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봄에 국내에 있던 어머니와 아내, 딸 정완과 아들 하균이 간난신고 끝에 베이징으로 왔다. 4년 만의 가족 재회였다. 독립운동가 가족이 남편이나 자식, 부모를 만나고자 망명지로 찾아오는 경우가 없지 않았으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신익희의 가족은 용케 일제의 감시망을 탈출하여 베이징까지 온 것이다.
중국 섬서성의 독군이 범칙 물자(아편)을 팔아오면 구전을 줄 터이니 받아서 권속(가족) 데리고 호의호식이나 하면서 여생을 편하게 지내라고 한 발언은 그의 가족이 중국으로 온 사실을 알고서 권한 유혹이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아편을 밀매하는 한국인도 적지 않았다. 영국은 18세기 말 동인도회사를 통해 인도산 아편을 중국으로 대량 밀수케 했다. 이에 청국 정부가 많은 아편을 몰수하여 소각하면서 영국이 중국에 개전, 무력으로 청군을 격파하고 난징조약을 통해 중국을 반식민지로 만드는 길을 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아편은 중국사회에서 공공연히 거래되고 일부 군벌은 치부의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독립운동가들은 가정보다는 조국독립이 우선이었다. 신익희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온갖 유혹을 물리치게 된다. 그는 소싯적부터 익혀온 글씨(휘호)를 써서 중국인들에게 팔아 최소한의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였다. 필체가 워낙 좋아서 글씨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
궁색한 생활에 견디다 못해 해공은 한때 중국인 상대로 글씨를 써서 팔며 매서행각(賣書行脚)으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연명해 나가야 했다. 유년 시절부터 명필가 소리를 들어 온 서예의 대가 해공은 그럴듯한 중국인 집에 찾아 들면 주인을 만나 "이 집에 있는 문방사우 좀 봅시다."해 놓고는 먹을 갈아 그 자리에서 일필휘지(一筆揮之)하고는 했다.
글씨마다 생동감이 있고, 예술의 정채(精彩)가 감돌았다. 주인은 우람한 신색의 청년이 비록 남루한 차림이나 비범함을 깨닫고는 글씨 사례를 혹은 후하게, 혹은 되는 대로 하면서 "선생의 이 글씨만은 우리 집 가보로 대대로 보존하겠소."하며 고이 간직하였다. (주석 7)
임시정부는 혼미상태가 지속되었다.
이승만 탄핵 후 박은식이 대통령에 추대되어 국무령제로 헌법을 바꾸고 은퇴하면서, 이어 이상룡ㆍ양기탁ㆍ홍진의 순으로 내각이 구성되었으나 일부 인사들의 참여 거부 등으로 혼미상태가 계속되었다.
그 즈음 만주에서는 대한독립군단을 비롯 자유시참변 이후 되돌아온 독립군을 중심으로 신민부가 결성되고(1924년 3월), 대한통의부를 비롯한 만주의 독립운동 단체가 모여 정의부를 조직(1925년 1월) 하는 등 통합운동이 전개되었다.
국내에서는 6ㆍ10 만세운동(1926년 6월), 의열단원 나석주가 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 일경과 교전 끝에 자결하였다. 신익희는 상하이 시절 나석주 의사와 각별한 동지관계를 유지하고, 거사를 위해 국내에 잠입할 때에 이를 주선해주기도 하였다.
신익희의 한결같은 바람은 중국혁명세력과 협력하여 무장부대를 육성하는 일이었다. 장개석 총통이 1926년 북벌을 시작하자 국민정부측과 연대의 길을 찾았다. 마침 1924년 섬서성 정부의 자문위원으로 있을 때 신익희의 정의감과 공정성을 높이 산 우우임(于右任)이 국민정부(난징정부)의 심계원장으로 있으면서 그에게 심계원에 특별자리를 만들어 근무를 청하였다.
아무리 혁명기라고 하지만 자국 원수의 엄청난 기밀비의 감사를 외국인에게 맡긴 것이다. 당시 장개석 총통이 맡고 있는 요직만도 20개 정도여서 그가 관리ㆍ집행하는 기밀비가 엄청나게 많았다.
수다한 곳에 지출되는 국가 원수의 기밀비를 자기 나라 국민이 아닌 타국의 한낱 독립운동자에게 심사와 계산의 막중한 임무를 맡겼다. 중국 사회에서의 해공에 대한 신임도를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어느 기회에 해공께서 술회한 일이 있다.
"그때 중국 사회는 청조(淸朝)로부터의 부패의 폐습과 내란으로 인한 혼란 등등으로 국가 공무원 사회에도 많은 부분이 치부(致富)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풍조가 널리 퍼져 있던 때였다. 한국의 독립 운동가 신익희의 재산 모아 평생을 잘 살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한 그 청렴결백한 마음씨가 더욱 돋보였던 관계로 그 엄청난 비밀을 간직한 기밀비의 감사를 담당시켰던 것이지." (주석 8)
주석
7> 유치송, 앞의 책, 291~292쪽.
8> 신창현, 앞의 책, 169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해공 신익희 평전] 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