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회생은 빚을 안 갚겠다는 것이 아니다. 최대한 성실이 갚고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빚만 탕감받는 것이다. 개인회생에는 빚을 떼이는 채권자들의 희생도 있지만 3~5년 동안 극도의 궁핍한 생활과 성실한 노동으로 최대한 많은 빚을 갚고자 노력하는 채무자의 희생도 있다. 개인회생을 신청한 여러 사례를 통해 개인회생 제도의 진정한 모습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이를 신청한 이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개선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
채무자가 연체한다고 해도 채권자는 무턱대고 빚을 독촉할 수 없다.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약칭 : 채권추심법)과 그에 따른 금융감독원 가이드라인이 채권추심 방법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빚 독촉은 전화, 이메일, 문자메시지, 방문 등 방법의 종류를 불문하고 하루 1회로 한정된다. 빚 독촉 방법 역시 채무자에게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시킬 우려가 있는 방법은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채무자의 직장으로 전화를 해도 안 된다.
'채권추심법' 제9조(폭행․협박 등의 금지) 채권추심자는 채권추심과 관련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2. 정당한 사유 없이 반복적으로 또는 야간(오후 9시 이후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를 말한다. 이하 같다)에 채무자나 관계인을 방문함으로써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여 사생활 또는 업무의 평온을 심하게 해치는 행위
3. 정당한 사유 없이 반복적으로 또는 야간에 전화하는 등 말ㆍ글ㆍ음향ㆍ영상 또는 물건을 채무자나 관계인에게 도달하게 함으로써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여 사생활 또는 업무의 평온을 심하게 해치는 행위
7. 채무자의 직장이나 거주지 등 채무자의 사생활 또는 업무와 관련된 장소에서 다수인이 모여 있는 가운데 채무자 외의 사람에게 채무자의 채무금액, 채무불이행 기간 등 채무에 관한 사항을 공연히 알리는 행위
제12조(불공정한 행위의 금지) 채권추심자는 채권추심과 관련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2. 채무자의 연락두절 등 소재파악이 곤란한 경우가 아님에도 채무자의 관계인에게 채무자의 소재, 연락처 또는 소재를 알 수 있는 방법 등을 문의하는 행위
5. 엽서에 의한 채무변제 요구 등 채무자 외의 자가 채무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행위
법률의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난 불법 사채업자가 아닌 이상 채권추심법을 준수하며 빚을 독촉한다. 예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은 문자메시지는 모두 합법이다. 연체된 사실을 알리고 이에 따른 변제를 독촉할 뿐이기 때문이다.
"현재 000원이 연체되어 있습니다"
"연체 중이신 000원을 2021. 8. 00.까지 납부해 주십시오"
연체가 조금 더 지속 되면 법적 절차를 언급하는 문자메시지가 발송된다. 이 역시 채권자의 정당한 권리인 법적 조치를 예고한 것으로 어떠한 법적 하자도 없다. 다만 '법적 조치'가 언급되면 채무자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공포를 받게 된다. 하지만 '채권추심법'은 이 정도를 언급을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여 사생활 또는 업무의 평온을 심하게 해치는 행위"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지속적인 납부 요청에도 대금이 납부되지 않고 있습니다. 조속히 납부되지 않을 시 법적 절차에 착수하겠습니다"
"귀하의 연체에 의하여 담당 부서가 고객관리팀에서 법무팀으로 이관되었습니다. 법적 절차가 예정되오니 신속히 납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전화를 걸어 온다. 전화의 내용 역시 문자메시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전화가 가지는 압박감은 문자메시지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래도 연체 상태가 계속되면 급기야 추심원이 집으로 찾아오게 된다.
일생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빚 독촉
채권자가 한 명이라면 문자든 전화든 심지어 방문이든 하루 1회 빚 독촉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이들은 적게는 서너 곳, 많게는 십여 곳에서 돈을 빌려 쓴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루 1회라 하더라도 채권자가 10명이라면 10회가 된다. 이 정도 단계에 이르면 채무자들은 직장생활은커녕 일상생활도 온전히 영위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른다.
이어서 채권자들은 우편물을 보내기 시작한다. 독촉장, 최고장 등 갖가지 제목의 우편물들이 배송되어 온다. 개중에는 법원의 양식을 교묘하게 베껴 법원에서 발송된 것인지 채권자가 발송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들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원에서 우편물이 왔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공포심을 느끼고는 한다.
이쯤 되면 핸드폰을 없애고 연락이 닿지 않는 곳에 숨어서 조용히 일만 하지 않는 이상 빚 독촉에 시달려 직장생활까지도 계속할 수 없을 상황에 이르게 되고는 한다. 돈을 벌어야 빚을 갚을 텐데 빚 독촉이 오히려 경제활동을 가로막아 더더욱 빚을 갚기 어렵게 만드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채무자가 처한 상황을 고려해가며 빚 독촉을 하는 채권자들은 없다.
'금지명령'을 통한 빚 독촉 금지, 그러나 법원은 인색하다
채무자들이 개인회생을 고려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빚 독촉이다. 하지만 개인회생을 신청한다고 해서 곧바로 빚 독촉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회생절차개시가 결정되어야 비로소 빚 독촉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실무에선 개인회생과 함께 채권추심의 중단을 요청하는 '금지명령'을 신청하는데, 이 금지명령이 허가되면 개인회생절차가 개시되기 전이라도 빚 독촉을 금지할 수 있다.
금지명령은 개인회생 신청 시점부터 회생절차개시 결정 시점까지 대략 3개월 정도 채권추심행위를 금지하는 명령이다. 빚 독촉에서 3개월만 해방되어도 채무자는 다시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개인회생이 인가된다면 매달 차근차근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 이 3개월은 개인회생을 통한 변제계획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한 준비 기간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법원은 금지명령에 조금은 인색하다. 금지명령 인용률은 보통 65% 정도에 그친다. 신청자 중 35%는 개인회생개시가 결정될 때까지 계속하여 빚 독촉에 시달려야 한다.
법원이 금지명령을 기각하는 경우 중 가장 많은 부분은 '최근 대출'이다. 영석씨가 그랬다. 전체 채무 중 최근 1년 내 발생한 비율이 대략 60% 정도였다. 다소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금지명령이 기각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법원은 영석씨의 금지명령 신청을 기각했다. "이제 빚 독촉에서 해방되겠구나"라는 영석씨의 바람은 며칠 만에 수포로 돌아갔다.
금지명령이 기각되었다면...
대부분의 채무자들이 그렇듯 영석씨도 금지명령이 기각되자 소위 멘붕에 빠졌다. 곧바로 재신청을 했지만, 재신청의 인용률은 거의 0%에 수렴한다. 단지 충격에 빠진 채무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줄 뿐이다. 금지명령이 기각되면 남은 방법은 최대한 절차를 서둘러 하루라도 빨리 개인회생개시결정을 받아내는 것밖에 없다. 다행히 영석씨는 비교적 빨리 개시결정을 받아냈고 빚 독촉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칫 보정명령 등으로 개시결정이 늦어진다면 채무자들은 계속하여 빚 독촉에 시달려야 한다.
개인회생 신청에까지 이른 채무자들은 도저히 빚을 갚을 능력이 안 되는 이들이다. 설사 빚을 갚을 여력이 남아있다고 해도 몇 달만 기다리면 개인회생 절차를 통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빚을 갚아나갈 수 있게 된다. 이를 앞두고 서둘러 빚을 갚을 사람은 거의 없다. 빚 독촉을 한다고 해도 돈을 받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3개월간 빚 독촉에서 해방시켜 준다고 해도 채권자에게 발생하는 피해는 크지 않다. 오히려 무의미한 빚 독촉을 금지함으로써 자원을 절약시켜 줄 것이다. 그럼에도 35%가량의 금지명령을 기각하고 있는 법원의 태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는 개인회생 제도의 바람직한 도입을 저해하는 법원의 대표적인 태도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은 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입니다. 본 글은 브런치에도 게시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