는 이 말은 그리 희망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대선 테마주가 4년이 지나고 나서야 손실의 반을 회복한 것은 그리 고무적인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네이버와 카카오를 사 모으다가 사이클 산업을 대하듯 타이밍을 재며 팔다보니 수중에 네이버 1주 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국내에서 독점적인 플랫폼을 가진,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이라며 샀으면서도 많이 올랐다는 느낌 때문에 진득하게 들고 있지 못했다. 꾸준히 사모아야 했던 주식은 그렇게 아쉬움을 담은 쪼가리 대박이 됐다.
지금은 좀 어떠냐고 물어보면, 여전히 잘 모른다. 내가 확실하게 아는 건 내가 잘 모른다는 사실 뿐이다. 하지만 다름이 존재한다는 것과 잘 모른다는 사실로 적어도 분명해지는 것은 있었다. 각 산업과 종목에 얼마의 비중으로 어떻게 투자하는 것이 덜 고통스러운지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다.
플랫폼 기업이 갖고 싶으면 독점적 지위를 가진 미국 기업을 우선적으로 사 모은다. 변동이 크고 개별 기업의 장래는 불투명하지만 산업 자체의 전망은 좋은 제약/바이오는 연금저축펀드를 통해 조금씩 사 모으고, 특정 종목이 좋아 보이면 전체 투자자산의 5%를 넘지 않는 선에서 처음부터 손실과 수익의 폭을 넓게 잡는다.
산업 주기를 예상하기 힘든 사이클 산업은 잘 모르는 이유로 여러 기업을 나눠 담고 상승의 원동력이 될 이유를 투자 시나리오의 중심에 두고 일주일에 한두 번 확인한다. 그리고 여기에 분할 매수와 매도를 더하면 단기시세에 스트레스를 조금은 덜 받는 투자 패턴이 만들어진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일반적인 투자 패턴. 그런데 이 평범한 방식을 이리저리 짜깁고 내 발에 맞추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다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적절한 대안을 찾을 때까지 무턱대고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선택의 폭을 넓히는 여유도 생겨났다. 정답이 뭔지는 여전히 모른다. 그저 이제까지의 '있어 보이는' 오답을 '다시' 찍지 않으려 나름의 기준에 충실할 뿐이다.
어쩌면 엄한 지도를 들고 헤매는 경험도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오랫동안 목적지로 이끌지 못한 지도를 들고 헤매고 있다면, 우선 그 지도부터 덮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 지라도 확실히 알 수 있을 테니까. 내 위치를 아는 것. 그게 길 찾기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