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의 '농민기본소득이 아니라 농민공익기여직불이다, 왜냐면'(http://omn.kr/1vj7j)과 <한국농정>에 실린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주민수당'(https://bit.ly/3GpQO0G)에 대한 반론입니다. 다른 의견의 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
[이전기사] : 농촌을 살리는 길은 농민기본소득이다 ( http://omn.kr/1wcyj)
3.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은 실행이 어렵다
박진도 교수는 자신의 공익기여직불금이 지금의 공익형직불금과 비슷한 운명에 처할 것임을 사실은 알고 있다. "(공익기여직불금은) 중소농의 소득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고, 소외되는 농민이 있을 수도 있다"고 그는 말한다. 소외되는 농민이 있는데 어떻게 이것을 농민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는지 의아하지만, 어쨌든 공익기여직불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그는 "농산어촌주민 모두에게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을 지급하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는 이것을 '농산어촌주민수당(농촌주민수당)'(
https://bit.ly/3GpQO0G)이라고도 부른다. 그는 <한국농정>에 실린 이 글에서 농민기본소득은 일반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렵고 "농촌 지역의 비농민들조차 동의하기 쉽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농민을 살리는 농민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국민적 공감대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놀랍게도 "농산어촌을 살리고 지역소멸을 막아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 '당위성'으로부터 보통의 사람들은 농민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이끌어내는데, 그는 비농민을 포함한 농촌주민에게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을 지급할 필요성을 끌어온다.
그의 구상에 따르면 '농산어촌주민수당'은 읍은 제외하고 면 지역의 인구 400여만 명에 대해서 지급하는 것이다. 월 30만원 지급이면 24조원이 필요한데, "만약 농림수산분야 예산을 중앙정부 예산 증가율만큼만 증가시킨다면 재원 조달 문제는 일거에 해결"되겠지만 "농촌주민수당을 반드시 도입할 의향이 있다면, 다양한 점진적인 추진방안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그는 3000명 이하 혹은 5000명 이하의 인구소멸 위기의 면부터 지급하기 시작하여, 대상지역의 확대, 청년 우대, 혹은 인구수에 따른 차등지급 등으로 늘려가는 방안을 주장한다.
일단 "농산어촌을 살리고 지역소멸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누가 외면하겠는가? 또한 농민만이 아니라 농촌 주민 모두에게 지급하자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특히 지역 소멸을 막고 지역균형발전을 한다는 취지로 접근하면 농촌주민수당의 방식이 더 올바른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난점이 존재한다.
첫째, 농촌주민수당이 애초에 "(공익기여직불금이) 중소농의 소득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고, 소외되는 농민이 있을 수도 있다"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읍은 제외하고 면만 포함시킨다고 하면 공익기여직불금에서 '소외'되었던 농민이 또 한 번 배제되는 경우가 속출할 것이다. 행정구역 기준에서 읍은 도시로 분류되고 "대부분의 읍 지역은 농촌이라기보다는 면의 중심지로서 도시적 기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겠지만, 현실에서는 농민이 살고 있는 읍도 많을 뿐만 아니라 '시'에도 농민이 다수 존재한다. 거꾸로 도시와 다를 바 없는 '면'도 있다. 결국 농촌주민수당은 공익기여직불금이 충분히 포괄하지 못하는 중소농과 소외된 농민에게 지급되는 보완책이어야 한다는 당초 목표에 부합하지 못한다.
둘째, 농촌이라는 '공간'이 농민이라는 '직군'보다 더 넓기 때문에 지역순환경제와 공동체성의 측면에서도 더 진일보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농촌과 비농촌을 가려내기가 매우 어렵다. 통계청(KOSIS)/국토교통부 자료(2019)는 두 개의 기준으로 농촌인구를 표시하고 있는데 '비도시인'과 '농촌인'의 규정이 상이하다. 용도지역 기준에서 도시인구라고 볼 수 없는 인구('비도시인구')와 행정구역 기준에서 도시인구라고 볼 수 없는 인구('농촌인구')가 다르다. 그 말은 행정구역상 '농촌'(=면)이라고 되어 있지만 용도상 도시(=주거·상업·공업지역) 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며, 행정구역상 '도시'(=읍‧동)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농림지역인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행정구역 기준만으로 '면'에만 지급하는 농촌주민수당은 또 다른 반목과 갈등의 씨앗을 심는 것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봐도 도시민인 사람은 받고 실제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이 못 받는 경우가 수십만 명이 넘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대조적인 예 두 가지만 들어보겠다. 기장군은 '비도시인'이 0명인데 행정구역상 '농촌인'은 1만7천여 명에 달한다. 고양시는 거꾸로 행정구역상 '농촌인'은 한 명도 없지만 농사를 짓는 등의 '비도시인'은 6만 명에 가깝다. 결국 '농촌에 지급'이란 말이 쉬워 보이지만, 지급대상지를 정하기 매우 어렵고 어떻게 정하건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박진도 교수는 "국민적 공감대"를 제일 중시한다. 나는 농업의 공익적 성격을 많은 도시민들이 인정한다고 본다. 농업을 살리고 농민을 살리는 것의 의의도 잘 이해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농민기본소득을 도시민이 훨씬 받아들이기 쉽다고 본다. 나는 농촌주민수당을 도시민이 받아들이기 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농촌'(농촌 같지 않은 '농촌'을 포함하여)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농촌' 공무원이 농촌주민수당을 받는다는 것을 도시 공무원이 납득할 수 있을까? 농촌의 영세상인은 지원해야 하고 도시의 영세상인은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이 공감할 수 있을까? 도시민이 생각하는 농촌은 '농민이 사는 곳', '농민이 농사를 짓는 곳'이다. 따라서 도시민이 생각하는 농촌기본소득은 바로 농민기본소득일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농촌기본소득 혹은 농촌주민수당은 사회실험이나 시범사업으로는 진행될 수 있지만 전면 실시의 관점에서는 농민기본소득보다 어렵고, 더 나아가 전국민 기본소득보다도 어렵다. 박진도 교수가 누누히 강조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농민기본소득 주창자들은 농민 외의 비농민의 삶, 농민을 포함한 농촌 지역의 발전에 관심이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농민은 농촌의 중핵이다. 따라서 농민에게 지급된 기본소득은 농촌 지역에 흘러들어가 농촌 경제 전체에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역화폐로 지급되면 그 효과가 더 클 것이다. 둘째, 농촌 지역의 발전을 위한 길은 농촌주민수당이 아니라 '전국민 기본소득'으로 실현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농촌과 도시, 비도시와 도시의 갈등도 일으키지 않는 방법이다. 즉 '공익기여직불금+농촌주민수당'의 결합이 아니라 '농민기본소득+전국민기본소득'의 결합이 농촌 지역 발전을 위해서도 최적의 조합이다.
박진도 교수의 농촌주민수당은 공익기여직불금처럼 '참여소득'의 형식으로 구상된 것이고, 따라서 조건을 충족해야 지급되는 선별성이 있다는 점도 덧붙여야겠다. 그는 "농촌주민수당은 농촌기본소득과는 다르다. 모든 농촌주민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어차피 지급대상 지역을 선별해야 하고, 무조건이 아니라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농민기본소득을 반대하는 논리 중에 '가짜 농민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런 논리가 성립된다면 '가짜 농촌주민이 생길 수 있다'는 논리도 성립한다. 오히려 공간이 넓고 익명성이 높은 '농촌'에는 '가짜 농촌주민'을 찾아내기 매우 어렵다. 하지만 농민이 농사를 짓는 곳에는, 농민기본소득위원회가 잘 기능한다면 '가짜 농민'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4. 농민기본소득의 재원에 관해서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는 2020년 2월 창립 이후 쉼 없이 전진하여 2021년 6월 마침내 66명 국회의원의 발의로 농민기본소득법안 발의를 이루어내었다. 법안 제18조는 "농민기본소득은 매월 30만원 이상의 금액"이라고 되어 있다. 모든 농민 개인에게 정기적으로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얼마의 재정이 필요할까? 통계청의 2020년 '농립어업총조사'(전수조사)에 따르면 2020년 농가인구수는 231만 7000명으로 잠정 평가된다. 이에 따르면 월 30만원 농민기본소득에 필요한 금액은 매년 약 8조 3400억 원이다.
이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은 기존의 농정예산을 절약, 전용하는 안이 있다. 하지만 타 부서의 예산을 가져오지 않는 관계로 쉬워 보이는 이 방법은, 오히려 농업 내 이해관계의 충돌로 실현이 더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농축식품부의 예산을 늘리는 방법이 더 현실적이다. 2021년 농식품부 예산 16조 2856억에 8조 3400억을 더한 24조 6256억은 2022년 정부 예산안 593조원의 4.15%에 불과하다. 따라서 2022년 농림축산부 예산을 국가예산의 4.15%로 올리면 매월 농민기본소득 30만원을 바로 실행할 수 있다.
각종 직불금을 통합하여 재원 일부를 충당하는 안이 있을 수 있겠다. 공익형직불금 포함 각종 직불성 농촌 예산을 전부 통합하면 국가예산의 3.56%면 가능하며, 소농직불금과 면적직불금으로 구성된 기본형 직불금을 통합하면 국가예산의 3.76%면 가능하다. 하지만 면적직불금은 그냥 두고 소농직불금만 통합하는 것이 분란의 소지가 적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가예산의 4.07%면 월 30만원 농민기본소득이 가능하다.
농축식품부 예산 비중을 높이는 것은 다른 부서의 예산을 뺏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지난 14년간 농업 관련 예산을 상대적으로 삭감 당해온 것을 '정상화'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2008년 비율까지 갈 것도 없다. 농식품부예산의 비율을 2013년 수준 정도로만 유지해도 월 30만원 농민기본소득은 충분히 가능하다. 모든 농민 개인에게 월 30만원의 농민기본소득을 지급하게 되면, 집에 농민이 두 명이면 가구당 월 60만원, 세 명이면 가구당 월 90만원이다. 이렇게 된다면 소농의 경제적 자립과 소농 중심의 지역순환경제의 밑바탕이 마련된다.
박진도 교수는 농촌주민수당을 위해 "새로운 예산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기존 예산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농민수당, 공익형직불제 예산과 매년 증액되는 농정 예산과 함께, 기존 생산주의 농정 보조금과 조세지출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여 직불금으로 전환한다면, 농정 예산을 무리하게 늘리지 않더라도 최소한 연간 8~10조 원의 재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https://bit.ly/3GpQO0G)
농민수당을 통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말했다. 공익형직불제도 '전면' 통합하는 것은 분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얘기했다. 대농을 위한 조세지출을 축소‧폐지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해 보자. 물론 생태계를 파괴하고 과잉생산을 유발하는 특정 보조금, 지역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으며 지역사회의 갈등만 조장하는 각종 농촌개발 사업은 축소되어야 마땅하다. 그런 개발사업이 없어지면 그에 따른 각종 행정비용도 절약될 것이다.
하지만 공익기여직불금이건 농촌주민수당이건 대농에게 지원되던 금액을 '전부' 빼서 중소농을 지원하도록 설계하는 것은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고, 그 결과 정책 이행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농업‧농촌에 쓸 돈은 농업‧농촌의 기존 예산에서 만들어 보라는 주장은 얼핏 보면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위험한 발상이다. 모든 농민이 단결해서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데 힘을 모아야 할 시점에 그 단결을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농업‧농촌 문제는 절대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고 나라 전체, 더 나아가 지구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농민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농민이 살아야 지구가 산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 교육홍보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