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일환으로 도입된 '법조일원화'를 퇴행시킨다는 우려가 나왔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21대 국회 들어 본회의 상정 법안 부결은 처음이기도 하다.
31일 여야는 판사 임용시 필요한 법조경력을 10년에서 5년으로 완화하는 법안을 표결에 붙였다. 그 결과 재석 229인 중 찬성 111인, 반대 72인, 기권 46인으로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을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당초 이 법안은 지난 5~6월 집중 발의됐고, 이례적으로 두 달만에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 심사를 통과했다. 당시 여야 위원들은 모두 '고민스럽다'면서도 '사람이 부족하다'는 법원행정처 주장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동의를 표시했다. (관련 기사 :
또 꺾였다... 방향 잃어가는 법원개혁 http://omn.kr/1ux3g)
하지만 8월 24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가결될 때에도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쌓은 판사들을 뽑자'는 법조일원화 본래 의미를 잃을 수 있다며 후속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그러자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은 "애초에 2011년도 국회가 저희에게 명령했던 (법조)일원화의 취지, 신뢰받는 법관을 잘 선발해서 좋은 재판을 하라는 취지가 구현될 수 있도록 임용절차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말 냉정하게 분석하고 개선책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이탄희 "법조일원화 퇴행, 판사 승진제 부활... 위험한 무리수"
이 법안을 꾸준히 비판해온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며 31일 본회의에서 반대토론에 나섰다. 그는 "김명수 행정처의 이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법조일원화를 퇴행시키고 판사 승진제를 사실상 부활시키는 법안"이라며 "표면적으로는 인력난을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 법조현실과 법조사법시스템에 최악의 나비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현행법은 짧게는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부터, 또 길게는 1993년부터 18년간 논의해서 2011년에 도입한 제도"라며 "그런 제도를 입법공청회 한 번 안 하고 법안 발의 후 단 3개월 만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퇴행시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무리수"라고도 지적했다. 이어 "재판은 수학이 아니다"라며 필기시험 위주의 판사 임용 방식에 고육지책으로나마 변화를 주기 위해 도입한 법조일원화의 근간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지방법원의 경우 법조경력 5년, 고등법원 이상은 10년으로 판사 임용 요건을 나눈 방식도 비판했다. 그는 "법원은 10년 경력자들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 아니냐"며 "2심 판사 충원을 10년 경력자들로 하겠나, 1심 판사들로 내부승진시키겠나"라고 지적했다. 또 문재인 정부의 사실상 유일한 법원개혁 성과인 고등부장판사 폐지가 불과 1년 전이었다며 "왜 그걸 은근슬쩍 되돌릴 수 있는 일에 우리 국회가 협력해야 하는가"라고도 물었다.
반면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던 같은 당 홍정민 의원은 "법조경력이 늘어날수록 실제로 판사임용 신청자가 급격히 줄고 있다"며 법안의 현실적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군사법원법 개정 등으로 증가하는 판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법관 수 감소하게 되는 현재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며 "법관의 충분한 검토시간이 확보된, 양질의 재판받을 국민의 권리를, 그리고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를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민주당에서 반대·기권 속출... 4표차로 '의외의 부결' 나와
사실상 여야 합의로 넘어온 법안을, 여당 의원끼리 찬반토론을 주고받는 묘한 상황 속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민주당 의원 가운데 반대와 기권표가 속출한 것이다.
여당에선 이탄희 의원뿐 아니라 고민정, 김민기, 김상희, 김승남, 김승원, 김원이, 노웅래, 민병덕, 민홍철, 박상혁, 박영순, 박재호, 서동용, 신동근, 신영대, 신현영, 양경숙, 어기구, 우원식, 위성곤, 유기홍, 윤재갑, 이개호, 이성만, 이용우, 이학영, 인재근, 장경태, 전용기, 정춘숙, 주철현, 천준호, 최혜영, 한준호, 황운하, 허종식 의원도 반대표를 던졌다. 기권표를 행사한 민주당 의원도 28명에 달했다.
그렇게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부결됐다. 딱 네 표 차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