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 힘은 '가치'다.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제대로 발휘하면 나라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친일파 저항을 받을 것이지만 감내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아쉬운 게 있다.
그동안 박근혜는 무너졌지만, 이명박·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친일·반민족 구조'는 그대로 엄존한다. 그들이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이명박·박근혜를 내세웠듯이 지금도 그런 작업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이명박·박근혜를 만들려고 한다. 그것을 국민들이 막아내야 역사가 굴곡이 없이 나아갈 것이다."
김원웅 광복회 회장이 강조한 말이다. 김 회장은 15일 저녁 창원노동회관 대강당에서 '우리민족끼리통일의문을여는 통일촌' 초청으로 "새로 쓰는 역사의 시작,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강연했다.
먼저 광복회 회장 선거 당시를 언급한 그는 "역대 회장들의 공약을 봤더니,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어렵게 사니까 경제적 도움을 주는 사업을 하겠다는 게 많았다"며 "그러나 한 번도 그 공약이 실천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공약을 새롭게 했다.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우리 시대에 구현하도록 하자고 했다. 일을 하면서 당당하게 요구하고, 앵벌이처럼 하지 말자고 했다"며 "그래서 '친일청산'을 공약으로 내세웠다"고 했다.
이어 "이는 역대 어느 회장도 내세우지 않았던 공약이다.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친일파들의 묘를 정리하는 법을 만들고, '친일찬양금지법'을 만들겠다고 했다"며 "그래서 잠자는 광복회의 어깨를 흔들어 깨우겠다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압도적 득표로 당선했다"고 덧붙였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이 가난하다고 한 그는 "친일파 후손은 떵떵거리고 잘 사는데 독립운동가 후손은 왜 가난한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며 "대한민국은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이 죄가 되는 나라가 됐다. 그런 나라에서 어떻게 후손들이 잘 살 수 있겠느냐. 이제는 국민들이 많이 깨어났다고 본다"고 했다.
광복 이후 미국과 러시아의 포고문을 비교한 그는 "1945년 9월 러시아는 '조선인이 결정한다. 독립과 자유를 축하한다. 조선독립 만세'라 했고, 미국은 '점령군이다. 미국 말을 들지 않으면 엄벌에 처한다. 공용어는 영어다'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군정은 임시정부 인사와 독립운동가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임시정부와 광복군도 해체해서 개인자격으로 들어오라고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당시 맥아더는 일본에 있으면서 부하인 하지를 통해 명령했다. 맥아더는 일본 정계에서 자문을 구했다. 일본 정계 인사들은 친일파를 쓰면 된다고 일러 주었던 것이다. 친일파는 일본사람보다 능수능란하게 조선인을 절단 낸다고 했던 것이다. 친일파는 일본을 위해 충성을 다했는데 왜 미국을 위해 충성을 하지 않겠느냐고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광복 이후 판·검사들은 친일파로 기용됐던 것. 김 회장은 "일제강점기에 검·판사 대부분은 극소수를 빼고 일본사람이 했다. 일본이 패망하고 나서 그 자리가 비어 남았다"며 "친일 앞잡이 했던 법원 서기들이 판·검사로 기용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험도 없이 법원 서기 경력으로 판사, 검사가 됐다"며 "옛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선친이 대법관을 지냈는데, 그 분도 법원 서기로 있다가 판사가 된 사례다. 그 집안에서는 맥아더가 가문에 영광을 준 은혜로운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친일파들이 주요 관직을 맡아 일하니까 부패가 심했다. 대구와 제주에서 부패 때문에 주민들이 항쟁을 하니까 미군정은 '빨갱이'로 몰았다"라며 "친일파들이 몰아간 방법이 '빨갱이'다. 그래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군인이 아닌데,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민간인이 집단 학살됐다"며 "전쟁이라도 죄 없는 민간인을 죽이는 건 범죄다. 그런 의미에서 맥아더가 '전범'이다. 미국의 횡포가 통하지 않는 세계 질서라면 맥아더를 전범 재판에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가 광복회 회장한 지 2년이 지났다. 놀란 게 있다. 회원을 찾아가 보니 너무 어렵게 사신다. 가난해서 못 배운 회원들이 많다"며 "그런데 '태극기부대'가 된 회원도 있더라. 제가 회장이 된 뒤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뿌리를 이야기 했다. 지금은 상당수 돌아왔다고 본다"고 했다.
"'박정희정권'이 아니라 '만주군정권'이라고 해야"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에 대해, 김 회장은 "민족주의 우파 백범 선생을 죽이고 나서 안두희가 진술서에 '타공'이라고 썼다. '공산당을 타도했다'는 말이다"며 "김구 선생은 사회주의를 싫어했던 사람인데, '타공'이라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두희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는데 이승만이 3개월만에 사면을 해주었고, 그것도 '대위'로 승진해서 다시 군대에 보냈다"며 "군대에 있다가 나와서 부식을 군대에 납품하는 업체를 운영했다. 속초에 회사를 두었고, 당시 자료를 보면 강원도 납세순위 2위를 했다. 그 때 돈을 벌었고, 박정희 때까지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정희에 대해, 김원웅 회장은 "'박정희정권'이 아니라 '만주군정권'이라는 표현이 맞고, '독립군 토벌대정권'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맥아더가 독립군 토벌하던 만주군 출신을 심부름 시켰다. 영어를 할 줄 모르니까 미군정이 '영어군사학교'를 만들어 1년간 교육을 시켰다"며 "그 다음에 그들을 중심으로 군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초대 육군 참모총장은 독립군 출신이 아니라 독립군 토벌하던 사람이고, 2대부터 19대 참모총장까지 그랬다"며 "나이가 들어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했다. 그 출신들이 그 다음에는 국방장관, 국회의원을 하고, 심지어 국무총리도 했다. 독립군 토벌대의 전성기가 박정희 때였다. 그래서 '박정희시대'가 아니라 '만주군 토벌대 시대'라고 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승만에 대해 김 회장은 "처음에는 내각에 친일파가 많았고 독립운동가는 몇 명 뿐이었다. 이시영 부통령이 도중에 사표를 냈는데 그 이유가 '친일파들이 하도 발호해서 심히 내가 손발이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사표를 낸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런 내각이니까 사실 해방이 안 된 것이다. 일제 친일앞잡이 내각이었다"며 "그런 역사를 가르쳐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김원웅 회장은 "한국정치인의 첫 번째 자질은 '분단국가 정치인의 고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나라가 어떤 나라냐"고 물었다.
'호국'에 대해 그는 "일제 때는 '천황폐하'를 지키고, 해방 이후에는 '친일·반민족자'들의 이익을 지키고, 지금은 강대국에 의한 분단이익을 지키는 게 무슨 호국이냐. '가짜 호국'으로 산 사람이 백선엽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조중동'과 '친일앞장이정당'으로부터 '빨갱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사람이다"며 "조중동으로부터 빨갱이 비난을 듣지 않는 민주당 대선 후보는 기회주의자다. 그들로부터 '친북좌파'라는 말을 듣는 사람만이 애국자다"고 했다.
이어 "조선일보가 저한테 '빨갱이', '친북좌파'라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어깨가 펴진다"며 "신채호, 윤동주, 김구의 길을 걷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빨갱이라는 말을 안 들으면 가짜이고, 부모나 할아버지를 배반하는 광복회원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이 우리를 우방이 아닌 '졸개'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
쿠바와 수교 필요성을 강조한 김 회장은 "제가 국회 있을 때, 미국이 쿠바와 관계 개선을 협의할 시기였다. 그때 외교부 담당자를 만나 우리도 쿠바와 수교를 검토해볼 때가 됐다고 했다"며 "그랬더니 외교부 담당자가 안된다고 하더라. 이유를 물었더니 미국이 안된다고 하더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가 주권국가인데 말이 되느냐고 했더니. 우방이 간곡히 부탁하니까 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보다 미국과 더 가까운 영국, 캐나다, 일본, 호주도 쿠바와 수교를 했지 않느냐고 했다. 미국이 우리를 우방이라 생각하지 않고 '졸개'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현재 쿠바와 수교를 맺지 않고 있는 나라는 이스라엘과 한국이다. 자본주의 국가 중에서 쿠바가 수교를 하지 않은 나라가 한국뿐이다"고 했다.
"박정희가 보릿고개를 없애주었다"고 하는 말에 대해, 김 회장은 "1960년대는 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 20년이 지났을 때다. 당시 유럽은 전쟁 폐허에서 일어났다. 경제가 성장하면 임금도 올라가고 섬유 같은 노동집약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며 "그 산업은 유럽에서 채산성이 맞지 않아 다른 나라로 하청을 주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자본주의에 편입된 나라 가운데 문자해독력이 높은 나라는 홍콩, 대만, 한국뿐이었다. 우리는 소를 팔아 자식들을 공부시켰던 탓이다"며 "임금이 싸고 글자도 아는 국민은 3개국 뿐이었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당시 대만은 장개석 아들인 장경국이 독재할 때, 홍콩은 영국총독이 다스릴 때였다"며 "그 두 나라가 경제발전을 했다고 해서, 대만은 장경국 때문에, 홍콩은 영국총독 때문에 보릿고개가 없어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박정희 때문에 보릿고개 없어졌다는 말은 친일파들이 만든 거짓이다. 당시에 박정희가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더 발전했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일본 스가 총리가 "한일관계 본질은 1965년 한일조약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도 김 회장이 설명했다.
그는 "일본이 침략했던 동남아 각 나라들과 수교를 맺으면서 조약을 체결했다. 미얀마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이다"며 "동남아 각 나리의 조약이 '배상조약'으로 되어 있다. 우리처럼 그냥 '한일조약'이 아니다. 동남아는 2~3년 정도 침략했는데 배상조약을 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런데 박정희가 체결한 '한일조약'에는 어느 한 구절에도 '일제 36년이 잘못'이라는 구절이 없다. 3억불에 대해 일본은 배상금이 아니라 '독립 축하금'이라고 했다"며 "일본은 우리에게 사과할 의무가 있는 나라이지 축하할 입장이 아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미국에 대해, 김 회장은 "미국이 세계 70개 나라에 주둔하고 있고, 아시아는 10개국이다. 주둔하는 나라마다 미군지위협정인 '소파'를 맺는다"며 "그런데 나라마다 소파 내용이 다르다. 독일은 미군기지 내에 환경오염이 있으면 원상회복 책임을 미국이 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한미소파에는 미군이 원상회복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고 말했다.
김원웅 회장은 "회장에 당선되고 나서 역대 회장처럼 적당히 지내고 임기를 끝마칠 수도 있다. 그러나 '친일청산'을 하지 않고 편하게 끝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바닥부터 보자고 생각했다. 가난하고 힘든 회원들을 일으키는 것부터 하자고 했다. 세상을 바꾸는 데, 광복회의 이름을 갖고 그 기수가 되자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