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일본은 패망했지만 뒤이어 미군과 소련이 한반도로 들어왔다. 그들은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남북한이 분단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는데, 하필 그 경계에 놓여 있던 포천조차 한동안 갈라져 있었다.
포천 땅을 지나는 43번 국도가 북으론 철원을 거쳐 원산까지, 남쪽으론 의정부에서 서울 수유리로 들어가는 요충지였기 때문에 전쟁 직전부터 포천 지역에 집중적으로 벙커가 건설되었다.
결국 6.25 전쟁의 비극은 시작되었고, 포천 땅은 북한과 남한군의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 되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은 전쟁터로 끌려가게 되었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UN군을 주축으로 하여 전 세계 청춘들의 피로 국토가 물들었다.
특히 포천에선 태국 군인들이 참전했던 것을 알리는 기념비와 태국식 사원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의 눈에 들어오는 건 43번 국도 한편에 보존되어 있는 벙커의 참혹한 현장이다. 포탄을 맞은 흔적으로 보이는 구멍들과 반쯤 무너진 외벽이 보인다.
벙커에 의지하며 폭풍처럼 몰아치는 총알, 폭탄 세례를 견뎌냈다고 하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영원한 평화가 하루빨리 한반도에 찾아오는 그 날을 기다려 본다. 전쟁으로 인한 특수한 상황 덕분에 벙커뿐만 아니라 성당까지 새로 짓게 되었다.
한국 근대건축유산으로 지정된 포천 성당
포천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뒤편 언덕으로 올라가 보면 빨간색 지붕과 돌을 쌓아서 만든 건물이 눈에 띈다. 바로 포천을 대표하는 근대문화재인 포천 성당이다. 1955년경 당시 육군 6군단 군단장이었던 이한림이 군의 원조를 받아 지어진 독특한 배경을 가진 건물이다.
6.25 전쟁 전후에 건설된 전형적인 기법이 드러나고, 유일하게 남아있던 군부대가 세운 건물이라 한국 근대건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성당은 규모가 작은 편이라 언덕 밑에 새롭게 성당을 지었다. 언덕 입구에 적혀 있는 '십자가의 길'의 문을 지나 올라가다 보면 아담하지만 정겨운 성당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1955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리는 머릿돌도 눈여겨보고 투박한 모습의 성당 전체를 살피고 있는데 성당 안쪽에서 찬송가가 울러 퍼졌다. 처음에는 녹음 소리가 아닌가 했지만 알고 보니 러닝셔츠만 입은 한 남자가 성당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절실한 손동작과 표정을 지으며 찬송을 외치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그 사내는 멋쩍은 표정으로 포천 성당의 신부라 소개하면서 날이 무더워서 옷을 가볍게 입었다며, 들어오길 권했다. 신부님은 함께 포천 성당을 돌아다니며 이 장소에 대한 일화들을 두루 얘기해주었다.
이 성당의 천정을 살펴보면 지붕 부분이 새로 지어진 건물처럼 보이는데 1990년에 술에 취한 취객의 방화로 인해 성당의 목조 부분이 전부 전소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성당 내부는 전체적으로 휑한 느낌이었다. 부디 우리 주변의 문화재를 소중하게 여겨주고 앞으로 절대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주변 동네에 있는 숨겨진 보물을 잘 찾아보시길 바라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해 본다. 포천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래전부터 방치된 폐채석장이 있었다. 깊게 파인 채석장에 자연스럽게 지하수가 솟아나고 빗물이 스며들면서 어느덧 호수가 되었다.
이 호수는 무릉도원으로 온 것 같은 풍경과 이국적인 모습으로 인해 드라마를 비롯한 수많은 미디어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포천시 자체에서 관광지로 키우려는 노력까지 더해지면서 산정호수를 대체하는 포천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제 포천 아트밸리라 불리는 그곳으로 함께 떠나본다.
기암괴석과 푸른 물빛의 조화, 천주호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포천시가 상당히 공을 들여 가꾼 티가 났다. 저 멀리 5주차장까지 있다고 하니 이곳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난다. 입구에는 돌문화 홍보 전시관이 있어 일단 이것부터 보고 나서 본격적으로 돌아보려고 한다.
포천 지역의 대표적인 특산품은 바로 포천석이라 불리는 화강암이라고 한다. 경기도 내 화강암 생산량의 80%를 차지한다고 하며, 설계하중이 작고 표면 굳기가 우수해 계단 등 건축물의 내부 바닥재나 건축 구조재, 외장재로 사용될 경우 매우 좋은 품질을 자랑한다.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채취하기 시작한 포천석은 서울 지하철은 물론 인천공항, 국회의사당 등의 다양한 기반시설에 사용되었다고 하니 이 지역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런 역사를 가진 체 석장이 현재는 어떻게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는지 궁금증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치밀어 오른다. 그 위로 오르기 위해선 상당한 급경사를 꽤 많은 시간을 들여 올라야 하는데 폭염 속에서 차마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럴 땐 고민할 것 없이 15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모노레일을 타면 된다.
2량으로 이루어진 귀여운 외형의 모노레일은 420미터의 급경사 구간을 마치 외줄 타기를 하듯이 움직인다. 내부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포천 아트밸리 너머 산줄기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듯하다.
5분가량 탑승을 마치고 어느덧 포천 아트밸리의 가장 정상부에 도착했다. 가장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천주호를 가기 전 우선 천문과학관에 가서 별자리에 관한 전시를 살펴보기로 한다. 어릴 때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각자의 별자리를 찾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언젠가 여유가 되면 공기가 맑은 시골 밤하늘을 쳐다보며 별을 헤아리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이제 포천 아트밸리를 대표하는 포인트인 천주호로 갈 시간이다. 조금만 길을 내려와 고개를 옆쪽으로 도는 순간 채석장이 만들어낸 기암괴석과 푸른 물빛이 어우러지는 기묘한 풍경의 천주호가 눈앞에 등장한다.
화강암을 채석하며 파 들어갔던 웅덩이에 샘물과 빗물이 유입되며 형성되었지만 가재, 도롱뇽, 버들치가 살고 있는 1급수라고 한다. 최대 수심이 2.5미터로 만만치 않은 깊이의 호수다. 특히 에메랄드 색깔의 신비한 빛을 내뿜는 호수의 독특한 풍경으로 인해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 등의 촬영지로 쓰이기도 했다.
천주호를 좀 더 다각도로 감상하려면 좀 더 발품을 팔아서 조각공원, 하늘정원을 거쳐 올라가야 한다.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 길이기에 만만치 않지만 포천석을 이용한 조각품들도 감상할 수 있으니 꼭 가보시길 추천드린다.
덧붙이는 글 | 9월초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경기별곡 1권이 출판됩니다. 많은 사랑,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