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가치가 퇴색하는 세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급격한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 그 자체가 종말을 고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마주했던 노동 현실의 민낯을 보며 현장의 관찰자이자 조율자로서 신입 노무사가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독자와 공유합니다. [편집자말] |
요즘 상담 건으로 여러 회사를 마주하다 보면 '근태관리'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사용자들이 꽤 있다. 이들 대다수는 과거 판교 IT밸리 소재 회사들이 선택했던 방법과 같이, 출·퇴근 시간을 직원 스스로 정하게 하는 '시차출퇴근제'나 특정 단위 기간의 총시간만을 정해 두고 그 배분은 직원의 선택에 맡기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상담 창구를 두드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워라밸' 즉 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하지 않으면 애써 구한 직원들이 금세 퇴사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용자들은 회사 내 규율이 지나치게 해이해질까 우려한다. '나인 투 식스(9 to 6)'로 대표되는 일괄 출·퇴근의 시대가 끝나다 보니, 근태 관리가 더 복잡해지면서 직원들이 과연 제시간에 맞추어 일하는지 측정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단순노동이 줄어들고 지식산업 등 비전형적 노동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과연 일한 시간을 어떻게 측정하고 관리해야 하는지는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그 우려 끝에 사장님들은 첨단 기술의 힘을 빌리고 있다. 출입구에 지문인식기 내지 RFID(전자기 유도방식) 출입증 등을 두어 개별 직원의 출·퇴근 시간을 1분 1초 단위로 관리하는 회사는 너무 많아 이젠 특별하지도 않다. 심지어 몇몇 회사는 '실근로시간'의 개념을 사전적 의미 그대로 "자리에 앉아 일하는 시간 그 자체"라고 판단해 화장실에 오래 머무르거나 소위 '담배 타임'을 가지러 나간 시간까지도 휴게시간으로 보아 엄격하게 관리한다.
법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관리 자체가 노동자들에게 불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무리 노동 친화적인 시선에서 보더라도 계약서상 하루 8시간을 일하기로 정해 두었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8시간은 그 노동력을 사용자에게 맡겨야 함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분초 단위의 관리가 이루어진다면 연장·야간 및 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수당도 일한 만큼 받을 수 있을 테니 이를 배척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정밀한 근태관리를 반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바로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문제 ① 일거수일투족 감시
무엇보다 사업주들이 근태관리를 이유로 개별 직원의 삶에 과도하게 간섭하게 된다는 문제가 대두된다. 최근 지어진 첨단 사옥은, 하나의 건물 내라 하더라도 각 구역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고 각각의 직원에게 출입 권한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접근 가능한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으로 나뉜다. 기밀 유출 등을 우려해 주요 동선에는 CCTV를 설치해 두는 것도 특별히 이상한 일이 아니고, '동의 하에' 사무실에까지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경우도 꽤 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을 통해 수집된 '빅 데이터'가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사용자는 어느 부서 어떤 직원이 언제 화장실에 들어가서 언제 나왔으며 얼마만큼 자리를 비우는지 하나하나 체크할 수 있게 된다. 마음만 먹는다면 자리에 앉아있기만 하고 업무에 집중하지 않는 시간(예: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거나 포털사이트에서 가십 뉴스를 검색하는)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조금 더 의도적이라면 회사 내에서 소위 '요주의 인물'로 치부되는 문제사원을 집중 감시하여 근태 불량으로 징계를 내리고 해고할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노동조합 비전임 간부들의 근태를 집중적으로 체크한 뒤 무언의 압박을 가하여 교묘한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 시스템에는 회사 내 극히 소수만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므로 문제가 불거지더라도 노동자들이 근태 관련 증거자료를 제출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 점이 '정보의 비대칭성'에 따른 불편부당함이 된다.
이러한 감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에 따라 사용자가 가지는 법적 권리를 남용했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크다. 사용자는 업무상 지휘·감독의 권한을 가지고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데에 징계 등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뿐, '모든 것을 감시할 권한'까지 부여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수집된 각종 개인정보가 제대로 보호되지 않고 외부에 유출된다면, 개인의 신상과 관련한 인적 정보가 제3자에게 공공연하게 퍼져 나가 이에 따른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다.
문제 ② 누가 정말 8시간 동안 "업무만" 하나
그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정말로 9시 출근부터 6시 퇴근 때까지 1분 1초도 게을리하지 않고 업무를 보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답을 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과거의 '근로(勤勞)'라는 개념으로 보면 하루 8시간 동안 근로하기는 참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프로젝트 마감 직전 하루 이틀이야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고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쳐도 그런 집중력을 가지고 1년 365일 전부 일했다가는 십중팔구 병을 얻고 말 거다. 물론 사용자 입장에서도 노동자들이 이 정도로 집중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기에 이에 대해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한다.
다만 "통상적인 노동을 8시간 동안 제공한다"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지가 이 문제의 전제가 된다. 단순 생산직이라면 업무를 하는지 안 하는지는 기계의 전원 스위치만 봐도 알겠지만, 사무직으로 대표되는 지식노동자의 '노동'은 과연 무엇으로 정의될 것인가?
부장님이 아침 회의에 들어가서 나오기까지, 특별히 할 일이 없어 포털사이트에서 오늘의 헤드라인 뉴스를 보는 시간은 과연 휴게 시간인가? 너무 바쁘지만, 당이 떨어져서 커피 한 캔 사러 사내 편의점에 가는 시간까지도 전부 '일하지 않은 시간'으로 볼 것인가? 재택근무로 애초에 출근하지 않은 직원들의 노동시간은 어떻게 측정하고 관리할 것인가?
노동시간과 휴게시간의 구분 및 특례
이에 대해 대법원은 단순히 노동력을 직접 제공하는 시간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작업시간 도중에 실제로 작업에 종사하지 않는 휴식시간이나 대기시간이라 하더라도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되지 않고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는 시간은 근로시간에 포함된다"고 보았다(대법원 2006.11.23. 선고, 2006다41990 판결 등). 쉽게 말해, 사용자가 노동자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맡겨진 시간은 노동시간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는 점에서, 단순히 앉아있거나 심지어 자리에서 일어나 잠깐 이탈하는 시간이 발생하더라도 그 시간을 업무에 종사하지 않은 시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직원들이 '작정하고' 몰려가 몇십 분씩 담배를 태우지 않는 이상, 일 하다가 머리가 안 굴러가서 바람 좀 쐬러 옥상에 올라간 몇 분을 일한 시간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
이에 우리 법제는 아래와 같은 특수한 경우 별도의 계산방법을 두고 있다. 연구·개발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업무를 하는 직원들이 단순히 책상에 앉아 펜만 돌리고 있다 하더라도, 그 시간을 놀고 있다고 보아 임금을 주지 않을 수는 없다. 이 경우 근로기준법 제58조 제3항의 '재량근로시간제'를 활용할 수 있다. 업무수행방법을 업무 담당자 스스로 정하는 연구개발이나 디자인, 취재 등의 업무라면 노동자대표와의 서면합의에 따른 시간을 일한 시간으로 보는 제도다.
여기에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애초에 출근 자체를 하지 않는 '재택근무'의 경우, 사용자로서는 노동자들이 자기 집에서 일한 시간을 분초 단위로 측정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경우 근로기준법 제58조 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사업장 밖 간주근로시간제'를 활용하여 노동시간을 정하되, 사내 메신저 등을 통해 적어도 시업시간부터 종업시간 사이에는 항시 연락이 가능한 상태인지를 확인하고 지휘·감독권을 행사하는 방법이 권장된다.
이렇게 단순히 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사용자들은 아래와 같이 실무적인 부분 또한 고려하여야 한다.
상호 신뢰에 기반한 자율 관리
먼저 근태 관리라는 측면에 있어서 과도하게 빡빡한 기준을 세우지 않아야 한다. IT기업 NC소프트의 예를 들면 회사 내 공간을 '업무 공간'과 '비업무 공간'으로 나누어 업무 공간 내에서는 자리를 비웠다고 하여 휴게시간으로 체크하지는 않는다. 다만, 업무 공간을 벗어나 같은 건물 내라도 사내 카페나 흡연장 등의 '비업무 공간'에 들어가서 5분 이상 머문 경우, 근로시간에서 제외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는 꽤나 합리적인 방법이지만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개선점을 찾아보자면 '5분'이라는 기준이 애매하다는 점이 걸린다. 특히 카페 주문이 밀려 대기시간이 길어진다거나, 잠깐 외출하는 사유가 상황별로 다른데도 왜 하필 '연속 5분'인지에 대한 그럴듯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밀 근태관리에 따른 휴게시간의 산정은 가급적 1주 이상의 긴 단위를 정하여, 기간 내 일정 시간(예: 1주에 1시간) 이상 자리를 비우지 않는 이상은 노동시간에서 제외하지 않는 편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지나치게 정량적인 측정은 삼가야 한다는 제언을 하고 싶다. 근태관리의 본래 목적은 노동자들이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도록 강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노동시간과 휴게시간의 철저한 구분에 따른 임금 지급 자체가 목적이 되는 현실은 지나치게 삭막하기까지 하다. 따라서 단순한 시간 단위 구분보다는 개인 및 팀 단위별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노동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용자와 노동자 서로가 두터운 신뢰를 쌓는 것도 중요하다. 애초에 근태관리를 안 하고도 성과가 나오는 집단이라면 관리에 필요한 비용까지 아낄 수 있으니 효율성이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몇 분 더 혹은 몇 분 덜 일했다면서 얼굴을 붉히는 시간에 차라리 다른 일을 처리하는 게 장기적으로도 좋다. 직원들이 최소한의 성실의무를 가지고 업무에 임하는 이상, 사장님 그리고 관리자들은 자기가 뽑은 직원들을 믿어주자. 질책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