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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26일 세종시 고용노동부 앞에서 모든 노동자에게 산재보험 적용과 산재 처리 지연 근본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5월 26일 세종시 고용노동부 앞에서 모든 노동자에게 산재보험 적용과 산재 처리 지연 근본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 김용균재단

전국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을 비롯한 노동계는 작년 11월부터 산업재해(이하 산재) 노동자의 치료권 확보를 위해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 이사장 그림자 투쟁, 공단 본사와 고용노동부 앞 농성을 진행했다. 요구의 핵심은 '산재 처리 기간 단축'을 하라는 것이었다.

업무상 질병의 경우에는 산재 신청부터 승인까지 최소한 6개월이 걸린다. 그런데 공단의 산재 인정 여부에 대한 처분이 나오기까지 쉬도록 해주는 회사는 거의 없다. 그래서 산재를 당한 노동자는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노동자는 산재 신청을 포기하게 되거나, 충분히 쉬면 회복이 가능한 질병이 더 악화되거나, 아니면 불가피하게 쉴 수밖에 없는 경우에도 회사 허락 없이 출근을 못 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래서 금속노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등의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여러 노동안전보건단체들도 힘을 모았다.

긴 투쟁의 결과 지난 7월 22일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장관과 합의에 이르렀다. 합의 내용을 보면 산재 처리 절차를 간소화하고,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은 늘리고, 인원은 더 보충하여 산재 처리를 신속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위 합의를 이행하기 위하여 공단은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 관련 인원 146명 증원을 요구했고, 노동부에서는 다소 감소된 119명을 요구했다.

그런데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는 단지 20명만 늘리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146명 증원 요구가 칼질을 당하여 20명이 된 것이다. 애초에 노동부가 기재부와 소통 없이 안일하게 일을 추진한 것일까? 아니면 노동부는 최선을 다했지만 기재부가 노정합의를 휴지 조각으로 만든 것일까? 진실은 아마도 그사이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노정 합의를 백지로 만들어버린 '정부'

기재부의 막강한 권한은 어디서 나오는가. 대한민국 헌법 제57조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라고 되어 있다. 애초에 정부가 예산을 제대로 짜지 않고 국회로 올리면, 국회에 가서도 의원들이 예산을 증액하거나 비목을 만들 때도 반드시 정부가 '동의'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정부에서 이 기능을 담당하는 기재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지금 상황에서 분명한 것은 첫째로 노동부는 노정 합의를 이행하지 못할 것으로 보이고, 두 번째는 합의를 이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같은 정부 부처인 기재부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세부적인 책임이 누구한테 있든지 간에 국민 입장에서 본다면 같은 '정부'이다. 다른 나라 정부도 아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노동계가 정부를 믿을 수 있을까. 못할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모든 문제는 기재부를 대상으로 요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것도 아니라면 매번 대통령을 찾아가야 한다는 소리다.

공자는 군대와 식량이 없어도 나라가 존재할 수 있지만, 백성이 나라(정부)를 믿지 못하면 바로 설 수 없다고 말했다(無信不立). 여기서 믿을 신(信)이란 근거도 없는 맹목적 지지가 아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믿고 지지하는 사람은 바보천치에 가까울 것이다.

믿음이란 사람(人)의 행동과 그 말(言)이 일치할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즉 말을 해놓고 지키지 않는다면 믿음이 생길 수가 없다. 백성이 나라(정부)를 믿지 못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 대화가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농성하고 투쟁했는지 다시 생각해본다. 노동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위해서 투쟁했고, 그를 위해선 신속한 보상과 인원 보충이 필요하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공단 소속 노동자를 쥐어짜는 방식으로 신속한 보상을 받을 마음은 추호도 없다. 정부 부처끼리 꼴사납게 서로 핑계대지말고, 반드시 원안대로 합의를 이행하라.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사)김용균재단 회계감사이자 변호사로 활동하시는 손익찬님입니다.


#김용균재단#치료받을권리#산재신청#산재처리기간
댓글3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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