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반려인의 세계'는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룹니다. 이번 주제는 '유기견, 유기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
얼마 전 <펫키지>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희철씨가 "전문가들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하는 초보자들에게 유기견을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더라"라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불거졌다. 상처가 있는 유기동물은 그만큼 많은 사랑과 돌봄이 필요하고,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사람도 동물도 다시 한번 상처를 받게 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해당 발언이 논란이 되자 그는 추후 개인 SNS를 통해 '초보자가 유기견을 키우는 건 사랑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키우는 사람도 전문가에게 교육을 받고 충분한 지식을 갖고 키워야 한다는 의미'였다고 억울함을 토로했고, <펫키지> 제작진도 해당 발언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생겨 유감이라며 입장을 표명했다.
물론 그 발언의 취지도 이해할 수 있고, 동물을 키우는 데에는 충분한 지식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대상을 유기견으로 한정하여 '유기견은 더 키우기 어렵다'는 것처럼 방송이 나간 부분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개인의 생각을 발언한 부분보다는, 반려동물을 콘텐츠로 삼는 방송에서 유기동물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재확산할 여지가 있는 발언을 부가적인 설명이나 고민 없이 내보냈다는 점에서 제작진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부분을 지적하고 싶다.
아픈 유기동물을 입양한 그 후
나는 지금 유기되거나 파양된 개와 고양이를 총 네 마리 키우고 있다. 그중에 한 마리 고양이는 직접 보호소에서 만나 보고 입양한 케이스로, 이미 4살 정도로 추정하는 성묘였다.
나도 아기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있지만, 아기 고양이는 기절할 만큼 귀여운 한편 정말 사람을 기절시킬 만큼 천방지축이기도 하다. 발돋움할 만한 가구와 집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발톱을 세워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은 때를 구별하지 못하고, 잠시 눈을 떼면 우리 집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말도 안 되는 장소에 들어가 온몸에 먼지를 끼얹고 있다.
사실 새끼 고양이라는 게 원래 그런 천둥벌거숭이 같은 존재다. 귀엽지만 평온하게 병풍처럼 감상할 순 없다. 고양이를 처음 키워보는 사람이라면, 펫숍에서 생후 두 달쯤 된 새끼 고양이를 입양했더라도 상상과 다른 현실에 깜짝 놀랄 것이다.
나는 오히려 성묘와 지내는 것이 나의 성향과 잘 맞았다. 이미 어느 정도 성격과 성향이 드러난 동물, 상처가 있더라도 보호소가 아닌 우리 집에서 그 상처를 서서히 치유해나가며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 좋았다.
보호소에 가면 많은 강아지들이 사람을 경계하기보다는 오히려 다가온다. 반면 낯선 환경이나 낯선 사람을 싫어하는 고양이들은 입양을 염두에 두고 온 방문자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숨는다. 보호소가 마치 자신의 영원한 집이라고 믿는 것처럼.
이처럼 이미 다 큰 성묘가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집사를 만나 적응하는 것이 어려워 보일지도 모른다. 매체에서 집사와 친밀한 고양이의 모습을 보고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그런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애초에 '완벽한 반려묘'를 맞이하고 싶은 것도 당연한 마음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입양하기로 한 고양이를 집에 데려오기 전에 병원에 갔더니, 적응은 둘째치고 고양이가 심한 구내염을 앓고 있어 치아를 다 발치해야 한다고 했다. 보호소에서 오는 길이라는 말을 듣더니 수의사 선생님은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건강한 아이를 입양하지 그러셨어요."
그러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한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일에 완벽한 조건이라는 것이 있을까. 일생을 걸고 결혼할 사람도 완벽한 이상형을 만나기 어려운데, 반려동물이 알아서 완벽한 상태로 나를 기다려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사람의 욕심이 아닐까.
무엇보다 펫숍에 전시된 어리고 귀여운 동물이 평생 '하자 없는 새 상품' 같은 존재로 남는 것은 아니다. 동물은 모두 생명이기에, 다들 공평하게 좋고 나쁜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아플 수도 있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에너지가 넘칠 수도 있고, 뜻밖의 문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어떤 동물을 키우든 마찬가지이고,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면 동물을 키우지 않는 선택도 있다.
그렇게 우리 집에 온 고양이 달이는 발치 수술을 받았지만 잘 먹고 잘 자면서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구석진 곳으로 쭈뼛쭈뼛 숨어 들어가던 고양이가 지금은 침대 위에서 배를 드러낸 채 발라당 누워서 잔다. 대형견 리트리버가 마시고 있던 물그릇에 얼굴을 들이밀면서 자리를 뺏기도 한다.
언제 서먹했느냐 싶게 곁에 와서 얼굴을 비비는 달이를 보면, 우리가 친해지기까지의 과정이라는 게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해 각자의 과거를 지닌 채 새로운 인연을 맺는 인간관계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랑엔 책임이 따른다
초보자가 유기동물을 키우기 어려울 수 있다는 그 말은 일면 옳은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한마디 덧붙이자면, 한 생명을 키우고 돌보는 일은 애초에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정확한 표현이다. 설령 펫숍에서 어린 고양이나 강아지를 데려온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경로의 입양보다 키우기 쉬운 건 결코 아니다.
펫숍에서 쉽게 동물을 '구매'했다가 별다른 고민이나 공부 없이 키운다면, 결국 동물은 사람의 기준에서 문제 행동을 하게 되고, 그것이 감당하기 힘들어지면 사람들은 동물을 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그 동물이 결국 유기동물이 되는 것이다. 물론 문제 행동 때문이 아니라 이사, 유학, 임신 등 갖가지 인간의 사정에 의해 버려지는 동물도 많다.
반대로 혹여 문제 행동을 가진 유기동물을 입양했다고 해도 보호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문제 행동이 교정되고 빠르게 마음을 열 수도 있다. 확실히 동물을 '잘' 키우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그런데 한 생명을 키우는 데에는 결국 그 정도의 각오와 노력이 필요하다.
'전문가는 유기견을 추천하지 않는다'는 김희철씨의 발언도 사실 그가 실제로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고, 그 고충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도리어 그러한 전문가의 조언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충분한 공부를 바탕으로 동물을 키운다면 그 대상이 유기동물이냐 아니냐로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에 상처받은 적 있는 사람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유기동물'이라는 커다란 프레임이 지닌 성격을 일반화시키는 것은 지나치게 거칠고 섬세하지 못한 분류다.
유기동물이라서 초보자가 키우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초보자가 신중하게 고민하지 않고 쉽게 동물을 '구매'하는 행위를 오히려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다소 극단적으로 말하면 유기동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동물을 키울 수 없는 사람은 오히려 어떤 동물도 키울 수 없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동물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보호자 스스로가 생명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그러한 보호자로서의 책임과 각오에 대해서도 함께 언급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질 수는 없다. 김희철씨가 유기견 문제를 대표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전문가가 이렇게 말했다'는 발언을 영향력 높은 미디어 매체에서 하면, 언뜻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그게 정답인 것처럼 스며들기 쉽다. 수많은 사연을 지닌 유기동물들이 있는데 '유기동물은 원래 키우기 어렵다'고 단정 짓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유기동물에게 다시 한번 상처를 주는 일이다.
어떤 사람들이 유기동물을 입양하는 것이 꼭 사회 운동가이거나 동물보호 의식이 투철해서인 것도 아닐 것이다. 한 생명을 책임질 준비가 되었고, 그때 그 동물을 만났을 뿐이다.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정품'이나 '신상'을 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한번 버려졌다는 사실보다는, 남아 있는 긴 시간에 우리가 충분히 가족으로서 값지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한 번쯤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그 사랑에는 분명 노력이 필요할 테지만, 생각해보면 모든 사랑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