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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의 고민을 씁니다. [편집자말]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흩어진 집 안을 정리한다. 벗어 놓은 양말과 사용한 수건, 티슈가 뽑아져서 굴러다니거나 자잘한 부스러기 등이 먼저 눈에 콕 박힌다. 큼직한 것부터 하나씩 줍고 빨래통에 넣고 나서야 본격적인 주부의 일이 시작된다. 부엌으로 자리를 옮기면 어느새 제 방에서 나온 딸이 옆에 서 있다. 이미 집에 들어서서 움직일 때부터 매의 눈으로 나를 감시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엄마, 자세가... 무릎을 이렇게 굽혀야 해. 잊었어?"
"엉덩이를 빼고 스쾃 자세로... 머리가 너무 앞으로 나오지 않게!"


물건을 정리하며 허리를 굽혔다 펴는 반복 자세가 영 거슬렸던가 보다. 어린애들 가르치듯 엄격하고 단호하다. '사실 요즘은 학교에서도 그렇게 강하게 말하지 못하는데...' 차마 뱉지는 못하고 한 호흡을 삼킨다.

분명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피곤한 기운 때문에 날이 선 것처럼 들려 거부감이 든다. 속이 꼬이지만 참는다. 딸의 잔소리보다 내 몸을 생각해서 신경 쓴다고 자세를 잡는 데도 엄격한 딸의 기준 앞에서는 늘 걸리고 만다. 게다가 자세의 난이도까지 올라가니 아예 귀를 닫아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자, 이 의자에 앉아요. 잘 때는 무릎에 큰 베개를 놓고 자도록 하고."

하루를 정리하며 거실 바닥에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면 허리를 보정해 준다는 의자를 가져온다. 의자 역시도 딸이 사 준 것이다. 잠잘 때 다리가 아프다는 말을 했더니 그날부터는 아예 큼직한 쿠션을 매트 위에 올려놓았다. 무릎 위쪽을 고이면 허리에 부담이 덜하고 다리 아래쪽을 고이면 발에 부담이 덜하다나.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 몸의 상황도 살피란다.

내 걱정으로 시작된 딸의 잔소리
 
 마흔 초반에 디스크 수술을 했고 5년 후에 재발할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도 들었다.
마흔 초반에 디스크 수술을 했고 5년 후에 재발할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도 들었다. ⓒ elements.envato
 
표현은 강하지만 딸의 진심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딸의 챙김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기가 여전히 불편하고 어색했다. 어느새 자라 엄마를 챙기는 나이가 되었나 싶어 받아들이다가도 어느새 나는 그렇게 나이가 들었나 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노인 대접도 싫고 걱정이 잔소리로 들리는 날은 엄마의 기질이 비명처럼 튀어나왔다. "그만하지!" 정말 사소한 입장 차이로 부딪히게 되면 침묵과 냉랭한 시간이 이어졌다. 냉전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화해의 말을 건네는 쪽은 당연히 내 쪽이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잘못한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상한 마음을 풀어준다고 시작한 얘기에 딸은 서운했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왈칵 눈물부터 쏟고 시작했다. MBTI 유형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감정 성향이 풍부한 딸의 걱정과 눈물 어린 호소에 사건은 늘 나의 사과로 마무리되곤 했다. 앞으로는 잘하겠다고 약속하며.

엄마를 걱정하는 철든 딸과 딸의 의견을 무시하는 철없는 엄마로 전세가 역전되었지만, 이후로도 딸의 챙김에 살살하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삼키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딸의 챙김은 집 안에서만이 아니었다. 길을 걷다가도, 북적거리는 시장에서도, 가끔 카페에 앉아서 느긋하게 분위기를 잡을 때에도 예외가 없었다.

다리가 저릿하다고 하면 느닷없는 체조가 아무 데서나 시작되었다. 한쪽 다리씩 90도로 접고 둥글게 돌리기 10회, 발로 영문자 ABC 쓰기, 목을 들고 하늘을 보기 15초, 팔을 디귿자 모양으로 접어 15초씩 들고 있기, 배에 힘을 주고 허리를 길게 늘이는 느낌으로 걷거나 앉아 있기 등. 목과 어깨, 허리와 다리를 보정하는 동작에 철저한 자세 점검까지 도로 한복판은 물론 어디서고 이어졌다.

정성이 갸륵하고 챙기는 마음이 고마워서 하라는 대로 억지로 따라 했지만 딸은 적당히가 없었다. 창피하기도 했고 그만두었으면 싶을 때가 많았다. 몸을 긴장시켜야 하니 더 피곤해지는 것 같기도 했고, 느슨하게 몸을 풀어놓고 싶은데 내 몸도 내 마음대로 못하나 싶은 생각에 이르면 축 처진 낮은 목소리로 그만하자고 사정을 했더랬다.

딸이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내 몸의 이상은 오십도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마흔 초반에 디스크 수술을 했고 5년 후에 재발할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도 들었다. 각별히 조심한다며 지내온 것이 벌써 15년도 더 지났지만, 주부의 일상은 내 몸만을 생각하며 움직이게 되지는 않았다.

얼마 전부터는 신경외과에서 허리 디스크 재발의 경고와 함께 약을 처방해서 먹고 있는 중이다. 깜빡 잊고 약을 먹지 않은 그 하루는 몸이 무겁고 힘들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딸은 엄마인 나의 생활습관과 태도를 밀착 감시하며 잘못된 습관을 교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내 건강은 우선시 되지 못했던 삶

인간의 기대 수명은 90세, 100세까지 늘어났지만 건강수명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의학은 기능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수명만을 늘려 놓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나이는 점점 줄고 있는 현실이다. 입에만 즐거운 것을 쫓게 되는 식습관의 문제도 있겠지만 환경문제로 인한 각종 바이러스, 인간이 만든 유해물질의 역습을 받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딸은 심각하게 엄마 아빠가 죽을 때까지 통증 없이 일상생활을 변함없이 영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도 통증 없이 건강하게 생활하는 사람도 많지만 엄마 아빠는 이미 그건 틀렸으니 더 발전되지는 않도록 생활습관과 식습관을 교정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일했던 엄마의 생각을 깨우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챙김을 받는 데 익숙한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사실 그런 유형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살뜰하게 챙기는 유형도 아닌 것 같고. 딸의 분석에 의하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에만 철저하고 완벽한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난 문제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무심하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맞는 것 같았다. 흔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삶이 최고라고 말하지만, 내게 있어서 건강은 삶의 최우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때문에 몸을 막 쓰고 살아왔다고 딸은 내 삶을 칼같이 정리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딸의 말이 질책으로 느껴졌다.

나의 최우선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월세에서 전세로, 내 집으로의 집 장만과 아이들의 교육, 먹고 사는 문제가 늘 앞에 있었던 것 같다. 내 몸을 사리고 먼저 생각할 만큼의 여유를 갖지 못했다. 아프면 참았고 참다 아프면 약을 먹으면 그만이었다. 이제 건강의 빨간불 앞에서, 딸의 엄격한 챙김 앞에서 인생의 목표를 다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남은 인생의 목표를 다시 생각하다

가끔 TV에서 망가져가던 몸을 정상 이상으로 되돌린 사람들을 본다. 걷지도 못할 지경이던 사람이 탄탄한 근육질의 몸을 자랑하거나 마라톤에 도전하는 경우도 보았다. 몸의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보통 이상으로 회복한 사람들을 보면 잠깐은 자극을 받는다. 그러나 막상 내게 적용하는 것까지는 고려해야 할 것도 많고 여전히 부담스럽다.

딸은 자신이 챙기는 유형이라고 했다. 가족의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이 든다고도 했다. 딸의 건강염려증을 내려놓게 하기 위해서라도, 챙김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딸의 챙김을 기꺼이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근심거리고 챙겨야 할 부모지만, 다행스럽게도 딸은 그러한 이유로 자신에게 소홀하지는 않는 것 같다. 불확실한 시대에 스스로를 챙기는 지혜를 터득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고. 

아빠의 암 발병 이후로 딸의 건강에 대한 염려는 더욱 무겁다. 오늘도 딸은 엄마 아빠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있다. 끼니마다 단백질 식단을 살피고 아침이면 따끈한 차와 과일도 출근길에 챙겨 준다. 과일을 먹고 챙겨준 차도 보약처럼 마시며 딸을 떠올린다. 지속적인 챙김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몸도 따르도록 만드는 것 같다.

출근하고 내내 앉아서 업무를 본다.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천장을 쳐다보며 열다섯까지 천천히 세며 목을 풀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2, 3교시 수업을 할 때에도 한쪽 다리를 번갈아 굽혀 허리에 부담을 덜려고 노력한다. 청소 시간, 낮은 곳에 있는 것을 들어 올리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다리를 굽혀야지!"

어느새 딸의 챙김이 뼛속 깊이 새겨졌나 보다.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챙김을 받는 나이#50대#건강염려증#건강한 노후#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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