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사 '
중국이 벌벌 떠는 탈레반의 기막힌 실체'에서는 탈레반의 신장 위구르 해방운동 개입 가능성에 관해 다뤘다. 그리고 두 번째 기사 '
아프간 접수한 탈레반, 다음 타깃은 어디일까?'에서는 탈레반 정권이 수립되면 가장 위험할 나라 두 곳을 지목했다. 이번 기사에서는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탈레반 관련 용어들에 관해서 설명해 보고자 한다.
탈레반·물라·아미르, 그 뜻은 대체 무엇?
탈레반의 어원이 '학생'을 의미하는 아랍어 탈립(طالب)이며, 그 탈립의 파쉬토어 복수형이 탈레반(طالبان)이라는 점은 상당수 독자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는 탈레반 전사들을 가리켜 보통 '탈립'이라 부른다(정확하게 발음하면 ط 발음은 ㅌ보단 ㄸ에 가까우므로 '딸립'이 맞을 것이다). 바로 윗동네 우즈베키스탄에서도 같은 어원을 가진 탈라바(طلبه)라는 용어를 즐겨 쓰는데, 이는 고등학생 이상의 연령대 높은 학생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탈레반에 대해서는 좀 알겠는데 대체 '물라'는 무엇인가. 탈레반의 고위인사 명단을 보노라면 하나같이 '물라(mulla)'라는 호칭을 달고 있다. 탈레반 초대 지도자 물라 무함마드 우마르(2013년 사망)와 그의 아들 물라 무함마드 야쿱, 탈레반 2인자이자 도하 정치국 사무소 대표 물라 압두가니 바라다르, 대법원장 물라 압두하킴 이스학자이 등 외신에서도 늘상 탈레반 핵심인사들에 '물라'의 호칭을 부여하고 있다.
물라는 본래 아랍어로 부족의 '동반자' '보호자'를 지칭하는 마울라(مولى)라는 어휘가 페르시아 세계로 넘어오면서 가운데 와우(و) 발음이 탈락해 물라(ملا)로 축약된 단어다.
그런데 중앙아시아에서는 발음뿐만 아니라 의미도 살짝 바뀌었는데, 과거 무슬림 귀족들이 '마드라사(مدرسه)'라는 고등교육기관에서 아랍-페르시아어 시문학을 배운 연유로 식자층(識者層)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이게 됐다.
따라서 물라는 기본적 종교지식을 포함해 아랍-페르시아어로 교육 받은 고위층을 일컬으며 이들에게는 무슬림 학생들, 즉 탈레반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신성한 의무와 권위가 부여된다.
따라서 탈레반의 수장은 물라의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다. 실제 탈레반 최고위급 인사들 대다수가 파키스탄의 마드라사에서 아랍-페르시아어를 통해 종교경전을 학습한 지식인들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차원 승격된 존재도 있으니, 바로 탈레반 최고지도자 하이바툴라 아훈자다의 성명 앞에 붙여진 극존칭 '마울라위(مولوی)'이다. 마울라위는 중앙아 수피 집단의 성인들을 높여 부르는 '마울라나(مولانا: 우리의 영도자)'와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따라서 마울라위는 '물라 중의 물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즉 탈레반 최고지도자는 마울라위의 호칭을 지닌 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아미르국의 수령, 즉 '아미르 울-무미닌(امیرالمؤمنین)'으로 인정받는다. 이는 '믿는 자들(المؤمنين)의 사령관(أمير)'을 의미한다. 즉 아프간 무슬림들을 인도하는 '최고수령님', 이정도에 해당된다.
공화국에서 '아미르국'으로의 회귀... 어떤 의미 있나
공화국은 주권을 가진 국민이 민주투표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직접민주주의든 간접민주주의든 국민은 정치에 관여할 합법적 권리를 보장받는다. 해당 권리의 근거는 공화국 헌법에서 기인하고, 독재를 예방하기 위한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의 삼권분립이 이뤄진다.
반면 아미르국은 공화국이 아닌 전제국(專制國)에 해당된다. 즉 투표 없이 전제정치를 실시하는 나라다. 그렇다고 아미르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긴 쉽지 않다. 국가의 중대사는 신료 및 귀족들과 상의해야 하며,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도 엄연히 존재한다.
다만 평민이나 비무슬림은 정치에 참여할 권한이 없고 입법부는 꾸란과 하디쓰를 근거로 샤리아를 도입하는 이슬람 학자들로 채워지며, 사법부는 세속법이 아닌 입법부에서 해석한 샤리아를 근거로 무슬림 법관들이 판결을 내린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여행이나 출장으로 흔히 접해온 중동의 여러 국가들도 이러한 아미르국의 일환이다. 예컨대 아랍에미레이트(UAE)는 여러 부족장들의 연합국가이며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우드 왕가가 권력을 독점하는 전제정치를 실시하고 있다. 카타르의 수반은 아미르이며 바로 옆의 바레인 역시 왕이 다스리는 나라다.
100년을 되돌린 탈레반, 중앙아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19세기 후반 제정 러시아는 중앙아의 강력한 이슬람 국가들을 모두 굴복시켰다. 그러나 식민지가 건설된 지 채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면서 제국은 무너졌고 중앙아 역시 적백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이 과정에서 볼셰비키 세력은 중앙아 민족들에 독립을 약속했고, 그 대가로 적군(赤軍) 편에 가담하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내전에서 승리하자마자 마음을 바꾼 공산당 수뇌부는 무슬림 민족들의 자주권을 박탈하고 그 지도자들을 모조리 제거했다. 결국 독립 후 30년이 지난 현대 중앙아 국가들에는 사회 전반에 걸쳐 여전히 소련 시절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반면 아프가니스탄은 어떤 외세의 지배도 허락치 않았다. 미소 냉전 초기에도 아프간은 중립국가로서 일종의 완충지대로 남아 있었다. 그 덕분에 중앙아에서 유일하게 19세기 그대로의 아랍 문자를 쓰는 지역이기도 하다. 아프간에선 러시아어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순수한 페르시아어와 투르크어를 만날 수 있다. 전통문화가 살아 있단 증거다.
그래서 아쉬웠던 것일까. 아프간 최후의 군주였던 자히르 샤(재위 1933~1973)는 집권 말기 야심차게 서구식 근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개혁의 성과는 변변치 못했고 오히려 권력에서 밀려날 것을 우려하는 왕족과 보수파의 저항만 샀다. 결국 1973년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왕정은 무너졌고 반세기가 흐른 현재까지 아프간은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오랫동안 현지 역사를 연구하면서 과연 사방이 열린 채로 다양한 민족의 침입이 빈번한 중앙아에 한국과 같은 '민주주의'가 가능한 것일지에 큰 의문을 품게 되었다. 특히 외부적으로는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같은 나라들도 실제로는 민족적, 지역적 파벌에 의한 강력한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변화의 조짐 또한 거의 보기 어렵다.
아프가니스탄 같은 다민족 국가에서 언어, 문화가 상이한 여러 집단을 하나로 묶을 정체성은 이론적으로 이슬람 하나뿐이다. 어쩌면 탈레반의 승리는 그들에게 어쩔 수 없는 운명일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상황이 전혀 다른' 한국인의 시각에서 그들의 현실을 너무 안일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민주주의는 준비된 자에게만 주어지는 축복이다. 20년 동안 미군이란 방벽이 억지로 막아내던 세찬 원리주의 파도가 봇물 터지듯 넘쳐버린 지금, 그 흐름을 아프간 국민 스스로 되돌릴 수 있을 때까지 응원하고 또 지켜보는 게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알림잔(송호림)은 東西 투르키스탄의 근현대사와 고전 차가타이어를 연구하는 독립적인 아마추어 사학자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위구르 문제를 단편적으로 바라보며 실제와 다르게 소개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바로잡고자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에 거주하며 페이스북에 '중앙아시아 연구회(Central Asia Research Group of Korea)' 모임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