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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대표 손병희
민족대표 손병희 ⓒ 정운현
 

왜적에는 한없이 무력한 정부가 동족에게는 가차없이 잔혹했다. 일본군의 포악무도한 살상행위로 동학군이 패퇴하고 그 지도자들이 속속 붙잡혔다. 더러는 거액의 현상금과 감투에 눈이 먼 동족의 밀고로, 또는 동지의 배신으로 일본군이나 관군에 검거되었다. 

김개남은 붙잡혀 서울로 압송 도중에 살해되고, 전봉준ㆍ손화중ㆍ최경선ㆍ김덕명 등은 일본군이 주도하는 허울뿐인 재판 끝에 피살되었다. 동학혁명으로 도망갔던 각지의 지방관(수령 방백)들은 다시 복귀하여 혹심한 보복을 일삼았다. 

각 군 수재가 다시 정권을 잡음에 도인을 죽임으로써 일을 삼으니 그 목 베어 죽임, 목매어 죽임, 땅에 묻어 죽임, 태워 죽임, 총을 쏘아 죽임, 물에 던져 죽임의 참혹한 현상과 그 부모ㆍ처자ㆍ형제가 얽히게 되어 벌을 받음과 그 가산, 밭과 땅, 가축을 몰수함은 만고에 없는 큰 학정이더라.

최시형은 용케 피신할 수 있었다. 지난날 오랜 기간 산간마을을 옮겨다니며 피신했던 것이 이번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충청도 영동을 거쳐 강원도 홍천에 이르렀다. 손병희ㆍ손병흠 형제와 김연국 등이 항상 함께하였다. 

포덕 36년 을미 정월에 신사가 인제군 최영서 집에 숨어 사시며 손병희, 손병흠, 손천민, 김연국과 더불어 도의 이치를 강(講)하시다.

이때에 도의 두령으로써 직임을 맡은 자는 가히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할지라. 신사가 명하여 각지에 피신케 하시다.

신사가 숨어 사실 때 따르는 자의 곤궁한 처지가 매우 심함으로써 근심하는 기색이 있거늘 신사가 말하기를 "군자가 환난에 처하여서는 환난의 도를 행하며 곤궁에 처하여서는 곤궁의 도를 행하나니, 우리들은 마땅히 하늘의 이치를 쫓을 따름이라" 하시다.

관군과 일본군은 물론 지방 유학자들까지 그의 뒤를 쫓는 피신자의 신분으로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7월에 인제군의 도인 최우범의 집에 머물면서 손병희에게 각별히 당부하였다.

7월에 신사가 손병희에게 일러 말하기를 "지극한 정성으로써 공부하여 뒷날을 준비하라. 무릇 지극히 정성하는 자는 능히 하늘과 땅의 기를 마음으로도 보고 눈으로도 보느니라" 하시고 또 제자에게 일러 말하기를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거나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이치에 부합한 것은 모두 강화(降話)의 가르침이니라" 하시다.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오래 전부터 후계자로 점찍은 손병희에게 '뒷날'을 준비하라 이른 것이다. 그리고 최제우 교조가 자기에게 했던 대로 측근들이 한 곳에 오래 있지 말고 피신하여 각자 몸을 지키라고 지시했다. 

12월 인제에서 원주로 거처를 옮겼다. 이듬해 5월 손병희에게 의암(義菴)이란 도호(道號)를 내리고 비밀리에 충주에 가서 도인들을 위무케 하였다. 그리고 핵심 측근들을 불러 동학의 도통을 의암에게 전하는 도명을 내렸다. 71세이던 1897년 12월(음)이다. 1863년 37세에 1세 교조로부터 동학의 도통을 이어받은 지 34년 만이다.

11일에 신사가 손천민은 송암(松菴)이라 김연국은 구암(龜菴)이라 도호를 주시고 거듭 의암 및 송암, 구암을 불러 자리에 앉게 하시고 손천민으로 하여금 붓을 잡아 "교화하고 훈육하여 교리를 전해주는 은혜를 지킨다"의 구절을 쓰게 하여 말하기를 "이는 나의 사사로운 뜻이 아니라 즉 하늘의 뜻에서 나온 바이다. 고로 너희들 세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천하가 이 도를 근심코자 할지라도 어찌하지 못하리라." 하시다.


주석
1> 「천도교서」, 『동학농민혁명국역총서 13』, 304쪽,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2015.
2> 앞의 책, 303쪽.
3> 앞의 책, 305쪽.
4> 앞의 책, 306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해월 최시형 평전] 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해월#최시형평전#최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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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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