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공공상생연대기금 등 주최로 '촛불을 넘어, 상생과 연대의 대한민국을 향해' 토론회가 열렸다. 공공상생연대기금 창립 4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신광영·윤홍식·신진욱 교수 등은 주제 발표를 통해 모두 현재 한국 사회의 핵심 문제로 '불평등'을 꼽고 각각의 해법을 제시했다. 이들 세 사람의 주제 발표문을 요약해 소개한다.[편집자말] |
"촛불 시위의 구호였던 '나라다운 나라'의 의미는 실질적으로 모든 국민의 삶이 개선되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국민적 염원을 포함했다. 그러므로 촛불은 정치인들의 권력이 아니라 민생이 중심이 되는 제대로 된 정치와 사회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
신광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기조발표문, 그 시작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인 촛불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는 것이었다.
왜 다시, 또, 촛불이었을까.
그 답은 신 교수 발표문 제목으로 짐작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 '사회적 연대', 모두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과제들이다. 그의 주장대로 촛불의 집단적 염원은 "정치와 경제의 민주화와 안정된 삶을 영위하는 것", "구체적으로는 불평등의 심화와 빈곤의 확대를 막고, 국민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정치와 정책을 요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본형인가? 북유럽형인가?
신 교수는 현재 한국 사회가 세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먼저 "실업, 질병, 고령화 등으로 인한 소득 상실의 위험"이다. 이런 위험들이 "구 사회적 위험(Old Social Risks)"이라면, 저출산 등으로 인한 인구 구조 변화와 자살이나 범죄와 같은 문제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다. 여기에 "생태계 위기에 따른 인류 생존의 위험"도 있다. 신 교수는 이들 위험들에 대해 "정책적·제도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먼저 신 교수가 주목한 나라는 일본이다. 고도 성장기에서 저성장기로 전환한 점이나 "현재와 같은 제도와 정책이 지속되는 경우, 앞으로 한국도 일본과 같이 제로 성장에 가까운 낮은 성장률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두 나라는 유사하다. "일본의 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이 1990년대까지 남미 수준에도 못 미쳤다"는 점, "한국의 복지지출 비중은 더 낮아서 현재까지도 남미 여러 나라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두 나라를 비교하게 하는 사실 관계다.
신 교수는 아베노믹스에 대해 "경제 성장이 기존 경제 정책이나 산업 정책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규제완화를 핵심으로 했지만 GDP 성장률을 끌어올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인위적인 경기 부양책으로 인해 정부의 GDP 대비 부채비율만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정부의 신자유주의적인 개혁, 사실상의 복지 축소 또한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신 교수의 진단이다.
일본 사례가 결과적으로 "낮은 수준의 복지가 경제 활성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면,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는 그와 정반대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덴마크의 경우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경제적 불안정을 복지를 통해 해소하고, 실업자가 다시 노동시장으로 재진입하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스웨덴은 "맞벌이 가구 모형에 기초한 가족 복지정책을 통해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을 높이고, 임금조정,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효율적인 실험 보험제도를 통해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제고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평가다. 그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적극적 복지정책을 결합시켜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고 풀이했다. 결국 '구 사회적 위험'과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정책적·제도적으로 잘 대응하기 위해서는 북유럽 국가들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무원 통제 이뤄져야 국민 요구 구체화 가능"
하지만 북유럽 국가 모델만으로는 해법을 찾기 어려운 위험이 또 있다. 신 교수가 앞서 제시한 "생태계 위기에 따른 인류 생존의 위험"이다. 각각의 복지국가들이 개별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위험이 아니다. 그의 주장대로 "생태 위기 시대에 필요한 것은 한 국가나 지역 내 연대가 아니라 전 지구적 수준의 연대"이다. 자연스럽게 신 교수가 던진 '사회적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두 번째 주제로 이어진다. 단서는 역시 '복지국가'다.
"오늘날 보다 지속적이고 제도화된 연대는 복지국가를 통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중략) 복지국가는 모두가 처할 수 잇는 여러 가지 사회적 위험에 집단적으로 위험을 공유하는 국가이다. 복지국가는 실업, 질병, 산업재해, 빈곤 등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국가이다... (중략) 모두가 세금을 내고 모두가 복지 혜택을 받는 보편주의적 복지체제에서는 위험에 대한 대응을 공동으로 한다는 점에서 가장 연대의식이 강하고, 복지 제도를 통해서 시민들 사이에 상호의존도도 높다."
그러면서 신 교수는 "복지제도가 연대를 촉진시킨다"고 강조한다. 그런 제도를 만드는 것이 정치다. 신 교수의 주장처럼 "민주주의는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경쟁적 선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일상적인 수준에서 대의제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정치적으로 입법을 통해서 국민의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그것이 곧 "촛불 시위의 요구"이자 "나라다운 나라"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사회적 연대'가 가능하려면 먼저 풀어야 하는 핵심 전제가 있다.
"국민에 의해서 선출된 공무원이 선출되지 않은 공무원을 통제할 수 있어야 국민의 요구를 법과 제도로 구체화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시험을 통한' 선발에 의해서 권력을 갖게 된 국가기구로 행정권력과 사법권력이 있다. '어쩌다 공무원이 된 선출직 공무원'은 임기가 제한되어 있는 반면에, 선발된 '공무원'은 정년이 보장되어 있다. 선출직 공무원에 의한 선발된 공무원에 대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선발된 공무원이 국민을 지배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심지어 "정치적 쟁점이 고소와 고발을 통해서 사법부의 심판을 받는 경우, 사법부가 선출된 권력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국민의 권력 대신에 법관의 권력이 국가를 지배하게 된다". 신 교수는 "민주주의의 궁극적인 목적은 차별이 없이 누구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합의를 통해서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기로
과연, 대선을 앞둔 현재 우리나라는 그와 같은 합의가 가능할까? 이에 대해 신 교수는 즉답하지 않는다. 대신 "민주주의가 제대로 제도화되지 못한 사회라면, 그런 사회 체제의 공정성을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신 교수는 "김대중 정부 아래 새로운 복지제도가 도입되고, 기존 복지제도가 확장되었지만, 불평등과 빈곤 문제는 여전히 크게 완화되고 있지 않다"면서 "이것은 사회적 위험을 줄이기 위한 노동 시장 정책과 복지정책을 통해서만 가능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사회·생태적 복지국가로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핵심은 제도이고, '촛불의 요구'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신 교수는 묻는다.
"한국 사회는 또 다시 기로에 서 있다.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보여주는 북유럽 형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불균형을 보여주는 아메리카형으로 갈 것인가?"