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포천여행의 가장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한탄강 유역을 본격적으로 둘러보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만 년 전 북한 강원도 평강군의 오리산과 680미터 고지에서 여러 차례 화산이 폭발했다고 한다. 거기서 분출된 용암은 지금의 한탄강을 따라 임진강까지 110km를 흘러 한탄강 주변에 거대하고 평평한 현무암 용암대지를 만들었다.
용암이 흘렀던 한탄강은 수십만 년에 걸쳐 용암대지 위를 흐르며 현무암을 깎아내면서 깊은 협곡을 만들었고 지나간 자리에는 벽면을 따라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를 만들었다. 한반도의 다른 지형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경관 덕분에 2020년 7월 유네스코는 세계 지질공원으로 인증하면서 포천의 한탄강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리고 그 한탄강 유역을 따라 걷는 트레킹 코스도 개발되었는데, 구라이골을 출발해서 멍우리 협곡에 이르는 길을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총 4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합 26km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거리다. 특히 6월에는 한탄강변이 유채꽃으로 노랗게 물든다고 하니 내년에 상황이 좋아진다면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드린다.
정말 가볼 만한 포인트가 많은 한탄강이지만 이곳의 지질, 역사, 생태를 미리 알고 간다면 답사가 더욱 풍성해질지 모를 일이다. 그럴 땐 한탄강으로 들어가는 도로 맞은편에 위치한 한탄강 세계지질공원센터를 방문하면 그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한탄강 세계지질공원센터는 우리나라 최초로 지질공원을 테마로 한 박물관으로 한탄강의 형성 과정과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현무암 그리고 주상절리, 베개용암 등 다양한 정보를 잘 정리해 놓았다.
그런데 공원 센터 박물관 안에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데 반해 정작 그 앞의 주차장은 차로 가득 차 있다. 알고 보니 사람들 대부분은 포천의 유명한 테마 파크 허브 아일랜드에서 운영하는 카페를 이용하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인 것이다. 마침 오랜 여정으로 노곤함을 좀 달래고 싶은 나였기에 구경도 할겸 잠시 숨 좀 돌려보기로 한다.
카페로 들어서자마자 허브향이 코끝을 파고들며 상쾌한 기분이 든다. 카페의 절반은 허브 관련 제품을 팔고 있었고, 나머지 공간은 음료를 마시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흔하게 파는 커피나 홍차 대신 허브차를 한번 마셔보기로 한다.
허브라고 해서 좀 씁쓸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달달한 맛과 목을 넘길 때마다 시원함이 온몸 가득 퍼진다. 허브향에 취해 한동안 의자에 걸터앉으니 더위에 지쳐 힘들었던 몸과 마음이 아늑해진다. 이제 다시 떠나야 할 시간이다. 본격적으로 한탄강의 자연경관을 찾아 떠나보도록 하자.
우선 먼저 가봐야 할 장소는 포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비둘기낭 폭포라 하는 곳이다. 불무산에서 발원한 대회산천이 현무암 지형을 깎아내면서 형성되었으며 한탄강 본류로 합류하기 전까지 그 자체로 거대한 협곡을 이루고 있다.
비둘기들이 협곡에 자리한 하식동굴과 절리에 서식한다고 해서 비둘기낭이란 이름을 가진 폭포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계단을 제법 내려가야만 한다. 그 길이 제법 협소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눈앞에 펼쳐진 낯선 선경(仙景)으로 인해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때는 갈수기라 폭포의 유량은 적었지만 현무암이 만들어내는 주상절리와 거대한 협곡, 그리고 옥빛 색깔을 뿜어내는 아름다운 물빛,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기서 머지않은 곳에 포천 한탄강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명소가 있다.
한탄강의 협곡을 위에서 편하게 두루 감상할 수 있는 한탄강 하늘다리가 그곳이다. 비둘기낭 폭포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어가면 접근할 수 있는데 하늘다리 앞에도 넓게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으니 한번 더 차를 끌고 가는 게 좋다.
한탄강 하늘다리는 길이 200미터의 현수교로 높이 50미터로 꽤 높으며 다리를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계곡에 부는 바람으로 인해 발끝에서부터 엄청난 흔들림을 자랑한다. 고소공포증이 있거나 담이 작아 보이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동안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다.
나도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디뎌 보면서 한탄강 협곡을 바라본다. 제법 아찔하지만 유유히 흐르는 강물의 장관이 한눈에 아른거리고, 강물에 햇살이 반사되면서 붉게 물든 모습에 푹 빠져 무서웠던 생각이 쏙 들어갔다.
하늘다리를 건너면 한탄강 주상절리 트레킹 길로 곧바로 이어지는데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포천이 자랑하는 또 다른 자연경관인 화적연으로 이동해본다. 한탄강을 따라 상류 방향으로 조금 떨어져 있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기 위해서는 돌아 들어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하지만 화적연은 포천의 한탄강변에 있는 자연경관 중 예로부터 선비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곳으로 유명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 기우제를 지냈던 곳으로써 알려져 있고, 특히 도성에서 강원도와 함경도로 가는 최단 거리 노선인 '경흥로'가 지나는 경로였다. 그래서 조선시대 선비들이 금강산으로 가는 여정 중 포천지역의 이름난 8곳의 경승지를 가리켜 영평팔경이라 이름 붙였다. 그중 화적연은 영평팔경의 으뜸으로 뽑는다.
조선 후기 영의정을 지낸 미수 허목은 화적연을 보고 감탄하여 '화적 연기'를 남겼고, 최익현 선생도 금강산 유람기에 '화적연'이란 시를 남겼다. 또한 겸재 정선도 화적연의 뛰어난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다고 하니 어서 빨리 화적연의 그림 같은 풍경을 몸소 보고 싶었다.
화적연 캠핑장에 차를 대고 화적연을 바라보니 기대했던 풍경만큼은 아니었지만 한적한 느낌이라 좋았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 멀리 보면 기골이 웅골찬 장대한 기상의 산봉우리가 아른거린다. 바로 궁예가 최후의 항쟁을 펼쳤던 명성산이다.
그 명성산 자락에는 포천에서 가장 명성이 드높은 산정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일단 날은 어둑해져 근방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포천의 남은 명소들을 차근차근 돌아보도록 하자.
덧붙이는 글 | 9월초, 오마이뉴스 경기별곡을 바탕으로 시리즈 1권이 출판됩니다. 많은 사랑,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