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문화회관 전시실에서는 지난 26일부터 내달 2일까지 7일간 세아평미술관 관장 김혜란 초대전 '염원의 세계 민화'를 선보이고 있다.
소장하고 있는 작품과 신작까지 약 200여 점의 작품을 다채롭게 준비한 김혜란 작가는 일상적인 소망을 담아 그린 작품과 함께 소박함과 멋스러움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시민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27일 김혜란 작가를 만나 민화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불화 중에 '부다 라이프'와 '만다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제가 불화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색상이나 재료, 소재에 이르기까지 전통 민화와 일맥상통하고 유사점이 많습니다. 민화를 오래 그리면 자연 불화를 그릴 수 있는 실력이 되지요. 저는 학생들에게 불화를 전문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직접 네팔로 날아가 트레디셔널라마아트센터에 입학하여 라마승들에게 1년간 불화를 배웠습니다.
여기 전시된 두 작품은 그 당시 졸업작품입니다. 하나는 '부다 라이프', 부처가 일생 동안 살았던 행적을 적은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부적과 같은 일종의 경전인 '만다라'입니다. 부처가 태어나서부터 환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거죠.
주요 소재는 두툼한 광목입니다. 여기에 호분을 3mm 정도 짙게 도포 한 후 먹지에 본을 뜬 다음 아주 작은 세필로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주로 일반인들은 거의 근접할 수 없고 라마승들이 수행의 도구로 그리고 있지요. 네팔에서 돌아온 이후부터는 각종 사찰에 불화 또는 탱화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 홀로그램을 배경으로 그린 작품이 있다는데.
"아, 그 작품은 바로 제 생각에서 나온 불화입니다. 부처도 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와불 좌불 다 있지 않습니까. 서 있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저는 편안하게 앉아서 쉬는 모습을 그린 겁니다. 소재는 광목이고, 배경은 홀로그램 형상이 나타나는 게 특징이지요. 흔히 쓰는 본채 물감이 아니라 여기는 보석 물감을 사용했습니다. 은을 가루화 시켜서 뿌리는 작업을 했는데 공력이 상당했지요. 부처의 형상보다 뒷배경 홀로그램을 하기 위해서 한 달 동안 싸움을 했던 게 기억납니다."
- 전시된 것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바로 '금강산 전도'입니다. 이 작품은 3년 동안 작업했고 파노라마식으로 엮은 겁니다. 12폭으로 국내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지요. 산수를 말하다 보니 제가 '산수'를 하게 된 동기부터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서산시 지곡면 안견미술관에 전시할 작품인 '몽유도원도'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산수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있는 작품은 일본 텐리대학 도서관에 있는 실존하는 규격 그대로지요. 이것을 그리기 위해 일본 텔리 시에서 석 달 동안 기거하며 보고, 고증 근원을 읽어가면서 그렸어요.
무엇보다 그때 시대상을 알기 위해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에 관한 사조를 깊이 공부한 후 안견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그때부터 '산수'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는 인물 쪽에 관심을 두었는데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시발점으로 '산수' 쪽으로 돌아왔었습니다. 논문도 3편 써서 학회에 발표할 정도로 산수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 민화를 그리면서 정말 힘들었던 작품은 어떤 게 있을까요?
"역시 인물이에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 '청명산수도'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사람은 열 사람 그리면 열 사람 다 표정이 각각 다르고 생김새가 다 다른데 그걸 어떻게 그리느냐 하는 게 가장 큰 관건이었죠. 미인도나 신선도처럼 몇 사람 그리는 거야 가차 없이 그려요. 하지만 중국의 국보급인 '청명 산수도'는 페스티벌을 여는 풍경이니 사람이 얼마나 많이 등장했겠어요.
이번 전시에서 4점을 기획했다가 너무 힘들어서 2점만 발표하게 됐답니다. 제가 그리면서도 여기 사람이 몇 사람 나오는지 모를 정도로 많아요. 오죽했으면 하룻저녁에 요만큼 그리고, 그다음 점심나절에 또 요만큼 그렸던 것들을 가닥가닥 모으다 보니까 이 그림이 완성됐어요. 이게 1년 동안 저를 신경 곤두세우게 했죠. 풀리지 않는 숙제였어요.
이걸 그리고 나서 스스로 만족감에 뿌듯해서 송규태 스승님께로 달려가 자랑했답니다. 그때 평생 칭찬을 안 하시는 분이 '사람은 볼이 볼그레 해야 하는데 볼 터치가 없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노란색이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노란색이 덜 들어갔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역시 대가셨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며칠에 걸쳐서 전부 볼 터치를 다 해 넣은 작품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선생님에 의해 대미를 장식한 그림이 바로 '청명산수도'입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번 작품 중에서 가장 신경 쓴 작품이 '금강산 전도'인데 어떻게 연결해서 완성하느냐에 상당한 고심을 했습니다. 또 너무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 '청명산수도'는 표정을 달리하기 위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끝으로 200여 점의 다양한 작품들을 초대전으로 열게 해 주신 것에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장차 저는 제자들을 위해서 특이한 가르침을 하기 위해 스스로 연구·개발할 계획이라는 말씀 전해 올립니다. 또 서산 시민을 위해 뭔가 이바지할 수 있는 그런 쓰임새 있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