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아프가니스탄 특별 기여자와 가족들이 머물게 될 숙소 앞에서 진행된 법무부 차관의 브리핑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무릎을 꿇고 법무부 차관에게 우산을 씌워준 보좌진의 사진은 여론의 공분을 일으키며 '황제 의전'이라는 헤드라인으로 퍼져 나갔다.
야당은 강 차관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현 정부의 부족한 인권 감수성을 공격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기자 사회의 폭력성을 지적하면서 언론중재법으로 가는 연결 고리를 놓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기자 사회 안에서도 영상기자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취재 관행으로 선을 긋는 취재기자들의 글도 보았다. 취재진의 요청에 따랐는데 미처 직원의 노고를 살피지 못했다는 강 차관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은 손을 누른 법무부 보좌관을 다시 들춰내면서 실타래는 더욱 얽히고 있다.
나는 뉴스 브리핑 현장에 오래 있었던 전직 영상기자로서, 이번 논란이 핵심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말하겠지 싶다가도 기자 사회 내부에서 이런 문제제기를 했다가는 분명 다시 '기레기'로 타자화되는 십자포화를 맞게 될 것이 분명한 것 같아서 이제는 취재 문화 밖에 있는 시민의 입장에서 조심스럽게 몇 자 적어 본다.
이 글은 언론개혁의 거대한 담론과 상관없이 독자들에게 맥락을 조금 설명드려서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썼다.
그날 모두는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우선, 현장 경험상 내가 보기에는 이번 경우에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은 '황제 의전'이라는 프레임으로 순간의 사진을 맥락에서 떼어낸 것에 있다. 이런 논란은 비단 우리나라의 공무원 의식이나 언론계 관행에서만 초래된 것이 아니다.
가까운 예로, 2013년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비 오는 날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해병이 받쳐준 우산을 썼는데, 야당인 공화당에서는 '우산 게이트'(Umbrella gate)라 부르며 일반인들은 비 오는 날 자기 손으로 우산을 쓴다고 일갈하고 해병 복무 수칙에 우산을 드는 규정이 없다고 비판했다.
시민들이 정보를 전파하고 공유하고 재가공하며 제2의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는 소셜미디어 시대에 정치문화 역시 큰 폭으로 변화하고 있다. 감성 중심의 정동 문화(affective culture)를 통해 모든 것이 정치로 빨려 들어가는 양상은 우리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현대 영상 저널리즘의 논의는 '사진은 직접 말을 한다'에서 '사진으로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라는 맥락으로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롤랑 바르트의 오래된 말을 빌자면 사진이란 기표는 제목이나 캡션 같은 기의에 의해 고정된다.
경험상 '황제 의전'이라는 자극적인 프레임과 결이 다르게 그날의 브리핑에서는 평소 공보와 취재의 관행 속에서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브리핑을 진행한 공무원들도, 또한 그것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공식적인 브리핑은 국민과 간접적으로 만나거나 매개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 시대에도 레거시 미디어는 여전히 많은 시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창구이다.
기자들이 우산을 쓴 보좌관에게 뒤로 가달라고 한 것은 특권의식의 발로나 개별 기자의 공적과 상관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 암묵적인 룰 안에서 훈련된 전문인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언론사라면 브리핑을 기록하는 것은 개인의 공적과는 관계가 없다.
일례로 브리핑은 공식적인 이벤트이기 때문에 취재할 때 문제가 생기면 다른 언론사 기자들에게도 영상 소스를 나눠주기도 한다. 비슷하게 법무부가 그런 요청을 수용한 것 역시 현장에 있는 기자 몇 명과 사적으로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 시민들을 만나는 엄숙한 순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머물고 있는 위계 문화를 생각할 때에는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도 많지만, 분명 이런 암묵적인 선의에서 그날 모두는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엉거주춤 쪼그려 앉다가 무릎을 꿇은 직원 역시 직접적인 위계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그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혹자는 기자들이나 관계자들이 브리핑 중간에라도 그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정보기술(IT)이 발전하면서 언론사들이 브리핑을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브리핑 중간에 개입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리고 브리핑이 시작되면 기자들은 같은 논리로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인지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 경우는 일방적으로 법무부나 기자 사회의 문화로 그 과를 떠밀 문제가 아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최대값으로는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단지 한순간의 떼어낸 사진을 정쟁화시킨 지점에 있고, 최소값으론 현장에 대한 오해에 있다.
맥락에서 떼어낸 사진 위에 프레임 씌우는 관행, 그 정쟁화의 의도
사실, 이번 논란의 더욱 큰 문제는 서로 다른 언론사가 같은 헤드라인과 프레임을 복제하고 양산하는 속도와 패턴에 있어 보인다. 현장에 있는 경험 많은 기자들이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을 터이나, 그걸 알면서도 상업적인 목적으로 빠르게 치환하는 그 무시무시한 생태계를 주목하여야 한다.
많은 경우에 있어 첨예한 사회적 갈등은 사회적으로 약한 고리들을 타자화하고 희생양으로 삼는다. 이번 사건은 법무부에서 기자 사회로, 그리고 더 나아가면 현장에서 취재를 하는 사진 및 영상기자로 표적이 이동하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나온 대다수의 '영상'을 다루는 동료들은 그런 괴물들이 아니다. 특히, 현장에서 사람들과 직접 대면해야 하는 영상기자들은 현장의 감수성에 더 예민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로 실내에서 진행을 할 수 없었다는 법무부의 말이 암시하는 것처럼 오늘날 현장은 혼잡하다.
좋게 보면 언론의 다양화, 좀 나쁘게 말하면 사진기자의 프리랜서화, 정당을 대변하는 유령 언론사들이나 조회수를 통해 영업하는 유사 언론사들까지 합류하면서 현장 취재 인력은 그 수가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장이 무풍지대는 아니다. 영상기자협회와 같은 단체는 현장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학계 및 전문가들과 포토라인 준칙을 만들고, 시민들 눈높이에 맞는 현장 관행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취재진이 많은 경우에 사진기자협회나 영상기자협회, 그리고 인터넷기자협회는 풀단을 구성해서 소스를 공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짚어봐야 하는 실무적 핵심은 현장 기자의 요청이라는 법무부의 단순한 해명보다 브리핑을 진행하는데 이들 실무자들과 어떤 협의가 오고 갔는가와 그 준비의 밀도에 있다.
문제를 볼 때 누군가를 타자화하는 방식은 가장 직관적이고 쉽다. 하지만 정말 좋은 언론 생태계를 원한다면 보다 정확한 번지수에서 논의가 오고 갔으면 한다. 가장 포괄적인 차원에서는 이번 계기를 통해 공무원 조직뿐 아니라 광범위하게 일상화되어 있는 우리의 위계 문화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보다 실무적인 차원에서는 현장에 있지도 않은, 책상 앞에 있는 기자들이 맥락에서 떼어낸 사진 위에 자신의 프레임을 씌우는 관행을, 그 정쟁화의 의도를 비판했으면 한다.
'황제 의전' 헤드라인 붙인 언론사와 기자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야
이번 경우는 그날 현장에 있던 공무원들과 기자의 행동에 과도한 인격적, 정치적 해석을 하기보다는 사진 소스를 통해 정치적 프레이밍을 하는 방식과 이를 재생산하는 구조, 그리고 언론사와 정부의 소통 구조에 대한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사회적으로 지식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구성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짜 뉴스라고 부르는 비판의 방식은 이렇게 영상이나 사진과 결합한 숨은 의도들을 잡아내기에는 뭉툭하다.
그래서 시청자들에게 보다 깨끗한 화면과 음성을 전달하려는 프로토콜을 통해 보좌관에게 뒤로 가달라고 말한 기자보다는, 같은 논리로 우산을 들고 버텨준 보좌관보다는, 맥락에서 한 장의 사진을 떼어내어 '황제 의전'이라는 헤드라인을 붙인 언론사와 기자들에게 먼저 그 이유를 물어야 한다.
또한 현장을 이해하면서도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를 확대 재생산한 언론사 데스크와 정쟁의 불쏘시개로 사용하는 정치권에 그 질문이 가야 한다. 그리고 보다 실무적으로는 법무부가 언론사 기자들과 어떻게 소통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레거시 미디어가 약해지면서, 그리고 메시지를 전달할 대안적인 방식들이 생기면서 공보와 언론의 관계는 대칭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언론의 발전을 위해서 사진의 안뿐만 아니라 사진 밖의 구조화 과정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분쟁적이지만, 논의에서 엉뚱한 사람들이 허물을 뒤집어쓰거나, 핵심이 아닌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혐오가 양산되면서 이 문제가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