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감당'일 때가 많다. 여러 관공서나 단체, 정당에서 보내오는 보도자료를 받아보고,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되도록 우리말로 바꾸려고 하는데, 감당이 되지 않는 '외래어 투성이'를 자주 경험한다.
누구는 보도자료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두고 '번역'이라 말할 정도다. 간혹 보도자료 작성자한테 묻기도 한다. 설명을 들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외래어를 쓸 게 아니라 우리말로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때가 있다.
그러면 보도자료 작성자들은 "원래 사업 명칭이 외래어로 되어 있어 바꿀 수 없다"거나 "다음부터는 참고하겠다"라고 하기도 한다. 또 "그러면 <오마이뉴스>는 우리말이냐"라거나 "국어순화 담당관으로 들어오면 되겠네"라는 다소 황당한 답을 할 때도 있다.
좋은 정책이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면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려운 외래어를 사용하면 설명까지 해야 하니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몇몇 사례를 보자. 통영 두미도에 '스마트워크센터'라는 공간이 생겨났다. 경남진주혁신도시에 있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아래 중진공)이 지난 5월, 인터넷이 가능하도록 해 두미도에서도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경남도는 "우리는 섬으로 출근한다"며 "전국 최초 섬택근무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냈다. 당시 경남도청 담당자한테 '스마트워크센터'가 무엇을 하는 곳이며, 누가 이런 이름을 정했느냐고 물었다. "중진공에서 이름을 지었다"는 대답이었다.
'스마트 워크센터'보다 '(지능형) 원격근무센터'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원에 '경남콘텐츠코리아랩'이라는 곳이 생겨났다. 창원대로변에 있는데, 건물 외벽에 간판도 붙어 있다. 그 아래에 붙어 있는 '웹툰 캠퍼스'라는 말도 좀 거리감이 있지만 만화 관련 작업을 하는 곳이라는 생각은 든다.
경남도는 지난 8월 "경남콘텐츠코리아랩 콘텐츠 창업 아이디어 해커톤 개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콘텐츠 혁신 비즈니스 모델 도출을 위한 창업 아이디어를 주제로 콘텐츠 창업 아이디어 해커톤을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
'콘텐츠코리아랩', '콘텐츠', '아이디어', '해커톤', '비즈니스', '모델' 등 외래어가 수두룩하다. "경남도민 가운데 이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도자료에는 '해커톤'에 대해 "해커와 마라톤의 합성어로 팀을 구성한 뒤 한정된 기간 내에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하는 행사"라고 설명해 놓았다.
'콘텐츠코리아랩'이 뭐냐고 담당자한테 물었더니, "문화콘텐츠 창업과 교육, 지원을 하는 곳"이면서"문화체육관광부 문화산업정책과에서 했던 공모사업 명칭이고, 경남이 선정되어 앞에 '경남'을 붙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콘텐츠코리아랩'보다는 '문화창작교육지원실(관)'로, '콘텐츠 창업 아이디어 해커톤'은 '콘텐츠 창업 아이디어 끝장 토론회'로 하면 쉽게 이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군도 많다. 김해시는 지난 6월 '김해국제의생명과학축제'를 비대면으로 열면서 주제를 "웰바이오 시티 김해 미래를 느껴 BIO"로 정했다.
담당자한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웰빙'과 '바이오'가 '발전'하는 도시 김해의 미래를 느껴봐"라는 뜻이라고 했다. 공무원들이 자체적으로 구호를 정했다는 것이다.
책 <요즘 우리말께서는 안녕하신가요?>를 펴낸 이우기 경상국립대 홍보실장한테 이 주제를 우리말로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불감당'이라고 했다. 그냥 "의생명과학 도시 김해의 미래를 느껴봐"로 하면 누구나 이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남도는 지난 6월 양산에서 열었던 "K-바이오 랩허브" 대토론회와 관련한 보도자료를 냈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하는 정책으로, 경남도는 'K-바이오 랩허브 유치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했다.
'K-바이오 랩허브'는 한 마디로 말해 신약 개발 창업 기업 육성을 위한 공동연구 기반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바이오'는 '생명과학'이고 '랩'은 '실험실', '허브'는 '중심'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국 생명과학 대표(핵심) 실험실'로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제시는 지난 6월 "ICT 기반 식생활증진 시스템 구축 사업 지원 요청"이란 자료를 내면서 "이 사업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VR, 빅데이터를 활용하여"라고 했다.
'ICT'는 '정보문화기술', '시스템'은 '체제', 'VR'은 '가상현실'로 하면 된다.
진주시는 지난 7월 '기업 애로 처리 공무원 전담반 운영' 소식을 알리면서 "각 부서, 유관기관과 연계해 one-stop 처리를 가능하게 한다"고 했다. 보도자료에 '원-스톱'을 한글도 아닌 영문으로 그대로 썼다. '원-스톱 처리'는 '일괄(통합) 처리'로 하면 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은 "전국 순회 정책 엑스포 in 경남 - 경남의 비전을 제안한다"는 행사를 열면서 관련 자료를 냈다. 경남에서 여는 행사라는 의미로 'in'을 썼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표현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엑스포'도 '발표회'로 바꾸면 될 것이고, 행사 명칭을 "전국 순회 정책 발표회-경남, 경남의 비전을 제안한다"라고 하면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창원시와 현대자동차는 창원광장에서 "창원 수소모빌리티 로드쇼"를 열었다. 행사 참가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이벤트 기간. 리플렛 속 체험 미션을 완료해보세요. 미션 완료 시 도슨트가 스티커를 제공합니다. 전체 미션 모두 성공하신 분께 기념품을 드립니다"고 했다.
이 소식을 뉴스로 본 한 누리꾼은 관련 기사에 "그냥 수소차 전시회라고 해도 되겠구만"이라고 했다.
행사명칭을 "창원 수소차 전시회"로, 안내문을 "전단에 제시된 체험 과제를 완료해 보세요. 과제를 완료하면 해설사가 붙임 딱지를 드립니다. 전체 과제를 모두 성공하신 분께는 기념품을 드립니다"로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우기 홍보실장은 "정책이나 행사를 기획하거나 만들 때 외래어를 쓰지 않는 게 중요하다. 보도자료를 쓰는 사람이 중간에 바꾸기가 쉽지 않다"며 "고유명사 이외에 단어나 문장에 있어 우리말을 쓰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