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다세대 주택 3층에 살았던 적이 있다. 우리 가족이 살던 3층은 방이 세 개인 가정집이었고 1, 2층은 한 층마다 원룸이 3개씩 있었다. 1층 원룸 중 하나는 이주 노동자들이 숙소로 사용하여 작은 공간에 10명 정도가 복작복작 모여 살았다.
그들은 퇴근 시간이면 현관을 열어 놓고, 워커를 복도에 내어놓은 채 웃통을 벗고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해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나 생활 쓰레기의 분리수거도 제대로 하지 않고 사는 것 같았다.
건물주는 들어올 사람만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세를 준다며, 불법체류자들이 갈 데가 없다고 하도 애원해서 들였다고 불평하는 다른 세입자들을 달랬다. 당시 우리 집 큰딸이 중학생이었는데 난 아이가 늦을 때면 집에 들어오는 길이 걱정되어 꼭 마중을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코팅이 벗겨져 사용하지 않는 프라이팬 두 개를 분리 수거함에 버렸다. 다음 날, 그 프라이팬이 1층 이주 노동자들이 숙소로 지내는 방 현관 신발장 위에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열려 있는 문을 통해 그 프라이팬을 보자 마음이 이상했다.
그건 살 때부터 하나에 만 원 정도 하는 저렴한 프라이팬이었다. 마트에서 한두 개 새 것으로 사다 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그것이야말로 내가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 버린 프라이팬보다 싼 행동이라는 생각이 바로 들어 그만두었다.
그 후, 난 딸을 마중 나가지 않았다. 가끔 밤 산책을 할 때 그들 중 몇이 자신들 나라의 언어로 전화 통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으나, 누가 들어도, 조곤조곤 다정한 어투엔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다. 한글로 표기된 분리 수거함 앞에서 고민하며 느리게 분리수거하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또 마음 한쪽이 이상했다. 이게 무얼까 잘 생각해 보았다. 그들을 마주칠 때마다 곧잘 들었던 이상한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열린 틈새로 그들의 삶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낯선 이방인으로만 여겼던 그들을 나처럼 살아 숨 쉬는 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아픔이었다. 혐오가, 아픔이 되는 순간이었다.
열린 틈새로 들여다본 그들의 삶
은유의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읽으며 나는 이 열린 틈새가 생각이 났다. 알지 못해 오해하고, 혐오했지만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이미 있는 존재들에 대한 나와 이 사회의 무례가 자꾸 마음에 찔렸다.
지금까지 난, 불법체류자라는 말 외에 그들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알지 못했다. 우리 국민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피부색이 짙은 사람들, 다른 언어로 말하는 그들을 길에서 마주칠 때면 왠지 모를 겁이 나서 한참 돌아가곤 했다. 같은 동네에 있으면 왠지 싫고, 같은 건물에 살면 정말 싫은 '불법'의 사람들.
그들을 지칭하는 말 앞에 붙은 '불법'이라는 말이, 언제든 불법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 같았다. 늦게나마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통해 제대로 된 명칭을 알고, 입으로 또박, 또박 다시 말해본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우리가 불법 체류자 대신 서류 미비 노동자, 혹은 초과 체류자라는 뜻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한국 사회 일원으로 살아왔고 한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28쪽)
알면, 혐오할 수 있을까. 아니, 안다면 모른 척 할 수 있을까? 여기 아이들이 있다. 불법체류 노동자들의 불법 아이들이 아닌,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의 미등록 이주아동.
누구든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고, 태어나기 싫다는 이유로 탄생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또한 부모와 지역을 선택하여 태어날 수도 없다. 그런데 단지 태어났다는 이유로 존재가 불법으로 규정된 2만 명의 아이들이 손발이 묶여 꿈꿀 기회는 물론 몸이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는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말았다. 비자가, 등록번호가 없는 아이들에게 세계는 온통 안 되는 것 투성이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에 나오는 미등록 이주아동 마리나 역시 여느 아이들처럼 생활하다가도 사회 법규가 너는 달라, 너는 안돼, 라고 말할 때마다 삶에 대한 의욕을 잃는다. 청각, 언어 장애, 미등록 이주 노동자로 몇 겹의 불편과 차별을 감당하는 부모와 그 부모의 폭력마저도 견뎌야 했던 마리나의 이야기에 순간순간 가슴이 무너졌다. 그러한 아픔은 아이를 애 늙은이로 만든다.
생각하고 느낄 줄 아는 이 아이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을까? 아무리 물어도 내 안의 대답은 '노'이다.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단단한 존재이자, 세상에 대해 질문을 던질 줄 아는 훈련이 된 작은 시민'이,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마리나 인터뷰가, 또 다른 아이들과 미등록 이주아동의 어머니인 인화의 언어가 결국 울음으로 들리는 건 그러한 까닭이다.
"결국,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살 수 있는 것. 내가 나임을 인정받는 것. 제가 원하는 건 그런 최소한의 것들이에요. 저는 한국에서 유령으로 지내온 거나 마찬가지예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마리나, 58쪽)
"사람은 그냥 사람이죠. 생김새가 좀 다르고 나라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지만, 다 밥 먹고 화장실 가는 똑같은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지 않나요?"(달리아, 168쪽)
"일단 비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돼요. 카드도 못 만들고, 운전면허도 못 따고, 대학도 못 가고요. 가끔은 내가 괜히 아이를 한국에 데려와서 이렇게 힘들게 살게 하는구나 싶어 너무 미안해요. 젊은 사람이 이렇게 사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인화, 185쪽)
"사람은 그냥 사람이죠"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렇게 힘들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 하지만 책을 읽으며 이들에 대해 알아갈수록, 돌아가는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미등록 이주아동 부모들의 대다수는 단순 노무직으로 우리나라에서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기 위해 기업이 브로커를 통해 거짓말로 데리고 온 노동자들도 많다.
그들이 긴 시간 한국에서 거주하며 계속 혼자 지내기 힘드니,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끼리 가정을 꾸리기도 하고 본국에 있는 가족을 몰래 데리고 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다양한 이유로 비자를 잃고 아이들은 그대로 불법이 된다.
"저희가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간다고 뭘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부모님한테만 배워서 말만 할 줄 알지 글자도 못 읽고 못 써요. 솔직히 돌아가면 적응을 못 할 것 같아요. 저희는 한국에서 평생 생활하고 있잖아요. 태어난 건 죄가 없는데 왜 차별당하고 고통받고 꿈도 못 이루고 살아야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돼요. (카림, 164쪽)
"법 위반 사실이 아동들 본인의 잘못이 아닌데, 이 친구들에게 책임이 부과되는 건 부당하잖아요. 그래서 좁게 보면 최소한 아동들은 체류자격을 갖게 해주고, 넓게 보면 미등록 상태로 있는 성인들도 경우에 따라서는 체류자격을 줄 수도 있겠다, 무작정 불법체류자로서 강제 퇴거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죠."(이탁건 변호사, 89쪽)
한국은 아이들이 부족하다. 출산율도 1이 채 되지 않는 국가에서 '전교생 400인 학교 50개 규모의 집단' 정도의 아이들에게 조금 더 친절할 수는 없을까? 석원정 이주 인권활동가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미등록 아동은 모든 법과 권리, 인권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어요. 이 아이들은 계속 음지에서 성장을 하게 돼요. 미등록 아동을 모조리 국적국으로 돌려보내는 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인도적이지 않아요. 유엔아동권리협약에도 교육받을 권리가 나와 있듯, 인도적인 차원에서도 사회가 아동을 보호해야 하고, 공존할 방안을 생각해야 해요."
석원정 활동가의 말처럼 음지의 있는 아이들을 양지로 데리고 와 선주민 아이들과 동등한 교육, 미래를 꿈꿀 기회를 제공하여 앞으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 이러한 구체적인 방안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이들뿐 아니라, 이 사회에도 득이 되리라 믿어본다.
다세대 주택에 살 때, 처음엔 모여 사는 이주노동자들이 두렵고 피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삶과 내 동선이 겹치는 순간, 그러한 감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는 나와 다른 모든 이를 알 수 없고 그들의 삶을 모두 들여다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이들과 마주쳤을 때, 다른 문화 습관을 오해하거나 한 개인의 일탈 행동만 본 채, 그것만으로 모든 이주노동자를 대상화하여 자기 안에 각인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제가 누군가를 믿어줄 때 그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를 또 믿고 반기면 누가 누구를 배척할 일이 없지 않을까요"(김민혁, 7쪽)라든지, "원래 사람의 편견은 대상과 직접 부딪히며 생기는 경우보다는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경우가 더 많다. 개인의 사회화 과정에서 언론이나 부모 등을 통해 편견이 학습되고 전승되는 게 일반적이다(27쪽)"와 같은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오염된 마음을 닦고 비뚤어진 행동을 수정하며 더 나은 사회로, 아이들을 피부색으로 구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책의 한쪽, 한쪽마다 마음이 양심의 가시로 찔려 많이 아팠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기를 쓰고 사는 작은 인간'들, 그중에서도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이야기를 부디 이 나라와 이 땅의 많은 어른이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음의 귀를 크게 열고, 이미 존재하는 삶들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함께 배워 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