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민 정의당 전 대변인이 반려묘 '참깨'와의 좌충우돌 동거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당인, 1인 가구 여성 청년, 그리고 반려묘 참깨의 집사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말] |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추워진 날씨에 몸을 움츠리며 골목에 들어서자 작은 고양이가 보였다. 동그란 눈으로 날 보는 모습에 예쁘다는 말이 나오려던 찰나, 그때 그 고양이는 너무나도 춥고 배고파 보였다. 급히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고양이 사료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고 결국 작은 소시지 하나를 사서 나왔다. 그 틈에 고양이는 자리를 옮겼고 혹시나 다시 돌아올까 하는 마음에 뜯은 소시지를 놓고 집으로 갔다. 골목을 돌자 벽에는 한 문구가 보였다.
'고양이 먹이 금지.'
나는 사실 고양이에 친화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강아지에게 두세 번 물린 기억도 있고 아토피 때문에 동물과는 친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반려묘 참깨와 살다 보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만큼 참깨에게도 따스함, 안락함을 전달해주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집사가 되었고, 동물권에 관심을 갖는 사람 중에 하나가 되었다.
참깨와 함께 살면서 달라진 점 중 하나는 길고양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고양이마다 각자의 생김새가 있지만 거리에서 만난 고양이들을 보면 참깨와 비슷한 무언가가 하나씩은 보였다. 털 색깔, 몸짓, 눈빛 등 참깨와 같은 기운이 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고양이를 대하는 마음도 바뀌었다. 참깨를 처음 데려왔을 때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고양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강했다면, 이제는 '우리 참깨가 운이 좋아 건강하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 길고양이들이 모두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바뀐 것이다.
재개발 지역에 홀로 남은 '꿈꾸는 고양이'
지난달 고양이의 날(9월 9일)을 맞아 개봉한 다큐를 알게 되었다. <꿈꾸는 고양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재개발 지역에 남아 있는 고양이들의 삶을 따스한 시선으로 담은 내용으로 참깨와 같은 길고양이들이 주인공이었다.
'철거 이후 고양이의 삶이란?' 부끄럽지만 그동안 한 번도 고민해 보지 못했다. 다큐를 보기 전까지 내게 철거란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그 공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바로 바꿔버리는 것 정도로 여겼다. 이 설명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니 내가 한 설명에는 말 그대로 '출연자'만 있었다. 동네 곳곳을 누비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물들, '출연묘'는 없는 셈이었다.
철거한다는 것은 인간의 주거공간뿐만 아니라 고양이들의 삶도 빼앗는 문제였다. 특히나 고양이는 영역동물이기 때문에 재개발로 사람들이 이사를 가고, 철거를 진행하는 위험한 상황을 마주해도 동네를 쉽게 이동하기 어려웠다. 결국 고양이들은 거리에 깨진 유리조각과 철거로 인한 잔해들 사이에서 평소처럼 일상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 많은 재개발 지역에서 철거 작업 중 압사로 많은 고양이들이 생명을 잃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영역을 이동하지 못한 녀석들은 아파트가 철거될 때 놀라 찻길로 뛰어드는 경우들도 있었고, 철거구역이라는 비위생적인 환경에 있다 보니 구내염, 허피스, 안구질환 등 여러 질병에 그대로 노출되곤 했다. 로드킬로 가족을 잃은 우리 참깨 역시 구조되지 않았다면 마주했을 일상인 셈이었다.
이런 상황에 거침없이 나선 것은 결국 집사들이었다. 고양이들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구조를 하거나 '급식소'(밥통) 위치를 조금씩 옮기며 거주지를 바꾸는 등의 노력을 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기대만큼 고양이들이 쉽게 움직이진 않았다. 똑똑한 고양이들은 밥만 먹고 다시 철거 지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집사들이 아니었다. 다큐 <꿈꾸는 고양이>에 나온 한 집사는 고양이를 '모시게 되면서' 길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재개발 과정에서 고양이를 지키고자 단체까지 만들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야 재개발조합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또 다른 집사는 "약한 생명을 지키는 건 사회적 의무잖아요"라고 말하며 거리를 누비며 고양이를 돌보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이런 말들은 우리가 지금 당장 작게라도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우리가 현관문만 여는 정도의 용기면 되는 것 같다"라고 말한 집사의 말을 통해 진심을 다한다는 건 사실 '별 게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철거현장에서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들이 모이고 있었던 건 비단 다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여러 지역의 집사들을 중심으로 한 움직임이 곳곳에 벌어지고 있었다. 한 곳의 집사들은 동네 고양이들이 재개발 지역을 떠나 이사간다는 걸 주민들에게 알리는 현수막을 달기도 했다.
그들이 단 현수막에는 '차도를 건너는 고양이들의 안전을 위해 자동차의 속도를 줄여달라'는 내용과 '공사 지역 안으로 다시 들어오지 않도록 지정된 밥 자리에만 밥을 주길 부탁'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정치의 역할
하지만 언제까지 몇몇 집사들의 선의에 기댈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누구든 동물과 사람의 공존을 모색할 수 있도록 결국 정치가 나서야 하는 것이다. '지자체의 지원이 있다면'이라는 가정을 한다면, 중성화수술 등 고양이에게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고, 관할 구청, 재건축 조합, 주민 등과 협의하고 설득하기에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일까. 다행스럽게도 정치권이 움직인 흔적들이 엿보였다. 지난 2020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부산시의회에서 재개발지역에 사는 길고양이를 보호하는 내용의 조례가 통과되었다. 건축 최종 허가권자인 구청장이 정비구역 내 동물 보호 계획을 세워야 하고, 시장은 동물 보호 계획을 정비계획 수립 때 포함하도록 권고하는 조례가 통과된 것이다. 물론 권고이기에 강제력이 떨어지는 점은 아쉽다.
서울시도 움직였다. 지난해 재개발 지역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을 조례에 추가한 것이다. 정비구역 내 동물의 구조와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동물 보호에 있어 의미 있는 첫 걸음이 되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지원 방법이 여전히 부족한 점은 한계로 남는다.
경기도는 지난 3월 재개발·재건축으로 터전을 잃는 길고양이 보호를 위해 길고양이 관리에 관한 사항을 조례에 담았고, 관내 고양이 중성화 비용을 일정 부분 지원하고 있다. 다만 재개발 지역에 대한 구체적 지원사업은 아직 논의 중이다.
이밖에도 여러 지역에서 조례가 실행되거나 논의되고 있으나 '그럼에도'라는 수식어를 달아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앞다투어 재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뉴스를 뒤덮은 요즘,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조차 되지 못한 여러 사람들, 동물들이 우리 곁에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다큐 <꿈꾸는 고양이>에서 감독이 마지막 메시지로 했던 말을 공유하며 마친다.
"전국 재개발 재건축 지역의 숫자는 약 3000여 곳. 남아 있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사람들이 나서는 철거촌은 1%도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더 좋은, 더 편리하게 살기 위해 수천, 수만의 생명이 사라지는 현실. 이제... 외면하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